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코리아저널 김연학 기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총선에 불리해도 국정 교과서 후퇴는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민심 악화를 우려한 수도권 비박계 의원들이 수정을 요구할 태세여서 내홍이 예상된다. 여기다 국민여론까지 돌아서면서 정부의 국정 교과서 추진에 빨간불이 켜졌다. 잘해보자고 모인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의 청와대 5자회담 역시 격론으로 끝나면서 오히려 독이 됐다는 평가다. 박 대통령은 이에 굴하지 않고 오는 27일 시정연설을 통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계기로 형성된 연말 대치정국을 대국민 여론호소 및 지지층 결집 등의 방법으로 정면 돌파키로 하면서 국정 교과서를 둘러싼 갈등은 최고조에 달할 전망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지도부 회동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김 대표는 지난 22일 청와대 5자 회동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이종걸 원내대표 등 야당 지도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놓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시도를 중단하라고 요구한 데 대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국정교과서)집필진도 아직 구성되지 않았는데 친일이니, 독재니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참고 있는데 그만 하시라”며 야당 지도부의 요구를 강하게 받아쳤다.

김 대표의 이 같은 강경발언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당 대표 및 원내대표간 ‘5자 회동’에서 야당 지도부가 박 대통령을 향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을 거세게 요구하자 박 대통령 엄호에 나선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5자 회동에 앞서 국정교과서에 대한 야당의 강도 높은 공세가 예상됐던 만큼 김 대표는 야당 지도부에 밀리지 않기 위해 강경발언을 쏟아내면서 박 대통령과 코드를 맞춰 여당 대표로서의 존재감을 확고히 한 것이다.

김 대표는 또한 문 대표가 교학사 역사교과서의 친일미화 사례를 언급하자 “교학사가 문제 있었다고 하지만 국정 교과서가 아닌 검인정 교과서 아니냐, 그래서 우리가 국정교과서 하자는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이어 “국사편찬위원회 중심으로 집필진을 구성하기로 했으니 야당도 그것이 걱정되면 좋은 집필진을 구성하는 데 참여하라”며 국정교과서 집필에 직접 참여하라고 촉구했다.

국정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자 김 대표는 “이제 역사교과서는 국사편찬위원회와 역사학자를 비롯한 전문가에 맡기고 국회는 민생을 살리고 경제를 살리는데 집중해야 한다”며 국정교과서 논쟁을 정리했다.

아울러 “대통령 임기가 5년으로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대통령께서 그 짧은 임기 중에 경제 한 번 살려보겠다고 법안 몇 개 (통과)해달라는데 그것을 33개월 동안 발목잡고 안 해줄 수 있느냐, 너무한 것 아니냐”며 민생법안에 처리에 나서지 않고 있는 야당 지도부에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김 대표는 이와 함께 “그동안 공무원연금개혁도 그렇고 노동개혁도 그렇고 우리가 유불리를 따졌다면 이 일을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며 ‘국정화를 강행하면 총선에서 불리할 수 있다’는 수도권 의원들의 주장에도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국정화 반대 여론이 커지고 있어 수도권 의원들의 반대 움직임은 거세질 전망이다.

◇ 국정교과서 반대여론 높다

여론조사 기관 ‘한국갤럽’이 지난 20~22일 실시해 23일 발표한 10월 셋 째주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해 36%는 ‘찬성’, 47%가 ‘반대’였다.

국정화 추진 찬성은 고연령일수록(20대 18%·60세 이상 53%), 새누리당 지지층(62%)일수록 많았다. 반대는 저연령일수록(20대 69%·60세 이상 17%),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층(77%)일수록 많았다. 무당층의 경우 찬성 25%, 반대 52%였다.

갤럽이 교육부의 국정화 방침 발표 직후인 지난 13~15일 실시한 조사에서는 찬반이 각각 42%로 동률이었다. 하지만 1주일 만에 찬성은 6%p 줄고 반대가 5%p 늘어 여론의 무게 중심이 기울고 있는 양상을 나타냈다.

이 같은 현상은 전 연령에 걸쳐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수도권과 충청, 호남권의 반대가 늘었고, 영남권은 큰 변동이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업무수행 지지도도 2주 연속 하락하며 악화일로를 걸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이었다.

국정화는 이번주 긍정평가 이유 중 3%를 차지했으나, 부정평가 이유 중에서는 22%를 차지 1순위를 나타냈다.

◇ 수도권 비박계 국정화 비판

당내 내홍도 만만찮다.

