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코리아저널 김연학 기자] 헌법재판소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거침없는 행보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잇단 증인 심문으로 탄핵 심판에 속도를 내고 있고,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뿐만 아니라 다른 재벌 총수들도 정조준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수사에 특별사면 뒷거래 의혹까지 겹치면서 여론도 더 안 좋아졌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몰렸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청와대 내부에서는 박 대통령이 설 연휴 전에 어떤 식으로든 직접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탄핵 심판을 앞두고 특검 발표와 언론보도가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박 대통령이 적극적인 여론전을 펴야 한다는 것인데 섣부른 여론전은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고심만 깊어지고 있다. 최종 선택을 해야 할 박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설 연휴 직전 휴일인 오는 22일 추가 간담회에 무게를 두기도 했으나, 최근 헌재에 직접 출석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번 주부터 국정농단 의혹의 핵심인 최 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문고리 3인방’에 대한 헌법재판소 증인신문이 예정돼 있는 등 사실상 박 대통령 탄핵심판의 최대 분수령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 2회 재판을 이어오던 헌재는 탄핵심판 변론기일을 이번 주에만 16·17·19일 3차례 열기로 했다. 주요 증인들을 상대로 박 대통령이 ‘파면을 정당화할 만한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행위를 했는지’ 여부를 심리하게 된다.

2회에서 3회로 늘린 것은 지난 10일 핵심증인인 최 씨와 안 전 수석이 나오지 않자 16일에 특별기일을 열고 재소환하기로 한 때문이다. 헌재는 또 불응할 경우 강제구인을 해서라도 증인신문을 진행하겠다는 생각이다.

최 씨와 안 전 수석에 대한 증인신문이 예정돼 있는 16일 최 씨는 출석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최 씨는 박 대통령, 안 전 수석과 공모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53개 회원사를 상대로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774억 원을 내도록 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강요) 등으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또 △현대차 일감을 자신 또는 지인 회사에 몰아주기 △포스코 계열 광고사 강탈 시도 △광고감독 차은택 측근을 KT 전무로 추천 △ 그랜드코리아레저(GKL)에 장애인 스포츠단 창단 강요 등 혐의도 있다.

이 가운데 최 씨는 박 대통령의 탄핵사유인 △비선조직에 의한 국정농단으로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위반 △뇌물수수 등 형사법 위반 등 사항에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헌재는 최 씨를 상대로 박 대통령이 ‘파면을 정당화할 만한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 행위를 했는지’ 여부에 대해 집중적으로 심리할 계획이다.

하지만 최 씨가 증인으로 나오더라도 핵심 질문에는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의혹을 전면 부인할 가능성이 높다. 최 씨는 검찰 수사와 법원 재판 단계에서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혐의에 대해 모두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날 증인으로 헌재에 출석하는 최 씨는 오는 17일과 19·20일에는 법원에서 진행되는 자신의 형사재판에도 피고인으로 출석해야 하는 상황이다.

헌재는 이번 주 탄핵심판 변론기일을 이날을 비롯해 17·19일 등 총 세 차례 열고 국정농단 의혹의 핵심 인물들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한다.

최 씨가 출석 의사를 밝히면서 안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역시 출석할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안 전 수석에 대한 증인신문 역시 이날 예정돼 있다.

17일 오전에는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 헌재에 소환된다. 유 전 장관에게는 탄핵 사유 중 ‘대통령 권한 남용’에 관한 질문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유 전 장관에게 최 씨의 딸 정유라 씨가 한국마사회컵 승마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하자 승마협회 감사를 지시했고, 감사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자 그에 관여한 문체부 간부 2명을 경질할 것을 지시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날 오후에는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더블루K의 고영태 전 이사와 류상영 과장이 증인석에 선다. 19일에는 각 한 차례씩 증인신문이 무산됐던 ‘문고리 3인방’ 이재만·정호성·안봉근 전 비서관을 증인석에 세운다.

헌재는 이들이 끝내 출석하지 않으면 증인채택을 취소하고 제출된 증거를 토대로 관련 심리를 진행할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탄핵심판 절차에 가속도를 내기 위해서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특검과 검찰발 언론보도로 여론이 계속 악화되는 상황에 탄핵심판 절차에도 속도가 붙자 사실상 지연작전으로 일관하던 박 대통령도 급해졌다. 이 때문에 헌재 출석을 통해 국회가 제시한 탄핵 사유 등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힐 가능성도 있다.

헌재 출석 가능성에 대해서는 지난 1월 1일 기자간담회를 한 이후에 조금씩 흘러나왔던 이야기다.

