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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태 국회의장,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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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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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코리아저널/이환수기자]박희태 국회의장은 1일 오전 양재동 시민의 숲에 소재한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방문, 윤 의사 동상에 참배한 후 기념관을 둘러보고 관계자들을 격려했다고 한종태 국회대변인이 전했다.

박 의장은 방명록에 “불멸의 충혼, 겨레 가슴에”라고 남긴 후 2층 기념사업회장실로 이동, 기념관 운영 현황과 애로사항을 보고받았다.

박 의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 달 일본 순방 시 가나자와 시에 있는 윤봉길 의사 순국 현장을 방문, 순국 기념비에 헌화했던 것을 상기시키면서,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의거를 한 윤 의사가 ‘왜 이역만리 가나자와 시까지 인치됐는지, 또 윤 의사가 총살형을 당한 시간이 윤 의사의 의거로 숨진 시라가와 대장의 사망 시점에 맞춘 게 아닌지’에 대해 자세히 소회를 밝혔다.

다음은 박 의장의 언급 내용이다.

- 일본 국회의장의 공식 초청을 받아 도쿄 일정을 마치고 나서 가나자와 한 군데만 갔다. 그곳에 간 이유는 윤 의사가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의거를 하셨는데, 왜 수륙만리에 있는 일본, 그것도 일본의 작은 시골 마을인 가나자와까지 인치됐을까 하는 의문감이 나를 강하게 그쪽으로 이끌었다.

- 윤 의사의 순국 현장은 일본 9사단 영내였고 지금도 자위대가 그곳을 관리한다. 왜 9사단 자리였나.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윤 의사의 폭탄에 의해 숨진 시라가와가 그 곳 9사단장 출신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곳까지 끌려간 것이다.

- 그렇다고 해도 왜 가나자와까지 윤 의사를 인치했는가. 당시 중국 신문에는 일제가 윤 의사를 순사(순장)시키기 위해 일본으로 인치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순사는 높은 사람이 죽으면 같이 묻는 것 아닌가. 그런 목적이 아니면 왜 일본까지 인치했겠는가.

- 시라가와는 당시 9사단의 사단장이 아니었고, 상하이에 주둔하고 있는 일본군의 총사령관이었다. 상하이 사변 당시 중국 정부에서 대 병력을 동원해 일본군을 제압하자 일본군은 본국에 도움을 요청했고, 이미 예편했던 시라가와를 현역으로 복귀시켜 대장을 달고 중국으로 보낸 것이다.

시라가와는 이후 상하이를 완전 진압했고 질서를 회복했다. 일본이 정말 아끼던 명장이었던 것이다. 윤 의사를 가나자와까지 강제 인치한 것은 순사 즉, 시라가와의 영전에 윤 의사를 바치겠다는 목적이 아니었겠나 하는 게 내 생각이다.

- 일본은 윤 의사를 상하이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한 뒤 극비리에 군함으로 오사카 형무소로 호송한 뒤 가나자와로 이송해서 하루 만에 총살형에 처했다. 이것을 보면 순사 외에 다른 목적이 없었던 것 같다.

- 그러면 왜 새벽에 총살형을 했는가. 이 점 또한 의문이 들었다. 총살 시간이 상하이의거와 무슨 연관성은 없는지? 그런 의문이 든 이유는 안중근 의사의 순국 시간이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서 죽은 시각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가 중국 대련 여순 감옥에서 순국한 시간은 오전 10시이고, 이토 히로부미가 저격받은 시간은 오전 9시 30분, 사망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 윤 의사의 총살 시간은 오전 7시 27분이다. 시라가와는 당시 홍커우 공원에서 상하이 병참병원으로 옮겨졌고, 얼마 지나 포도주까지 마실 정도로 회복한 것 같았는데, 다시 병세가 악화되어 28일 만에 사망했다. 그런데 그 사망 시간이 오전 6시 25분 이었다.

그러면 윤 의사의 순국 시간과 1시간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은데, 여기에는 시차가 있었던 것이다. 상하이가 일본보다 1시간 빠르다. 결국 시라가와 사망시간에 윤 의사 총살 시간을 맞춘 것이다. 겨우 2분밖에 차이가 안 난다.

의도적으로 맞추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나. 일제의 잔학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들으면 얼마나 가슴이 에이는가.

- 일제는 윤 의사를 십자가에 묶어 무릎을 꿇게 하고 총살했다. 총살 직전에 무슨 사전 절차가 당연히 있었을 텐데 어느 기록에도 나와 있지를 않다. 내 생각에는 꿇어앉히는 전 단계에 시라가와 영전에 바치는 무슨 사전 의식이 있었을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왜 꿇어 앉히는가.

- 윤 의사는 형 집행 직전 할 말이 없느냐는 질문에 “이미 죽기로 각오했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고 했다고 한다. 구구절절한 유언 한 마디 남기지 않았던 것이다. 이 얼마나 ‘위대한 영웅’인가. 이번에 느낀 점은 일제의 잔학성과 윤 의사의 위대함이다. 그 당시 윤 의사는 얼마나 고통을 느꼈겠는가. 그런데도 강인하게 끝을 마감하신 것이다.

- 윤 의사의 기백과 민족혼을 많은 사람들이 느끼길 바란다. 불멸의 충혼을, 민족의 가슴속에 빛나는 그분의 충혼을 간직할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 윤 의사의 충혼과 그 위대성에 대해 국민들이 알았으면 한다.

이에 대해 김학준 기념사업회장은 “박의장의 예리한 통찰력에 정말 놀랐다. 윤 의사 관련 기록에 그런 사실을 추가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박의장은 이어 김학준 회장에게 격려금을 전달한 후 윤봉길 의사 생애 전시실과 유물 전시실 등 기념관을 순시했다.

기념사업회는 ▶운영비 국고지원 ▶2012년 윤봉길 의사 상하이 의거 80주년 기념행사 거국적 실시 ▶일본 가나자와 순국 장소 확인 및 사적지화 ▶중국 상하이의거 기념행사를 국가 행사로 격상 등을 당면과제로 건의했다.

박 의장은 기념사업회의 당면과제에 대해 국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도울 것을 약속하면서 함께 참석한 권오을 국회사무총장에게 TF 팀을 즉시 만들 것을 지시했다.

이날 박 의장의 「매헌 기념관」 방문에는 기념사업회측에서 김학준 회장, 김양 국가보훈처장, 김옥남 기념사업회 지도위원(윤 의사 자부), 양승학 기념사업회 사무처장이 , 국회 측에서 권오을 국회사무총장, 윤원중 의장비서실장, 한종태 국회대변인 등이 함께 했다.

한편 김학준 기념사업회장은 전시실에서 박 의장에게 “윤 의사 순국과 관련해 보도를 처음 한 것이 동아일보다. 호외를 두 번이나 내서 더 감출 수 없으니까 경성일보에서도 보도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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