당장 정병국, 정두언, 김용태 의원 등 수도권 비박계 의원들은 국정화 문제를 논의할 긴급 의원총회 소집 요구도 검토하고 있다.

최근 정두언·김용태 의원, 남경필 경기지사가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데 이어 정병국 의원과 정의화 국회의장까지 가세해 정부의 ‘국정화 드라이브’에 대한 비판 의견을 내놓았다.

4선 중진인 정 의원은 “역사교과서의 왜곡, 편향은 잘못됐고 바로잡아야 하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 국정 교과서는 답이 아니라고 본다”며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는 이유는 국론을 통일하기 위해서인데, 오히려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의장도 “국정이냐 검정으로 가느냐의 문제보다 논의하고 진행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절차를 제대로 밟아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고 평가했다.

이어 “국정교과서 이야기 때문에 또 다른 분열이 생기고 낙인찍기가 생기고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해 얘기하는 것들을 보고 참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박 대통령에게 “통합을 이끌어내는 쪽으로 정책을 이끌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앞서 정두언 의원은 지난 15일 TBS 라디오에 나와 “역사교과서의 잘못된 내용은 고쳐야 하지만 국정으로 바꾸는 것은 시대에 완전 역행하는 것이다. 다양화, 자유화로 가는 사회에서 갑자기 획일적, 독점적으로 하겠다는 것은 잘못”이라며 당내에서 처음으로 ‘국정화’에 공개 반대했다.

김용태 의원도 지난 19일 CBS 라디오에서 “(국정화를) 일방적으로 선언해 놓고 따라오라는 식이니 의원들도 당혹스럽다”면서 “나라 전체를 들었다 놨다 했던 노동개혁은 어디 갔느냐, 집권 세력으로서 무책임한 게 아니냐는 얘기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역풍을 우려했다.

남경필 지사 역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정화에 반대한다”며 “합리적 우파들이 우수한 교과서를 만들어내서 시장에서 채택되게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드라이브’에 반대 목소리를 낸 이들은 모두 비박계로 분류되면서 ‘쇄신파’ 출신인 동시에 서울·경기 등 수도권에 지역구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수도권, 중도층의 민심을 고려한 발언이 아니겠냐는 해석이 나온다. 당내에선 내년 총선에서 역사교과서 이슈가 여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없지는 않다.

◇ 여야, 각계 원로 통한 여론전

이런 가운데 여야는 각계 원로들을 통한 여론전도 펼쳤다.

여당이 주최한 간담회에서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검정 발행 체계라는 가장 좋은 방법을 가지고 역사를 서술하도록 했는데 가장 나쁜 결과를 갖고 왔다”며 “보다 덜 나쁜 방법이라 할 수 있는 국정화를 채택해 새로운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 교수는 “현행 검인정 체제 하에서는 좌편향된 필진 탓에 제대로 된 교과서를 만들 수 없다”며 “학생들이 독극물을 계속 받아 마셔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박 명예교수도 “역사 교과서 집필진이 단순히 이념적 카르텔이 아닌 이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고 가세했다.

반대로 새정치민주연합 토론회에서는 현행 역사 교과서 대표 집필진이 정부·여당의 좌편향 지적을 직접 반박했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천재교육 교과서 대표 집필자)는 “우편향 세력의 무책임한 매카시즘 공세일 뿐 좌편향 교과서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주체사상 논란에 대해 “주체사상을 서술하라고 교육과정에 명시해 놓은 것이 바로 교육부”라고 지적했다.

‘유관순 열사’ 누락에 대해서도 “중학교 교과서에서 서술돼 고교 교과서에는 누락했다가 이후 추가한 것일 뿐”이라며 “고의라면 왜 애초 중학교 교과서에 넣었겠느냐”고 반문했다.

권내현 고려대 교수는 “과거 우리가 국정 교과서를 쓰던 시절 일본은 ‘국정 교과서를 쓰는 한국이 검정 교과서를 쓰는 일본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했다”며 “같은 논리가 반복될 것”이라고 했다.

서울대 역사 관련 학과 교수 36명은 “국정 역사교과서는 ‘올바르지 않은 교과서’”라며 집필 거부를 선언했다.

정부의 국정 교과서 추진에 빨간불이 켜지자 박 대통령은 오는 27일 시정연설에서 대국민호소를 통해 역사정국을 정면 돌파키로 했다.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 이후 내달 2일 확정고시, 내달 말까지로 이어지는 집필진 구성 등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일정에 타협 없이 강경 드라이브로 가겠다는 입장이어서 국정 교과서 정국으로 촉발된 여야 갈등이 파국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김연학 기자  dusgkr08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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