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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코리아저널/ 허경태 선임기자. | ||
타인을 의식하는 삶은 결코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 것이라는 그의 말에 공감을 하면서도 현실은 여전히 타인을 의식해야 하는 부조리한 모순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속성이다. 나이가 들어서 읽어보는 이방인은 여러모로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포이에르 바흐가 언급한 ‘소외’, 사람이 만든 것에 오히려 예속되는 행위를 보여주는 인간의 속성 외에도 사랑, 소유, 결혼, 관습, 사회와 인간, 인간관계, 죽음, 신(神) 등에 대해 본질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있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산다는 것은 관습과 도덕, 제도에 젖어있는 자들이 두려움에 질린 채 내지르는 함성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야 철저히 이방인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읽으면서 같은 인간으로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방인' 의 주인공 뫼르소는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루는 양로원에서 엄마의 사망과 장례에 대한 전보를 받는다. 회사의 사장은 이틀간의 휴가, 실제는 토요일과 일요일을 합쳐 나흘간 쉬는 것을 탐탁치는 않았지만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엄마의 장례식에 참석은 하지만 전혀 슬픈 감정을 느끼지 않았고, 슬픈 척도 하지 않았다. 장례식을 끝낸 다음날 살인적인 더위 때문에 수영을 하러 간 해수욕장에서 우연히 옛 직장의 타이피스트였던 마리 카르도나를 만난다. 함께 수영도 하고, 코미디 영화도 보고 집에 와서 부담 없는 정사를 나눈다.
그 후에도 마리와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대화를 나누고 섹스도 즐긴다. 마리가 뫼르소에게 결혼하고 싶다고 하자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습관적으로 승낙을 한다. 그리고 뫼르소는 같은 아파트의 같은 층에 사는 레이몽이란 남자와도 생각 없이 어울린다.
심지어 레이몽은 정부(情夫)에게 보낼 편지를 뫼르소에게 대필해 달라고 부탁을 할 때도 써주고, 레이몽이 정부를 때려서 경찰에 잡혀 갔을 때도 증인이 되어 경고만 받고 풀려나게 도와준다. 어느 날, 레이몽이 친구의 바닷가 별장에 초대를 받았는데 뫼르소와 마리도 함께 초대받게 된다. 별장에서 식사도 하고, 와인도 마시기도 하면서 바닷가에서 수영도 함께 한다.
그러다가 바닷가에서 레이몽의 정부였던 오빠 패거리, 아랍인들과 마주치게 된다. 레이몽은 이 패거리들과 싸우다가 칼에 찔려 피를 흘린다. 싸움이 끝난 뒤 뫼르소는 레이몽이 권총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대신 맡아 보관한다.
뫼르소는 호주머니에 권총을 넣은 채 별 생각 없이 혼자 산책을 나갔다가 레이몽을 찌른 그 아랍인과 다시 마주친다. 아랍인이 단검을 꺼냈을 때 햇빛이 반사되어 눈을 비추자, 뫼르소는 이유 없이 아랍인을 향해 한 발의 총을 쏘아 버린다.
그리고 잠시 시간을 두고서는 연속으로 네 발을 몸통에 관통시켜 죽여 버린다. 이 살인 사건 때문에 뫼르소는 재판을 받는데, 그는 이 과정에서도 특별히 자신을 변호하려 하지 않는다. 재판관이 뫼르소에게 살해한 동기를 묻자 강렬한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검사는 재판에서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 때 보였던 태도와 그 후의 행동들을 부각시키면서 그를 나쁜 인간으로 몰아세운다. 뫼르소는 쇼같이 우스꽝스럽고 귀찮은 재판이 빨리 끝나서 감방에 혼자 있기를 바란다.
자신의 죄에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 뫼르소는 결국 사형을 선고 받는다. 그는 신부(神父)와의 면담을 거부하고, 신부가 일방적으로 감방을 방문해 기도를 하자고 하지만 단호하게 거절한다. 우리는 모두 다 죽을 운명이고, 자신은 신부보다 더 죽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신부가 감방을 떠난 뒤 뫼르소는 오히려 차분한 마음으로 그가 단두대 앞에 매달릴 때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을 질러주기를 바라면서 마무리 된다.
책에 덧붙여진 최수철의「이방인」에 대한 해설 또한 작품을 감상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신에 대한 회의를 품지 않고 살아간다면 진정한 자신에 대한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죽게 된다.
매일 일상에 펼쳐지는 평범한 일들. 습관적으로 타성에 빠져 살아가는 삶에서 날마다 되풀이 되는 일상은 권태롭기 짝이 없는 행위들이다. 살아간다는 그 자체가 무의미할 뿐 아니라 특별히 낯설 것도 없는 풍경일 뿐이다.
사람이 죽고, 섹스를 하고, 담배를 피우고, 직장에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행위에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면 굳이 세상의 삶에 애쓰면서 살아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세상을 자신이 거부하면 되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이 보았을 때 뫼르소의 행위가 반인륜적이고 무정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는 엄마의 시신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커피를 마시고, 장례식 후 곧바로 수영을 하고, 여자와 섹스를 하는 등의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들. 태양의 강렬함에 사람을 죽였다는 이해할 수 없는 진술은 누구나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자신의 저지른 죄에 대한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고 사형이라는 판결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최소한 자신에게만은 솔직할 수 있었고, 가식으로 덮인 부조리한 현실의 삶을 정직하게 드러내 보였다.
법정에서 뫼르소가 밝힌 살인 동기는 모든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지만, 진정으로 부조리한 것은 뫼르소인가 아니면 세상 사람들인가. 자신의 주체성을 상실한 현대인들이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을 해보면서 나 자신도 부조리한 인간의 전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허경태 기자 gjshstn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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