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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고택서 보은의 흔적을 찾다!
  • 송윤종 기자
  • 승인 2013.06.02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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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상에게 써준 죽로지실(竹爐之室).
[시사코리아저널/송윤종기자] 충남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49(용궁리324-17)에 추사 김정희 생가가 있다. 추사체로 유명한 명필가인 추사 김정희는 24세때 생원시에 1등으로 급제하고, 김경연, 조인영과 북한산 순수비가 신라 진흥왕의 순수비임을 고증했다. 병조참판과 성균관 대사성에 오르고 조선후기의 실학자이며, 대표적인 서예가로 알려진 시(時), 서(書), 화(畵),전각(篆刻)에 뛰어난 선비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다.

추사 김정희는 1786년 6월 3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이조판서 김노경(金魯敬)의 아들로 태어난다. 그 뒤 백부(伯父)김노영에게 입양되어 살았다. 김정희는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학습된 정(情)과 도리(道理)를 인생 가치의 정점에 두게 됐다. 그는 청나라 유학파로서 북학파의 주류가 되어 청나라 고증학(考證學) 풍을 도입해 경학(經學),금석학(金石學), 문자학(文字學),사학(史學), 지리학(地理學), 천문학(天文學)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경지에 오른다.

1801년 정월 조선궁중은 사학엄단이라는 칼을 든다. 서학(西學)정약용,정약전,이승훈등 100여명의 학자들이 처형과 유배를 하는 신유사옥이 발생하게 되는데, 김정희도 헌종이 즉위하고 순원왕후가 섭정하던시기 윤상도의 옥에 연루되어 1840년부터 9년간 제주도로 유배된다.

제주에 유배된 김정희는 해남 대흥사의 초의선사와 자주 서찰을 주고 받고, 다산 정약용과도 가까운 관계를 유지 하고 있었다. 북경 유학시절 즐기던 차(茶)에 대해 남다른 관심보이는 추사에게 차를 선물한 초의선사가 고마워 대흥사 대웅보전의 편액을 써보낸 일화에서도 그들의 관계를 엿볼수 있다. 1844년 추사 나이 59세에 제자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청나라 연경에서 구해온 책을 제주도로 보내오는 등 스승을 극진히 섬기어 고마움의 표시로서 변치않는 사제간의 의리를 세한송(歲寒松)에 비유해 그려준 불세출의 명작, 세한도(보물 180호)가 탄생 한다.

전라도 강진에 유배된 정약용은 그곳에서 후학을 양성하게 되는데 천민 신분으로 글짓기를 잘하는 애(愛)제자 황상(黃裳)이 있었다. 그와 가까운 추사는 유배가 풀려 올라오던중 강진에 있는 황상을 찾아간다. 어렵게 생활을 하던 황상과 만난 추사는 차(茶 ) 대접을 받고 그에게 죽로지실(竹爐之室)이라는 예서(隸書).전서(篆書)의 형을 살리고 그림을 다소 멀리한 멋스런 작품을 선물한다.

죽로지실(竹爐之室) 차(茶) 물을 끓일때 뜨겁지 아니하게 대나무로 감쌓 만든 화로가 있는 방이란 뜻이 라는데, 뜨거운 화로를 변치않는 선비의 굳은 지조의 상징인 대나무로 극복하자는 메시지는 아닐까? 고고한 선비의 뜻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동시대를 사는 학자로서 깊은 우정(友情)의 속내를 보는듯해 숙연함을 느낀다.

추사고택(秋史古宅)을 나오며 사제간(師弟間)의 존경과 사랑을, 같은 학자로서 뜨거운 우정(友情)을 지닌 추사를 생각하며, 드넓은 내포평야에 지는 초하(初夏)의 석양을 바라본다.

▲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소재 추사생가.
▲ 예산군 용궁리 추사생가옆 추사묘.

송윤종 기자  ehyun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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