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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창 칼럼] 2022 한국사회, 다중의 위기와 삶의 정치
  • 시사코리아저널
  • 승인 2022.01.03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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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창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상임이사

2022년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어제와 같은 태양이지만, 대나무가 마디를 맺듯, 적절한 단절과 새로운 시작이 있어야 살아가는 재미가 있기는 하다.

순환적 시공간관을 가진 동아시아에서는 ‘되돌아가는 것이 만물의 법칙’(反者道之動)이라고 했다.
가장 햇빛이 짧은 동지에 새로운 빛의 기운이 시작된다는 정서가 우리 문화에는 곳곳에 스며 있다.
이 같은 정서는 ‘위기(危機)’란 말 속에도 보인다. 위험과 기회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존재하고, 인간의 노력에 따라 위험에 빠질 수도,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는 이중적인 의미가 위기란 말 속에 내포되어 있다.

다중 위기에 빠진 한국 사회

오늘 한국 사회는 삼중 혹은 사중, 아니 몇 층이나 되는지 모르는 다중의 위기와 갈등에 놓여 있다.
남북문제, 양극화 문제가 전통적인 위기였다면 기후변화, 성과 세대의 갈등은 최근에 와서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문제다.
한 사회의 갈등을 조정하고 해소해가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지만, 여전히 삼류에 머물러있는 한국사회의 정치는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실타래를 더 꼬이게 만들고 있다.
식민지, 전쟁, 독재 등으로 정치가 생활 속에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탓이 크다.

무엇보다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는 지구적 차원의 ‘기후위기’다. 지난 산업화과정에서 인류가 만들어낸 근대문명은 인류 자체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전체 인류의 4.1%를 차지하는 미국이 전체 에너지의 23%를 소비하고, 상위 20%가 82%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하위 80%는 단지 18%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을 뿐이지만, 피해는 가장 먼저, 가장 아프게 받고 있다.

근대화, 산업화가 만든 오염에 대해 선진국이 책임지는 자세와 모습이 없기에 수많은 국제회의가 열리지만 별다른 성과없이 끝나는 일이 연례행사가 됐다.
아마도 대파국에 직면해야 정신을 차릴 듯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을 것이다.
지난 역사에서 보는 것처럼 인류의 이성이란 그리 믿을 만한 것이 되지 않는다.
GDP로 볼 때, 세계 10위의 대열에서 들어선 한국사회도 적지 않은 책임을 가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변화와 대처는 더디기만 하다.

두 번째로 국가적 차원의 ‘불평등과 불균형’의 문제다.
21년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6.5%, 전체 부의 58.5%를 각각 차지해 하위 50%의 평균보다 소득은 14배, 부는 무려 52배나 높은 것으로 나왔다.

이와 같은 불평등은 서유럽과 비교할 때 1.5~2배가 높은 것이며, 피케티의 불평등지수를 적용하면 19세기 프랑스 혁명기보다 빈부격차가 심한 상태라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심각한 빈부격차는 격한 사회갈등과 혁명적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지만, 분단체제가 분노를 막고 있다고 봐야 한다.
강자를 억제하고, 약자가 일어서도록 돕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은 정치의 본질적이고 고유한 역할이지만, 이미 기득권체제에 진입해버린 정치인들은 하는 척 시늉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평등은 다양한 불균형과 사회갈등을 낳는다. 한국사회의 주요한 인적, 물적 자산이 모여있고 그나마 기회의 장이 있는 수도권으로 몰려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사상처음으로 지난해에는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 수도권은 과밀화로, 비수도권은 과소화로 함께 죽어가고 있다. 불평등은 점점 심해지고 있는 세대간, 남녀간 갈등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상위10%가 절반 이상의 부와 소득을 독과점한 상태에서 나머지 절반을 두고 90%가 경쟁을 하는 상황이니 그 경쟁은 치열하고 절박하다. 약자들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해나가야 하지만, 그렇기에는 삶의 여유와 여력이 너무 없다.

20대의 자살율증가 12.8%가 의미하는 것은?

삶의 여유를 가진, 강한 내면을 가진 개인들을 키우는 것은 교육의 힘과 역할이지만, 국가의 통치도구가 되어버린 교육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해본 적은 없다.
국가와 행정으로 독립해 교육자치를 선언하고 실행한 지도 벌써 30년이 되었지만, 교육자치의 실제적인 효과는 찾기 힘들다.
여전히 청소년들은 대학과 입시에 속박되어 있으며, 스스로 삶의 비전을 가진 청년들은 찾기 힘들다.
2021년 코로나19의 상황에서 전년도에 비해 20대들은 12.8%, 10대들은 9.4%로 자살율이 증가했다. 죽은 자들은 말이 없지만, 1년 만에 자살율이 10%나 증가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가? 기성세대, 특히 미래세대를 키우는 교육의 철저한 실패로 봐야 한다.

