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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윤동주 시인을 알게 된것은 중학교 시절 그의 시집을 대한 뒤 였다. 사각모에 갸름한 얼굴의 아름다운 청년 , 항일 운동의 민족시인 이라는 것을...
2,000년 8월 북경을 거처 한산한 연길공항에 내렸을 적엔 한낮의 이글거리던 커다란 붉은 해가 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거리의 간판은 한글로 되어 있어, 아! 이곳이 한국의 어느 도시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시원한 저녁 바람이 분다. 공항 청사앞 잔디밭에 서 있는 포플러 나무 가지에서 노오란 이파리 하나가 파르르 떨며 내려 앉는게 정겹다.
연변에 우리민족이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기뻤다. 그 날밤 오래된 호텔객실의 첫 날 밤은 자정이 넘도록 깜박이는 연길 시내의 불빛을 바라보며 우리 부부는 낯선 이국땅에서 이렇게 검은 밤을 보내야만 했다.
새 날이 밝았다. 이른 아침부터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백두산을 향해 달렸다.우리나라 건국이념과 민족정기가 서린 백두산은 내 어릴적 가고 싶었던 꿈에 그리던 곳이다.
북경의 55일 이라는 영화를 본뒤 이담에 크면 북경과 백두산에 꼭 가보리라 맘 먹었다. 아편전쟁으로 거대한 중국을 무너뜨린 서양인들의 신식무기에 맥없이 쓰러진 중국은 한반도의 44배의 큰 땅덩이와 13억 인구를 자랑한다. 그들이 말하는 장백산 (백두산)은 숲이 울창하게 우거진 백두산 가는 모퉁이 길은 한 낮인데도 어둑 컴컴했다.
달리다 지치면 간이 쉼터에 내려 볼일을 보는데 장뢰삼이라며 한국사람 돈 많아해 싸다 사라며 키가 멀대처럼 큰 산촌 청년들이 졸졸 따라다니며 성화를 댔다. 백두산 가는 중간 길 식당에 들렀다.
허름한 3류 음식점이다. 기름에 튀긴 돼지요리 몇 점과 배갈 한잔으로 점심을 떼웠다. 중고차는 백두대간을 따라 높이 올라갈 수록 숨이차 아무데나 산 중턱에서 쉬었다. 통나무 벌채꾼들을 만나니 반갑다.
봉두난발한 여인은 제철에 맞지 않는 때묻은 두터운 검은 양복 허리를 끈으로 질끈메고서 어린 것을 업고서 함바집(허름한 가건물 숙소)을 머리숙여 들락거리는 키큰 한족 여인의 모습이 마치 시계를 거꾸로 돌린 타임머신을 타고서 문명을 거부한 그런 부족 집단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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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도 백두산 호랑이가 출몰한다는 울창한 숲속 길은 멀고도 험했다. 이른 아침부터 줄곳 달려 2000.8.8 오후 4시경, 꿈에 그리던 백두산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나무 하나 없는 이끼류가 초원처럼 뒤덮인 초록 능선과 골짜기가 끝없이 평원처럼 펼쳐저 있다. 호수건너 저멀리 보이는 장군봉과 백운봉 사이로 아직도 뭉개구름이 산 허리를 맴돌며 흰구름 속에 백두산을 지키는 산신령이 숨어 지켜보는 보는 듯 했다.
나는 이렇게 소리쳤다. 백두산아? 내가왔다!대한민국 만세 3창을 하였다. 2,750 미터 우리나라의 최고봉 백두산에 올랐으니 내 어릴적 소원이 이제서야 이뤄진 셈이다. 참으로 장관이었다.
조금 전만 해도 소나기 구름이 지나 비를 뿌리더니만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갠 백두산의 봉우리마다 선명하고 수심300미터에 20억톤이나 고여 있는 짙푸른 천지가 발아래서 선명하게 보인다.
우리나라가 970여회나 외침을 받아 나라와 민족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려 다 꺼져가던 촛불 같았지만, 지금은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였으니 감회가 새로울 뿐 나는 더이상 입을 열 수가 없어, 천지에 비추이는 산봉우리의 물 그림자앞에 그만 넋을 잃고 망부석처럼 멍한히 바라만 보았다.
또한 장백폭포의 용트림이 장관이다. 얼음장 같이 시린 천지물이 흐르는 냇가 귀퉁이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온천수가 솟아나 날계란을 익혀 먹을 정도니 자연이란 신비에 다시 한번 감탄하였다.
두둥강이가 난 한반도가 통일이되고 남북이 오갈 때면, 요 다음에는 내나라 북한 땅을 통하여 백두산에 올라 천지물을 호리병에 가득 담아 오리라.
맑게갠 천지를 보면 3대가 복을 받는다고 안내양의 호들갑이다. 우리 선조들의 옛땅에 서 있다는 것은 가슴벅찬 일이며, 우리 나라와 민족이 존재 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야 할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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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에서 하산한 그 날 밤 꿈속에서 천지에 뛰어들어 헤엄치는 나를 바라보며 행복감에 젖었다. 새날이 또 밝았다.길고 긴 여정의 길을 온 탓인지 온 몸이 뻐근했으나 마음만은 한결 가볍다.
두만강 가는 길은 역시 비포장길이었다. 중국인들이 사는 두만강변 비옥한 땅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으며 풍요로운 옥수수 밭이 끝없이 펼쳐저 있는데 반해, 강건너 함경도 땅에는 민둥산으로 높은 산지에 개간을 한 흔적이 여기 저기 보였다.
비가 안오는 갈수기 탓인지 두만강은 상상한 바와 다르게 헤엄쳐 건널 수 있는 정도였다. 두만강 건너 북한 땅에는 위대한 김정일 장군 만세!라고 큰 글씨가 민둥산에 새겨져 있었다.
