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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코리아저널>서울 국립 현충원 제28묘역을 아시나요?광주사태 전사한 23인의 공수부대 호국영령
  • 시사코리아저널
  • 승인 2010.09.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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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동 서울 현충원 제28묘역 묘비에는 80년 5월21일 광주에서 '전사로 표기'!
“함평천지 늙은 몸이 만고 강산을 유람 할 제.”이웃 나비의 고장으로 명성을 날린 함평의 전통 노랫가락을 흥얼대며 17년산 중고차을 몰고 찾아간 광주 상무지구소재 5.18문화회관, 고향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70평생 처음 발을 밟았다.

30년전 발생한 광주사태! 1980년 5월 19일 출근길에 듣게된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사람 씨를 말리러 왔다 일명-학살명령이 떨어졌다"는 황당한 유언비어를 나는 고향 선배로(김대중의 국민연합)부터 듣게 되었고 선배가 외친 한마디선동 구호에 즉시 김대중의 내란폭동으로 단정 지었다.

광주사태로 직장인 신문사가 문을 닫게되고 30여년을 실업자로 살아온 나는 김대중 이름 석자만 들어도 울화병이 치솟는데 내란음모 반역자에서 민주화유공자가 되고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이곳에 거대한 대리석 건물로 건립한,“5.18 문화회관”이 우뚝 서 있기에 웬수 같이 외면해 오다 오늘 30년만에 처음 이 건물 앞에서 서울에서 오는 회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후 3시 기자회견 20분전 서울팀들이 광주시청 입구로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고 시청쪽으로 갔다. 시청 입구 주차장은 무전기를 휴대한 광주경찰관들이(사복)10여명 출동, 우리 일행 중 책임자(강00)와 경찰책임자(서부경찰서)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경찰측은 5.18단체들이 기자회견을 방해하려고 화염병을 소지하고 1백여명이 몰려오고 있으니, 기자회견을 포기 하라는 것이다. 지난 5.18일, 나주의 기자회견이 무산된 이유 역시 치안유지 명분을 앞세운 경찰의 제지로 무산되었기에 나는 “여러분은 기자회견 저지보다는 폭력행위를 방치해서는 안된다”며 항의하자 우리일행 가운데 책임자 한분이 되려 나를 저지한다.

옛말에도 “욕하는 시어머니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여보시오 강동지 화염병 협박이 두려우시면 서울에 계시지 광주는 왜 왔오”목 끝에 쏫아지는 한마디를 참으려니 울화통이 치밀어온다.

화염병 협박에 놀란 강동지가 잽싸게 버스에 오르자 갑자기 버스가 사복경찰의 호송을 받으며 시청을 빠져 나간다. 경찰들의 안내를 받은 버스가 속력을 내며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기가 막혀 돌아갈 채비를 하는데 주차장 쪽으로 무거운 촬영장비를 2대씩이나 어께에 둘러멘 장재균 대기자님이 대불총 유단장과 함께 뛰어 나온다.

세상에 이럴수가 있단 말인가?

연세 지긋한 장기자(홍보위원)가 촬영장비를 걸머지고 시청 주변 촬영중인데도 두 사람을 남겨두고 버스가 출발하다니..총탄이 날아오는 전쟁터도 아니고고작 화염병을 들고 몰려온다는 경찰측의 거짓 정보에 놀라 동지들을 남겨두고 줄행랑을 치다니..

필자는 5.18 실체규명위원회에 혼신의 힘을 바치겠다며 굳은 각오를 다진 계기가 있다. 지난 6월 10일 동작동 현충원 28묘역에 묻힌 국군병사들은 광주에서 누구의 총탄에 죽임을 당했을까? 그리고 이들의 희생을 국가와 국민들은 30년이란 세월을 침묵으로 입을 봉하고 있었는가?

기자회견을 위해 현충원 입구 쪽으로 발길을 돌리다가 20대 후반의 한 젊은이가 내 팔을 꼭 쥐고 “저의 아버님은 대한민국의 국군이셨는데 왜.잔인한 공수부대 계엄군이란 누명을 안고 30년동안 이곳에 묻히셨나요?”라며 피울음을 토해낸다.

필자는 28묘역에 묻힌 공수특전단 국군의 아들(유복자)의 절규에 이들 후손들을 위해서“5.18실체규명위원회” 진실 규명운동에 나서기로 다짐했다.



동지분들의 건강을 항상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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