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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창 칼럼] 역동적 복지국가, 소득과 정보의 투명한 공개로부터
  • 시사코리아저널
  • 승인 2020.10.12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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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창/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처장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충격 때문에 1, 2차에 걸쳐 재난지원금이 지급되었다.
1차에서는 4월 총선과 맞물리면서 정부와 여당이 합의했던 소득하위 70% 지원이라는 애초의 계획과 달리 ‘전 국민 지원’으로 결론이 났고, 2차에서는 재난의 피해가 심각한 계층을 중심으로 선별적 맞춤형 지원을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는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탄탄한 보편적 복지국가에서 일어나지 않은 논쟁이었지만, 사각지대가 넓은 허약한 사회안전망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논쟁에 많은 사회적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재난지원금 논쟁이 남긴 것들

재난지원금 논쟁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날 것 그대로 확인하고 있다.
재난은 국민 모두에게 동일한 수준의 곤경과 어려움을 주는 것이 아니다.

약자일수록 더욱 가혹하게 되고, 강자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부와 권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소위 ‘재난자본주의’의 면모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비대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대기업과 대자본은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는 데 비해, 골목의 영세한 상인들은 문을 닫지도 열지도 못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정부의 강제적인 폐쇄 조치에 소상공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사업장을 폐쇄해야 했지만, 가게의 임대사업자들은 빈틈없이 월세를 챙긴다.
정부는 임대인들의 선의에 호소했지만, 1차 재난지원금의 기부금 환수율 0.2%가 말해주듯이 한국 사회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선의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래서 정부는 코로나19 재난으로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실업자를 위해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실시하겠다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노동단체와 시민사회의 오랜 숙원이었던 ‘전 국민 고용보험제’를 전격 수용하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진일보했지만, 제대로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왜냐하면,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볼 때 전 국민이 아니라 고용보험의 적용 대상이 현재보다 조금 더 늘어나는 수준, 그러니까 겨우 몇 발자국 더 나가겠다는 의지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고용보험은 ‘고용 노동’을 기반으로 해서 설계되어 있다.
즉 고용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제도가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비고용이나 변형된 고용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고용보험을 적용할 수가 없다.

자영업자들도 고용보험의 대상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현재는 임의가입으로 돼 있다. 이들의 소득을 투명하게 파악할 방법과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고, 고용보험 참여에 대한 이렇다 할 제도적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에 자영업자들 중에서 고용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때문에 진보적 시민사회에서는 ‘고용 노동’이 아니라 ‘소득’에 기반을 둔 고용보험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만들어 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소득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적정한 방식으로 고용보험에 당연히 가입하고, 소득을 상실했을 때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하게끔 하려면 누구나 인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소득 파악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우리 사회의 발달된 디지털 환경은 이를 충분히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된다. 하지만 문제는 정부 부처들 간의 소통하지 않는 칸막이 행정과 관행에 익숙한 관료주의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최첨단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의 적용을 가로막고 있는 사방의 벽들을 해체하는 일이다.

소득 파악만 하더라도 국세청에서는 경제활동인구 대부분의 소득 파악을 할 수 있고, 4대 사회보험료를 징수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도 웬만한 국민 소득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하고 있다.
세금은 국세청이, 4대 사회보험료 징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저소득층 지원은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부동산은 국토교통부가 관리하며 소득과 자산, 고용과 복지, 부동산 관련 데이터가 기관마다 관리되고 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정부의 행정이 기존의 관행대로 운영되기에 새로운 변화와 혁신이 일어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국가 행복 순위 61위, 내 삶을 선택할 자유 140위, 이것의 의미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든 전 국민 고용보험이든 기초적 데이터베이스가 실질적 작동을 하도록 한다면 불필요한 사회적 논쟁은 거치지 않아도 된다.

