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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서 9세기경 금동여래입상 2구 출토
  • 신해욱 기자
  • 승인 2017.07.24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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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코리아저널 신해욱 기자] 영덕 유금사 3층 석탑(보물 제674호)보수사업에 대한 정밀 발굴조사 중 탑의 북쪽에서 유금사 초창기 금당지 발굴, 남서쪽 가장자리에서 9세기경의 금동여래입상 2구가 출토됐다.

영덕군(군수 이희진)은 재)삼한문화재연구원(원장 김구군)에 의뢰하여 병곡면 금곡리 838번지에 위치하는 유금사 3층 석탑 이전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2017년 5월 22일부터 6월 22일까지 조사했다.

이번 조사는 유금사 경내 북서쪽에 유존하고 있는 3층 석탑이 틈이 벌어지고. 한쪽으로 기울어짐에 따라 이를 해체‧이전 복원하고자 시행했으며, 이에따라 이전지에 대한 매장문화재 시굴조사(2016년 9월)와 정밀발굴조사를 실시했다.

▲ 영덕 유금사에서 출토된 9세기경 금동여래입상.
발굴조사 결과 현 석탑의 북쪽에서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초창기 금당이 조사되었고, 남동쪽에서 금동여래입상 1구와 호신불금동여래입상 1구, 통일신라시대 기와편이 전면에 깔려 출토됐다.

조사결과로 볼 때 유금사는 3단으로 축대를 쌓고, 위에서부터 차례로 강당, 금당, 탑을 남-북축 선상에 3원 1련식(三院一連式)으로 축조된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산지가람임이 확인됐다.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로 추정되는데 출입시설(계단)과 답도(딛는 도로)가 일부 확인되었다. 현재 확인된 적심으로 볼 때 대략적인 금당의 규모는 길이 1,210cm, 너비 610cm이다. 출입시설은 금당의 중간지점 앞쪽에 계단이 확인되고, 계단과 연결하여 할석을 깐 답도가 만들어져 있다.

한편 시굴조사에서 현 삼성각 가장자리 바깥 아래쪽으로 축대일부가 확인되었는데, 금당지와 간격을 고려할 때 강당지의 기단석일부로 추정된다.

원 탑지는 금회조사에서 확인되지 않았지만, 금당지의 중심축에서 볼 때 현 조사지 외역에 유존할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기존의 3층 석탑은 원 탑지에서 약 5~6m가량 이동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출토유물로는 금동여래불상 2구가 출토되었는데, 완전한 여래불상은 높이가 39.5cm이며, 거신광배는 탈락되고 없으나 전체적으로 잔존상태가 온전하다.

오른손은 가슴까지 올려 시무외인을, 왼손은 내려 여원인을 하고 있다. 통견법의는 안에 속옷을 묶은 매듭이 있고, 통견은 전체적으로 “U”자상으로 흘러내리는 아육왕식의 주름이 음각 새김선으로 새겨져있다. 그리고 뒷면에 탕구 등의 구멍이 몸 전체에 뚫려 있고, 호상과 “U”자상의 통견법의의 음각새김 등으로 볼 때 9세기 전반기에 제작된 불상으로 판단된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 이즈음에 제작된 금동여래입상은 경주 안압지 출토 금동여래입상(24,.7cm), 홍천 물걸리사지 출토 금동여래입상(22.6cm), 의령 보리사 출토 금동여래입상(26cm) 등 수점에 불과하다. 본 금동여래입상은 9세기 전반 경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 금동불상 가운데 가장 큰 입상이다.

그리고 유물의 크기, 잔존상태, 미학적인 측면을 고려할 때 지금까지 알려진 여래입상 가운데 가장 우수한 예술작품으로 지정문화재로 가치가 인정된다.

따라서 추가적인 조사를 통해 원 탑지를 찾고 강당과 금당지의 전체모습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경주외역에 건립된 8~9세기 산지가람의 전모를 밝힐 수 있는 주요한 유적이므로 현 조사범위 외역에 대한 정밀발굴조사가 필요하다.

향후 해체 보관중인 3층 석탑은 원 탑지를 확인한 후, 그 곳에 이전하고, 아울러 초창기 유금사의 사역확인을 통해 당시 절터를 복원하여, 고대 사원문화의 교육장 및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신해욱 기자  shw44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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