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 “박정희 대통령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진정한 건설자”
[이환수 기자] 대선 유력 후보인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당 대표 경선 이후 비상대책위원회를 해산하면서 침묵모드에 들어갔다. 이에 야당을 막론하고 당 내 비박주자들이 끊임없이 도발하고 있지만 아무런 대답조차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문제를 지적하고 압박을 가하는 다른 대권 주자들에게는 소리없는 아우성이나 구태 흠집내기의 전형이라는 인식을 보여주면서 오히려 역 효과를 내고 있다는 관측이다. 이는 박 전 대표의 지지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4.11총선처럼 보수층 결집이 선거를 좌우했다면, 이번에는 이른바 박근혜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꾸준한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6개월도 채 남지 않은 대선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에 있지만 가장 조심해야 할 입장인 박 전 위원장. 그가 앞도적인 대선 지지율을 보이기 때문에 다른 대권 주자들의 견제가 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지지율이 대선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박 전 대표가 앞에 나서지 않고 아직 대선 출마를 공식화 하지 않은 것도 현재의 비박주자들에게 더욱 심한 견제를 피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그가 지난 대선의 악몽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선택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조갑제, 박정희는 지금 민주주의 건설자>
대표적 보수논객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21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에서 “박정희 대통령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의 진정한 건설자”라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든 제도와 경제력을 딛고 우리가 지금의 민주주의를 즐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민주주의는 부자 나라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이고 가난한 나라에서 민주주의 하면 반드시 쿠데타가 난다든지 혁명이 난다”면서 “1972~1979년 7년 동안 한국이 중화학 공업 투자, 새마을 운동, 그리고 대한민국을 일류 국가 문턱까지 가져온 우리 역사상 최대의 발전을 한 시기이며 정치적 자유의 제약과 경제적 발전이 같이 온 시기”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박 전 대표에게 “유신독재, 독재자의 딸, 이런 식으로 카테고리를 아주 단정시키는 것은 역사에 대한 일종의 모독이라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한 정치 분석가는 “여권에 분명 썩은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여권의 박근혜를 보면 타 후보들보단 통솔력이나 정책을 추진할 능력이 탁월하다”며 “지금 야권을 보면 정권을 잡지 못한 세력인데도 불구하고 다시 오만한 자세로 타 후보 흠집내기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계속되는 통진당 비례대표 논란이 보여주는 것처럼 스스로 사분오열하면서 국민을 무시하고 있으며 줄이나 문재인, 손학규 등 현 야권의 대선주자 그 누구도 반MB를 넘어선 리더십이나 비전을 지니고 있어 보이진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내가 하면 다 된다. 박근혜, 안철수는 안 된다”는 오만함이 다시 국민들의 뇌리에 정치에 대한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 안철수의 경우에도 계속 판만 기웃거릴 뿐, 그 정체를 분명히 하지 않는다며 경제 문제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혁신을 하더라도 그 이후의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인데 현재의 모습에선 박근혜를 넘어서는 인사가 없다고 주장했다. 합리적 선택이란 늘 상대적인 판단이기에 지금으로선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국가를 위해 가장 우수한 선택은 아닐까 하는 개인적 의견도 밝혔다.
<침묵모드 깬 이후 공격 약화>
“(MBC)파업이 장기화하면 결국 국민이 가장 불편해하고 손해를 보는 것 아닙니까. 노사간에 빨리 타협하고 대화해서 정상화되기를 바라는 것이 국민의 마음일 것입니다.”