재난이 전 국민에게 동일하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취약 계층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는 만큼 투명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면, 이는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국민의 투명한 소득을 기반으로 고용보험료를 거두고, 소득을 상실했을 때 국가가 실업급여를 지급하고, 다시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을 하게 된다면 국가의 역할은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에 특히 부족한 것이 ‘사회적 신뢰’인데, 이를 높이기 위해서는 소득에 대한 투명한 파악과 정보의 공개가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사적 소유의 신성화’ 경향이 있어 누가 얼마나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지, 얼마나 벌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복지국가가 제도적으로 발달한 북유럽에서는 누구나 이웃들의 재산과 세금에 대해 정보 공개 청구를 하고 확인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국회의원과 같은 고위공직자들에 대해서만 충분하지 않은 내용의 재산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북유럽에서는 모든 시민들이 서로에 대해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사회는 투명하고, 사회적 신뢰는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복지국가는 ‘사회적 신뢰’의 확보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국민들이 조세저항을 가지는 것은 내가 내는 세금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데도 크게 기인한다.
이미 북유럽 사례를 통해 검증되었듯이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낮은 신뢰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더욱 부각되고 있는 ‘공정성’ 문제는 촛불항쟁으로 탄생한 정부에 희망을 걸었으나 이전의 정부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엘리트 기득권들의 행태에 실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는 여전히 정부에 대한 신뢰와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매년 3월 20일, ‘세계 행복의 날’에 발표하는 국가별 세계 행복 순위를 보면, 우리나라는 올해 61위였다.
2013년 조사를 시작한 이후 가장 낮은 순위에 해당한다. 전년 2년간의 조사내용을 바탕으로 발표되는 만큼, 올해의 행복 성적표는 문재인 정부로서도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UN 산하 지속가능개발해법네트워크(SDSN)에서 발표하는 행복 순위 지표는 ▵1인당 국민소득 ▵건강 기대수명 ▵사회적지지 ▵내 삶을 선택할 자유 ▵관용 등의 6개 항목으로 구성되는데 사회적 신뢰와 연관이 높은 항목은 부정부패와 사회적 지지라고 볼 수 있다.

올해 발표된 각 항목별 순위를 보면, 우리나라는 기대수명 10위, 1인당 국민소득 27위를 차지했는데, 비교적 상위권에 해당한다.
관용과 부정부패는 각각 81위, 사회적 지지는 99위를 차지해 하위권에 머물렀다.
더구나 ‘삶 선택의 자유’는 140위에 그쳐 조사 대상 153개 국가 중에서 거의 바닥 수준에 머물렀다.
국민들 대부분이 스스로 원하는 좋은 삶 혹은 행복한 삶을 선택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는 것으로 이해되는 지표다.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사회적 신뢰가 낮아진 데는 오랜 중앙관료주의 국가, 식민지와 독재 경험, 전쟁과 가난 등의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겠지만, 이를 극복하는 데는 절치부심의 노력이 필요하다. 혁명에 버금가는 과거와의 단절이 요구된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절실한 모색 없이는 현재의 ‘낮은 사회적 신뢰’를 극복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제대로 된 보편적 복지국가의 건설이 더 절박한 것이다.

신뢰도 높은 역동적 복지국가, 투명한 정보 공개로부터

신뢰 사회의 출발점은 무엇보다 ‘투명한 정보의 공개’가 돼야 한다. 투명한 정보의 공개야말로 민주주의와 신뢰의 기초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1998년부터 ‘공공기관의 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정보공개법)’이 실시되었지만, 공공기관들은 국민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공개하는 데 여전히 인색하다.
시민들은 투명한 정보 공개를 요청하지만, 행정은 여전히 필요한 정보는 비공개로 처리할 뿐더러 공개의 과정에도 친절하지 않다.

그런 점에서 서울시의 행정 정보 공개는 주목할 만하다. 시민운동가 출신의 故박원순 시장이었기에 행정기관의 정보 공개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고, 온라인을 통한 정보 공개 모델을 만들어보고자 했던 것이다.
지금도 대부분의 행정기관 홈페이지는 행정기관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정보 공개의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의 포털은 서울시 사업의 결정 과정과 각종 회의, 내부 결제, 예산 등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진일보한 행정 정보를 일상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공개한다고 해서 많은 시민들이 시간을 내서 들여다보지는 않겠지만, 공개돼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대로 된 정보민주주의에 대한 인상과 신뢰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최근, 또 하나의 긍정적 방안이 제안됐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통계청과 관련 기관들을 통·폐합해 데이터청이나 데이터처로 확대·개편하자는 정책을 제안했다.
앞서 말한 ‘전 국민 고용보험제’나 적재적소에 적절한 지원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 국민에 대한 소득파악 등이 선결 요건이고, 기존 또는 새롭게 생성되는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는 곳의 설치를 통해 해결책을 찾자는 제안이다.
이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 맞는 의미 있는 제안이라고 할 수 있다.

4차 산업과 정보화 사회의 도래로 과거와 달리 쉽게 데이터를 통합하고, 의미를 분석하고, 새로운 시도를 모색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
자본은 돈벌이가 될 수 있는 ‘개인 정보’만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시민들이 생산하는 데이터를 통합하고 분석해 사회와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사회를 모색하는 일이다.
과거에는 우리가 신뢰사회와 복지국가로 가는 일이 아득하게 느껴졌지만, 정보화의 진전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의 현실화 여부는 시민사회의 역량과 정치권·정부의 진정성에 달려있다.

※ 윤호창 칼럼은 프레시안과 공동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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