이와 같은 다중의 위기에 처한 한국 사회가 도약을 할 수 있을까? 필자가 보기에는 쉽지 않아 보인다.
K-문화, K-방역 등 간혹 주목할 만한 성과를 보인 부문도 있었지만, 제비 한 마리를 보고 봄이 왔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지 못하고 ‘중진국의 덫’에 빠진 많은 나라의 경우처럼, 우리사회도 중진국의 덫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지금은 대략 경제활동인구 5명이 노인인구 1명을 부양하는 구조지만, 앞으로 50년 뒤는 1명이 노인인구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가 된다.
10년마다 경제적 하중이 지금보다 2배씩 증가하는데, 우리 사회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고령화 사화에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데 프랑스는 154년이 걸렸지만, 우리 사회는 불과 25년 만에 진입한다. 성장이 압축적이었지만, 퇴화는 더욱 압축적이다.

물론 제3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한, 기적 같은 일을 이룬 민족이기에 또 다른 기적도 충분히 일어날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다시 기적을 위해서는 맹자가 말한 천시(天時), 지리(地利), 인화(人和)의 운이 함께 해야만 가능할 듯해 보인다.
올해 그 운의 첫 번째 향방은 두 번에 걸쳐 전국적으로 치러지는 선거에서 국민들의 집단지성이 무엇을 상상하고, 어떻게 발휘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불완전한 헌법 제1조지만, 대한민국의 운명은 국민들의 상상력과 집단지성이 결정할 것이니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어느 시대나 어떤 사회든 위기가 닥치면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강해진다.
기독교·유교·불교가 형식화되고 기득권화 되었을 때, 다시 예수·공자·붓다의 처음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소수의 목소리와 울림이 있었기에 이들 종교는 2천여 년간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제는 거대해질 대로 거대해져 종교 자체가 외면을 받는 시대가 되어 가고 있긴 하지만 우리 사회 뿐만 아니라, 다층적인 위기에 쌓인 지구·국가·지역·개인·생명들이 제자리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다시 근본으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근대화·산업화가 크고 거대한, 물질적인 것들을 향해 달려왔다면 새로운 전환을 위해서는 작고 여린 것들을 중심으로 크고 강한 것들이 보충하고 보살피는 방식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작고 여린 뭇 생명들을 인간들이 보살피고, 약한 개개인들은 지역사회가 비빌 언덕이 되고, 건강한 지역공동체가 되도록 국가는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야 한다.
또한 약소국이 건강하고 민주적인 공동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유엔과 같은 세계연방이 지원해야 한다.
물론 리바이어던의 모습을 한, 괴물 같은 국가가 스스로 그런 역할을 할 것 같지는 않지만, 이런 상태로는 멀지 않은 미래에 인류는 공멸한다고 봐야 한다.

2022년, 위기극복은 삶의 정치 회복을 통해

정치 또한 삶의 정치로 전환해야 한다. 삶의 정치는 엘리트들에게 정치를 위임하는 것을 최소화하고, 시민들이 직접 정치의 장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물질적 부가 적지 않은 만큼, 모든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와 환경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학교에서부터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자가 되는 법을 배우고, 노동시간의 단축을 통해 모든 시민들이 공적 삶과 정치에 시간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500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도 했고, 지금 스위스에서도 하고 있는 일을 우리 또한 충분히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전지구의 파국적 상황을 막고 새로운 전환을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하다.
연결성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자본이나 국가와 같은 것들이 중요했지만, 오늘날과 같은 초연결의 시대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과 노력이 중요하다.
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이 최근 몇 년간의 움직임과 같은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리라 누가 짐작했겠는가?
근본으로 돌아가려는 목소리와 움직임이 세계 곳곳에서 나오기 시작한다면 벼랑 끝에서 새로운 전환이 시작될 수도 있을 것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도 직접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전국민회와 함께 임인년 새해를 맞아 청년들이 삶과 정치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할 수 있도록 마중물을 대는 일을 시작한다.
파국적 상황에서 정치는 구성원들의 마음을 모으고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이지만,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대부분의 청년들은 정치에서 소외되어 있다.

정치의 중요성을 교육받지도, 정치의 길을 안내받지도 못한 채 성인이 됐지만 지금의 곤경에서 탈출하는 길은 청년들이 직접 정치의 길에 나서는 일이 중요하다.
벼랑끝 지구환경과 불평등의 국가를 만든 기성세대는 한 발자국 물러나 청년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도우면 될 것 같다. 마중물이 폭포수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칼럼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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