박 전 위원장이 22일 MBC 파업에 대해 처음으로 말 문을 열었다. 그는 “파업이 (노조원들의) 징계 사태까지 간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며 너무 장기화하고 있는데 노사가 서로 슬기롭게 잘 풀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윤상현 의원은 “노사가 슬기롭게 잘 해결하라는 원론적 발언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은 자신의 대선 출마 선언 시점과 관련해서는 "조만간 알려드리겠다"며 추가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당내 비박(非朴) 대선주자들이 대선 후보 경선 룰을 변경하지 않으면 경선에 불참할 가능성을 내비친 것에 대해 “당 지도부에서 의견 수렴을 하며 노력하고 있으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당원 명부 유출 사건에 대해서도 그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출된 명부를 입수한 문자발송업체를 이용했던 여야 예비 후보가 180여 명이고 새누리당 의원만 18명이 당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지도부 책임론이 거세지자, 박 전 위원장이 입장을 밝힌 것으로 풀이되며 “유출 경위가 어떻게 됐는지 자세하게 밝혀야 된다”며 명부를 건네받은 의원의 사퇴 문제에 대해선 “조사중”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이에 민주통합당은 박용진 대변인은 22일 국회 정론관에서 박근혜 의원의 새누리당 당원명부 유출 및 MBC 발언 관련 브리핑을 통해 “박 전 위원장이 유출경위가 어떻게 됐는지 자세히 밝혀야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철저하게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잘못됐다”며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 할 말”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유출경위를 밝히고 책임을 명확하게 해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박근혜 의원 본인이다”며 “당원명부 유출사고와 관련해 당시 새누리당 최고책임자였고, 공천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했던 박근혜 의원이 대국민 사과나 이를 책임지기 위한 실천적 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박근혜 의원이 초장기 파업과 대규모 징계로 치달은 MBC사태에 대해 입장을 밝힌 것은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다”며 “그동안 무엇을 하다가 파업사태가 140일을 넘고, 100여명의 징계사태가 있고 나서야 MBC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지 궁금하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의 비난 수위가 예전 무차별적인 의혹제기 보다 신중해 졌다는 평가다.
이는 박 전 위원장의 침묵모드가 오래 동안 지속될 것이란 관측이 빗나갔기 때문이다. 침묵모드에 대해 연신 공격을 가하다, 이제 그의 말꼬리 잡기 수준에 그쳤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날 민주통합당의 브리핑 내용에는 “발언의 내용도 문제가 있다. 군사정권 때보다 더 혹독한 대규모 징계에 대해 ‘안타깝다’는 짤막한 평가 한 마디에 그친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평했으며 “‘국민을 생각해서라도 노사 간에 빨리 타협하고 대화해서 정상화되기를 바란다’는 발언 역시 핵심이 빠져있다”고 폄훼했다.
이 같은 브리핑은 침묵모드의 박 전 위원장에게 가한 내용과는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말미에는 “박근혜 의원의 이번 발언이 MBC사태가 조금 나아지려고 하는 기미가 반영된 발언이기를 바란다”고 말해 온순해진 화법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여기에 비박 대선 주자들도 박 전 위원장의 책임을 물었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유출된 명부가 대선 경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경선 룰 수정을 촉구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당원, 대의원이 50%나 차지하는 경우에는 50% 이상의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으며 이재오 의원은 부정 선거 당사자들의 의원직 사퇴까지 거론했다. 하지만 박 전 위원장의 발언 이후, 무차별적 공세는 사라진 모양새다.
이어 박 위원장은 민생행보를 이어가며 비박주자들의 경선불참 발언에도 당 지도부에서 알아서 할 일이란 입장을 고수했다. 비박주자들의 강경 발언에도 자신만의 대선 행보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비박주자들의 연일 강경한 발언이 당 내 갈등을 부추기는 듯 이미지를 주면서 친박계는 더욱 단합된 모습이다. 박 위원장이 나서지 않아도 친박계가 주류인 새누리당에서 비박주자들의 이러한 강경 이미지는 대선마다 발목을 잡았던 탈당이나 전세 역전에 빌미를 만들어 왔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11, 13, 14대 등 3선 경력을 쌓았고, 1990년 1월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의해 집권당인 민정당 대표에 오르며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됐다.
그러나 민정당 대표 취임 후 ‘3당 합당’ 후 당시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 밑에서 최고위원직을 맡았으나,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내각제’의 대통령선거 공약화를 요구하다 김영삼과 갈등을 빚었다.
