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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4기 故이재복 前진해시장 사망 1주기 맞아유가족 등 추모객 100여명 추모예배
  • 시사코리아저널
  • 승인 2010.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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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코리아저널/김성삼기자]故이재복 前진해시장 사망 1주기를 맞은 지난7일 오전11시부터 12시까지 1시간 동안 창원시 진해구 장천동 소재 진해침례교회에서 이 前시장 부인, 아들을 비롯한 유가족과 지인 등 추모객 100여명이 고인의 생전을 회고하고 명복을 기원하는 추모예배를 열었다.

특히, 이날은 옛 진해시의회가 시민의 강력반대도 불구하고 마산, 창원, 진해 3개시 통합을 의결한 날이다. 하지만 통합시가 출범한 지 6개월이 된 지금 진해주민들은 市恥日(시치일)이라며 통합주체세력들에 대한 질타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진해가 크게 홀대받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해지면서 진해를 되찾자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가고 있다.

사망 1주기를 맞은 故이재복 前진해시장의 지난영욕과 통합당시 옛 진해시의원들의 발자취를 조명해본다.


◇故이재복 前진해시장

진해시 60여년 역사의 막을 내린 민선4기 故이재복 前진해시장. 그는 1947년 경남 진해시 웅동1동 대장동에서 경남도의원을 지낸 부친 이상인(2008년 작고) 씨와 모친 김동련 씨 사이에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부는 진해 웅동 4.3독립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항일 독립운동가 이동개 옹이다.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낙향한 뒤 부친 사업을 잇던 그는 지난 1995년 제5대 진해시의원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시의원 시절 예리하고 날카로운 시각으로 각종 행정의 난맥상을 지적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그가 지난 1998년 한나라당 공천으로 시장선거에 나섰지만 참패하면서 선거법 위반으로 6개월간의 실형을 살았다. 당시 IMF로 인해 운영하던 금화종합건설회사 마저 부도위기에 처하는 등 최대 위기를 맞았다.

지난2006년 5.28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진해시장에 당선돼 재기에 성공했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자신의 공약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불철주야 시정을 불도처럼 밀어붙였다. 특유의 추진력으로 굵직굵직한 지역 현안들을 처리해갔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 1월 15일 창원지검특수부에의해 특가법상 제3자 뇌물공여혐의 등으로 불구속기소 됐다. 인•허가와 관련 진해세계군악의장페스티벌 추진위원회와 진해시장학회 등에 총11억원을 기부토록 한 혐의로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불명예를 안았다.

지난 2008년 3월 진해지역 기관장 배구대회에서 고관절을 다쳐 치료 중 우연히 발견됐던 폐암으로 임기 6개월을 남겨둔 채 63세의 일기로 영욕을 뒤로하고 부친 故이상인 옹이 잠들어 있는 진해구 천자봉공원묘지에서 영면했다.

그가 별세한 그날 진해시의회가 통합을 의결해 진해시는 그와 함께 60여년의 역사가 막을 내리고 있었다.


◇마산. 창원. 진해시 통합을 주도한 옛 진해시의원들과 통합을 저지하고 고향을 지키려 했던 옛 진해시의원들 그들은?

故이재복 前진해시장이 별세한 지난해 12월7일 진해시의회 로비에는 시민들과 시민사회단체가 통합결사반대를 외치며 몸으로 통합의결을 저지하고 있었다.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집권여당 한나라당의 참패로 끝난 6.2지방선거에서 진해시민들의 매서운 심판은 통합을 주도했던 한나라당과 주역을 맡았던 시의원들에 가혹하게 내려졌다.

한나라당 의원 중 통합을 적극반대 했던 김성일, 김헌일 의원은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김하용 의원 역시 통합을 반대하며 선거 전 한나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정우서(당시 정영주 의원. 6.2지방선거 후 개명) 의원은 한나라당의 아성에서 민주당 깃발로 당당히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와 반대로 통합을 적극 찬성하며 주도했던 8명 의원 중 7명은 불출마 또는 낙선했다. 통합찬성의원 중 유일하게 유원석 의원만이 당선돼 통합창원시 초대 부의장으로 의정활동을 잇고 있다.

지난2006년 5.31지방선거에서 진해시의원 13석 중 민주당 비례대표 1석을 제외한 12석을 싹쓸이했던 한나라당이 올해 6.2지방선거에서 통합을 반대한 진해시민의 민심을 읽지 못한 결과 비례대표를 포함해 겨우 6석에 그쳤다.

지난해 12월 7일은 시민의 뜻을 외면하면 냉혹하게 심판받는다는 역사의 교훈을 남겼던 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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