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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한 공기가 좋아 오전에 나왔지만, 벌써 바람은 비둘기 꽁지에 햇살을 내려놓고 졸고 있고, 잣나무 숲에서는 이름 모를 새도 포르릉거린다.
이런 곧음과 굽음 사이의 길을 걸으며 맞은편 원형 분수대에서 내 안의 다이돌핀*을 마구 자아올린다.
기분 좋은 산책은 정오가 되어 하굣길 아이들이 재재거리기 시작하면 끝이 난다. 가댁질 하는 아이들의 눈에는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세요.’란 팻말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무에 세운 삼각지줏대를 뽑아다 울타리를 쳤지만, 밑으로 기어들고 위로 뛰어넘는 발길은 이미 고삐 풀린 망아지다. 질러 다닌 발자국에 짓밟힌 종종길만 벌겋게 드러나니, 평온하던 내 마음도 어쩔 수없이 포달지게 되고 만다.
지키는 사람 열이 도둑 하나를 못 당한다고 소용없는 일에 한참 진을 빼다보면 내가 꼭 ‘B사감과 러브 레터’ 의 그 꾀꾀한 사감 같다.
잔디를 무참하게 밟으면서도 마음에 가책을 느낄 줄 모르는 아이들이 벌써 ‘피타고라스의 삼각형 이야기’를 읽어서, 한 변의 길이가 두 변 보다 짧다는 이치를 꿰고 있어서일까.
옮긴 둥지에서 유독 산책로를 아끼다 보니 훼손된 잔디밭을 보며 혼자 쩍쩍 가슴만 보타진다. 아직 이웃과 눈인사도 서먹한 처지라 잡다한 소리 속에 내 음향까지 섞기는 이른 것 같아 더욱 답답하다.
보다 못한 남편이 그렇게 애면글면하지 말고 주민자치회에 지름길을 건의해 보라며, 아이젠하워 장군이 2차 대전 후 콜롬비아 대학 총장 시절의 일화를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학생들이 경고문이 있는데도 지름길로 가기 위하여 정원의 잔디를 계속 밟고 다니자, 이들을 처벌하려고 총장에게 건의가 들어왔을 때 “처벌 학생만 양성시키는 규칙을 만들지 말고, 대신 학생들이 편히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정지용의 향수에 나오는 그 ‘휘돌아 나가는 실개천’보다 더 멋지게 구부러진 곡선의 美에 흠뻑 빠진 내가 그 말을 온전히 받아 들일수가 없다. 다정한 연인의 눈매처럼 포근하고 부드러운 눈썹달을 싹둑 잘라 두 동강을 낸다는 상상만으로도 마뜩찮아 땡감 씹은 기분이다.
하긴 나도 살아오면서 지름길을 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공부의 지름길, 부의 지름길, 출세의 지름길, 인기의 지름길 등등 수많은 지름길로 가기 위해 아등바등 살았으니, 아이들을 나무라는 것은 가히 진드기가 아주까리 흉보는 격이 아닐까.
어릴 때 작은 규칙을 어기기 시작하면 커서 큰 규칙도 지키지 않을 수 있으니, 애초에 지킬 수 있는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반기를 들 수가 없다. 가직한 길 두고 왜 돌음 길로 가냐고 딴죽을 걸면 더 이상 할 말도 없다.
나의 이런 고민을 친한 벗에게 털어놓았더니 빙그레 웃으며 한 마디 한다. “우리 동네도 그런 지름길이 생겨서 부녀회에서 큰 돌 몇 개 놓았는데, 나도 재미가 쏠쏠해서 늘 그 징검다리로 다녀.”
“어머, 그렇구나. 그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는 것을······.”
징검다리를 놓아주면 죄의식 갖지 않은 아이들의 보폭에는 또 얼마나 힘이 실릴까.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인생. 마음이 편안한 삶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철야 근무 중인 별빛 달빛이 있는데, 제 그림자에 놀라 컹컹 짖으며 달아나는 강아지는 되지 말아야겠다.
칭찬의 말은 사람이 하지만 그 힘은 초인적이라 했으니, 징검다리 잘 건너는 고래를 춤추게 할 일이다.
* 다이돌핀 : 최근 의학이 발견한 호르몬으로서 마음이 감동 받았을 때 분비된다고 함. 예를 들면: 좋은 노래를 듣거나,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 되었을 때,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을 때. 엄청난 사랑에 빠졌을 때.
▽ 수필가 이숙진 프로필
월간 순순 문학 신인상
국제 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순수문학인 협회 회원.
동작 문인협회 회원
문학비평 사 여울 동인. 글마루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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