결국 14대 대선 직전인 1992년 10월 민자당을 탈당해 김영삼 후보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 준 인물로 거론되고 있다. 고인이 된 그는 총리직 퇴임 이후 정계 복귀 가능성이 꾸준히 점쳐졌지만, “정치에 환멸을 느꼈다”며 끝내 현실 정치를 외면했다.
또 1995년 9월 누구랑 붙어도 승리할 부동의 1위 지지율을 자랑하던 박찬종 당시 신한국당 고문의 기세는 현재 박 전 위원장의 지지율보다 더욱 높았다. 당시 그의 지지율은 44~50%에 달하며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26~28%의 지지율을 보다 월등했다.
박찬종 전 의원의 기세는 대선의 해인 1997년 초까지 이어졌지만 그해 6월 말부터 급부상한 이인제 의원에게 위협당하고 이회창 전 총리가 당심(黨心)을 장악하면서 코너에 몰렸다. 박찬종 전 의원은 1997년 7월 13일 “이회창 후보가 금품을 살포했고 자신에게 후보를 사퇴하라고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라며 7월 19일 대선 후보 사퇴를 선언한다. 이는 곧 김대중 후보의 대통령 만들기에 빌미를 제공한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후 1997년 7월 당시 한나라당 전신인 신한국당의 15대 대통령 선거 후보 1차 경선의 1, 2위가 맞붙은 결선투표에서 이회창(60.0%)은 이인제(40.0%)를 누르며 사실상 대통령 당선이라는 현실에 직면했다.
하지만 이회창 전 대표가 아들 병역기피 의혹으로 지지율이 급락하자, 이인제 후보는 경선에 불복하고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국민신당을 창당해 15대 대통령 선거 개별출마를 선언해 결국 김대중 당시 새천년 민주당 후보에게 석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느 정치권에서 아직도 DJ 당선의 1등 공신은 이인제, 이회창의 최대 역적은 이인제”라고 회자되고 있다.
지난 2007년 3월 19일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대선 경선 레이스 도중 한나라당 전격 탈당했다. 당시 '빅3' 가운데 여론조사 선두를 달리고 있던 이명박 후보는 손 전지사의 탈당했다. 이는 박근혜 전 위원장에게도 큰 영향을 끼쳐 당 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경선방식을 바꾸는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와 유사한 경우가 2007년 대선에서도 있었다. 바로 고건 전 총리다. 고건 전 총리가 대선구도에서 두각을 나타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다. 탄핵 당시 고건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을 대리해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해 차기 대통령 감으로 꼽히기 시작했다. 당시 고건 전 총리는 지지율에서 부동의 1위를 유지했을 뿐 아니라 2위와의 격차가 무려 두 배에 달했다. 이런 현상은 2005년 9월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2005년 10월경부터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이른바 ‘청계천 효과’를 등에 업고 치고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뀐다. 당시 여론조사를 보면 고건 전 총리가 1위를 유지하긴 했으나, 이명박 시장이 고건 전 총리를 거의 근접할 정도로 추격했다. 이때부터 소위 고건, 박근혜 그리고 이명박의 3파전이 시작된다. 2006년 6월까지는 고건 전 총리가 다른 두 주자보다 근소하나마 1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고건 전 총리의 경우 2006년 8월 ‘희망한국국민연대(희망연대)’를 출범시키고 새로운 정치세력을 주장하며 ‘안정’과 ‘통합’ ‘중도실용’ 노선을 핵심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고건 전 총리는 지방선거 이전에 정당을 만들어 선거에 참여하려는 구상도 갖고 있었다. 그해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했고 여권 내의 노선투쟁과 그에 맞물린 정계 개편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고건 전 총리의 지지율은 추락했다. 고 전 총리는 이듬해인 2007년 1월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당 내분 사태가 큰 파장을 몰고온 대선 사례는 충분하다. 이번주 중 박근혜 전 위원장은 대선 공식 출마를 선언할 예정이다.
이환수 기자 naewoe45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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