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내를 굽어보는 정병산에서 만난 정분이 할머니.

[시사코리아저널=박안평 시민기자]
 

◾할머니와 만남◾

홍단풍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경남도청 뒤 사림동소재 정병산은 창원시민이 즐겨 찾는 진산이다.
된비알 ‘깔딱 고개’에 코를 박고 올라선 산정에서 마루금을 내려다보면, 마치 공룡이 낙남정맥을 걸어가듯 가을 산이 꿈틀거린다.

2년 전 이맘때나 되었을까? 정병산 중턱에서 어떤 할머니를 뵌 적이 있다,
예쁜 등산복 차림으로 사뿐사뿐 산에서 내려오는 할머니를 만나면서 내 두 눈이 왕방울처럼 휘둥그레졌다,
지긋한 연세, 호리호리한 체형과 인자한 모습, 세월에 익어간 아름다운 미소가 참 따뜻했다.

이후 가끔씩 산우가 된 할머니와 스쳐 지나면서 인사만 나누다가, 최근 솔향기 번지는 벤치에 걸터앉아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정분이(85세) 할머니는 봉곡동 봉림사 앞 어느 주택에 살고 계신다.
 
매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을 다니시는 할머니의 쾌청하신 건강비법을 여쭈었다.
"산은 숲 속 병원”이라 하시는 넉넉한 마음을 읽을 수가 있다.

◾원치 않은 시련◾

정분이 할머니의 행상시절 모습.

할머니가 마산 어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좌판.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꽃다운 33세 사고로 남편을 잃고, 원치 않은 시련이 닥쳤지만 그녀는 오직 6남매 자식들 키우느라, 내 한 끼 수저질에도 바빴던 날들을 노천 풍상에서 잘 이겨내셨다.

당시에도 마산의 유명한 '어시장'을 찾아서 새벽을 열면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넓은 대야 속엔 싱싱한 야채며, 비릿한 생선, 갖가지 농수산물을 싼 가격에 받아 머리에 이고, 이곳저곳 생계를 위한 발품으로 가장의 삶을 살아오셨다.

그렇게 시린 세월 동안 어찌 고행만 있었겠는가? 어린 자녀들의 재롱에, 따뜻한 이웃의 말 한마디가 할머니께 큰 버팀목이었을 것이다.

◾좌골신경통과 우울증◾

산이 옷을 바꿔 입고 있다.
숱한 날 시장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물건을 팔던 누적된 세월이 결국 60대에 '좌골 신경통과 우울증'을 부르게 된 것이다.
병원은 물론이고, 온갖 양약과 한약 민간요법을 써봤지만 차도가 보이지 않았고, 견디기 힘든 고통이 삶의 비극을 선택하려던 순간 우연히 지인의 권유에 산을 찾게 된다.

이후 간절하게 매달리는 그녀의 지극정성에 산은 너그러운 손을 높이 들어준 것이다.

몸 구석구석, 세포, 정신세계까지 미세한 돋보기로 들여다보듯 묵묵한 숲의 진료는 시작되었고, 오직 일념으로 찾았던 숲 속병원의 '산행'이 결국 기적적인 자가 완치를 낳은 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놓지 않을 자신의 건강을 위해 늦깎이 70세부터 산으로 출근도장을 찍었더니, 덤으로 시력이 좋아져 눈썹 자리에 회색의 새벽이 내릴 때까지 불교 경전 '법화경'을 쓰시는 생의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것이다.

그런 자연 순환 속에서 새 세상을 일구어 낸 인생 제2막 할머니의 ‘건강’만들기 프로젝트가 많은 이들에게 희망의 빛이 되기를, 이 가을 홍 단풍잎 위에 또박또박 글자를 적어본다.

박안평 시민기자(창원)

창원 정병산에서 내려다 본 창원시내 전경.

창원 정병산 정상의 표지석

창원 정병산 등산로.

박안평 시민기자  bark-34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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