당시에는 “여러 가지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다.”라는 정도의 박 대통령 측의 설명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기자회견을 한다는 건 헌재에도 출석한다는 것이다.”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구체적으로 언제 하겠다는 날짜까지 나오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헌재 출석으로 방향을 튼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박 대통령 측 관계자는 “(박 대통령 추가 입장 표명) 아직 어떻게 할지 정해진 것은 없다.”면서도 “설 전에 하려면 다음 주 중에는 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설 연휴 전 마지막 주말인 22일께 기자간담회 또는 기자회견 등의 형식으로 직접 추가 해명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검찰과 헌재의 출석 요구에는 응하지 않으면서 장외에서 여론전만 펼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아 헌재에 직접 출석하는 걸로 가닥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 청구를 적극 검토하는 등 박 대통령의 뇌물죄 입증을 위해 턱밑까지 칼을 겨눴다는 점에서 지난 1일 신년 기자간담회에 이은 2차 직접 해명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이 장외여론전에 대한 비판이 크다는 점을 의식해 헌재 탄핵심판 변론기일에 먼저 출석해서 공식으로 소명한 뒤 기자회견 등에서 이를 보완하지 않겠냐고 보고 있다.

박 대통령 역시 자신이 직접 나서서 입장 표명을 하는 것이 지지 세력을 다시 끌어 모으는데 가장 효과적으로 보고 있다.

◇ ‘대가성 없다’던 朴, 차고 넘치는 증거들 어쩌나?

박 대통령이 헌제에 출석할 경우 모든 문제를 ‘국가를 위해서 한 일이다’, ‘대가성이 없었다’는 등의 주장으로 일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다.

당초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될 때하고는 또 다르게 검찰에서 여러 가지 정황을 새롭게 냈기 때문이다.

검찰 측은 “박 대통령과 최 씨의 범행 공모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밝힐 만큼 자신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 13일 열린 최 씨의 세 번째 공판에서 이 같이 밝혔는데, 이마저도 나라의 격을 생각해 최소한의 사실만 기재했다고 했다.

당시 검찰은 최 씨의 조카 장시호 씨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서 만들려 했던 스키단 창단 관련 문서를 박 대통령이 직접 KT 황창규 회장에게 건넸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자신과 관련된 혐의나 최 씨와의 공모관계를 일관되게 부인해왔는데, 검찰은 이 부분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내놓은 것이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들은 관련자들의 진술 정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검찰은 SK 최태원 회장의 사면 관련 의혹에 대해서도 박 대통령과 최 회장이 사면을 놓고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이날 공판에서 공개한 문자메시지가 이를 반증해준다.

검찰이 공개한 문자 메시지를 보면, ‘하늘같은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 ‘수석님의 은혜 또한 잊지 않겠다’는 내용이 나온다. 최 회장의 사면 발표를 전후한 시기에 오간 문자다.

이에 대해 안종범 전 수석은 검찰 조사과정에서 사면 결과를 미리 알려주라는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SK 측에 알려줬다고 진술했다.

문자메시지에서 ‘수석님의 은혜 또한’이라고 별도로 안 전 수석을 ‘콕’ 찍어서 언급을 한 것을 보면 다른 누군가가 더 있다는 것을 전제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검찰은 안 전 수석 말고 다른 누군가라면 박 대통령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법무부나 민정수석도 아닌 당시 경제수석인 안 전 수석에게 사면 부탁을 한다는 건 그를 통해 다른 누군가에게 이런 청탁이 전달되기를 바란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재단 사유화도 문제다. 인투리스라는 회사인데 이 회사를 지주회사로 세우고, 그 아래에 미르와 K스포츠, 더블루K를 자회사로 세우려고 기획한 문건과 도표도 증거로 제시됐다.

최 씨가 청와대 일에 관여했다는 것은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 해도 수백 건은 넘는데 최 씨의 직원이 박 대통령의 침실까지 들어가 작업한 증거도 나왔다.

최 씨의 회사 얀센의 직원이 박 대통령 취임 후 두 차례에 걸쳐서 청와대에 가서 침실 커튼을 걸어주거나 수도꼭지를 갈아주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국가 기관에도 기술 관리 담당 공무원은 적지 않을 것인데 최 씨의 개인회사 직원이 이런 부분까지 개입을 한 것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작업을 했다는 이 직원은 검찰에서 이 일과 관련해 별도의 보수를 받지는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액수를 떠나서 향후 법적으로 중요한 자료가 될 가능성이 큰 진술이다.

최 씨가 청와대 수도꼭지만 갈았다면 이렇게까지 문제가 되진 않았을 텐데, 인사에도 개입했고 그런 여러 가지 문제가 더 있어서 문제다.

그간 박 대통령이 ‘국가를 위해서 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던 것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부분들이다. 검찰이 들고 있던 무기, 감추고 있던 카드들을 하나씩 꺼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박 대통령에게 절대 불리할 증거나 진술들도 줄줄이 쏟아지고 있다.

최 씨 개인 회사 용역제안서를 대기업 총수와의 독대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넘겼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삼성 측도 박 대통령이 강요를 해서 돈을 냈다는 부분은 인정한 상태다.

때문에 박 대통령이 직접 헌재에 출석했을 경우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소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자간담회 때는 ‘뇌물죄로 본인을 엮었다’ 등으로 표현을 했지만 헌재에 직접 출석해서는 법적인 논리로 반박을 해야 된다. 박 대통령의 장고가 길어지는 이유다.

김연학 기자  dusgkr08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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