김장군이여! 인민은 배고파 죽는다는데 주체사상이 무슨 소용있습니까? 김장군을 만나면 인민부터 배불리 먹이라고 항의하고 싶다. 우리는 김정구의 두만강 푸른물에 노젖는 뱃사공을 흥얼댔다.
도문시에 내리니 북한에서 강 건너 온 꽃뱀(소년)들이 우르르 달려와 천원만 달라고 손을 내민다. 너무도 가슴아파 눈물이 핑 돌았다.
해방된 조국이 두동강이가 구걸하는 저 어린것들이 무슨 죄가 있어 이같은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정치와 이념이라는 괴물에게 희생당하는 북한 동포를 생각하니 한없는 연민의 정이 가슴깊이 저미었다.
한국에는 매년 풍년이 들어 지금 쌀 재고가 많아 창고가 부족하여 야적을 해야 할 지경이라고 한다.
MB정부는 남아도는 쌀을 동물의 사료로 쓰지 말고 당장 지금이라도 북한에 보내줘 배고파 죽어가는 굶주린 동포를 구해야 한다.두만강 건너 북한의 민둥산을 바라보며 한없는 비애감에 젖었다.
그날 밤 우리 일행들은 술 파티가 벌어졌다. 배갈 몇 잔에 그만 취해 잠자리에 일찍 들었다. 새 날이 또 밝았다. 터덜대는 중고버스는 우리 일행을 태우고 농부가 말수레를 끄는 신작로를 함께 달렸다.
한국의 6-70년대의 농촌 길 같은 평화로운 길을 요리저리 먼지를 내며 잘도 달려만 갔다. 산을 넘고 내를 건너 해란강 넓은 들판 한가운데로 흐르는 강줄기가 한눈에 보였다.
우리 독립투사들과 선구자가 말 달리던 무대였다는 곳! 멀리 보이는 비암산과 일송정! 우리 일행은 선구자 노래를 누가 먼저라기 보다 앞다퉈 부르며 감격의 눈물이 나도 모르게 주르르 흘러 내렸다.
우리 민족이 나라를 잃고 떠돌다가 터를잡고 살던 이국 땅 룡정시내에 들어섰다.윤동주님이 다녔던 룡정의 대성중학교 교문 옆 동네에 이기낀 붉은 벽돌 건물을 뒤 덮은 고목나무가 이곳 역사를 말해주듯 수호신처럼 떡 버티고 서있다.
고목나무 그늘에서 윷놀이를 하는 우리 동포들이 너무나 정겨워 왈칵 껴안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대성 중학교 교정에 서 있는 윤동주님의 시비 앞에서 제일먼져 기념사진을 찍었다. 2층 복도며 교실에는 그의 사진과 유품과 낯익은 문익환 목사 얼굴도 보였다.
친절한 조선족 아가씨의 설명에 따라 일송정,세월속의 룡정 등 몇권의 책을 주섬주섬 사들고 나와 룡정시내를 한바퀴 돌아봤다. 자전거에 사람을 태우는 인력거 같은 교통수단이 정겨웁다.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 ! 정든 고향을 버리고 낯설은 동토의 땅! 우리민족혼이 뿔뿔이 흩어져 소멸되었을 것이라는 염려와는 정 반대로 겨울이면 살을 에는듯한 얼어붙은 간도땅에서 끈질기게 버텨온 우리 동포들이 얼마나 고맙고 장한지 가슴 벅찼다. 그 날 밤 나는 윤동주님을 직접 만난듯 감격에 겨워 밤 늦도록 일송정이란 책 한권을 단숨에 다 읽었다.
수 년전 일본에 연수차 간일이 있었는데 역사 유물이 진열된 박물관에 들렸다.임진난 때 하마터면 나라를 송두리채 빼앗길 뻔 했는데 이순신 장군 같은 위대한 인물이 있어 나라를 구한 것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한말에 탐관오리와 매관매직으로 나라는 도탄에 빠져 결국에는 일제36년 간 압박으로 우리글과 말까지 빼앗겨 종노릇한 우리민족의 수난사를 드려다 보며 민족의 수치심과 나라사랑을 생각케 했다.
그런 가운데 한국이란 조선민족이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말과 글과 문화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대륙에서 한 때 크게 위세를 떨친 청나라가 중국을 통일은 했으나 마지막 서태후의 섭정에 의한 권력행사를 했다는 몇줄의 역사 기록만 남았을 뿐 한족에게 흡수돼 지금은 그 들의 자취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청의 글과 문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동포여! 비록 남의 땅 간도에서 선조들이 어렵게 살았지만 우리 조상들의 땅이었다는 시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부디 우리 말과 글을 잊지마시고 후손에게 전수하십시오. 세계 도처에 산재해 있는 동포들이여! 우리는 한핏줄 한 형제요 동포입니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단 시일 내에 살기좋은 나라로 된것에 자부심을 가지세요.
도산 안창호 선생은 힘! 힘을 기르소서!힘이 없어 나라를 빼앗겼다는 유훈을 남겼습니다. 나라를 잃으면 모든것을 잃어 버립니다.어렵게 찾은 나라! 남북이 하루속히 통일이 되기를 우리 다같이기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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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번 제3회 한,중 문화교류회는 우리 민족의 얼을 면면히 이어가기 위한 애국적인 뜻깊은 순수 민간 사업입니다.
65년전 1945년 이 땅에 광복이 되었는데도 좋은 날을 보지 못하고 일본 후꾸오까 감옥에서
억울하게도 눈을 감지 못한 채 외롭게 숨져간 윤동주 민족시인을 다시 한 번 기리며 그의 서시를 재 음미하면서 이글을 마칩니다.
서시(序詩)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꾸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 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2010.8.15 광복65주년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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