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는 당대에는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민화에 대한 치열한 기록이 현대의 옷을 입은 민화 그림과 함께 선보이는 ‘민화에 홀리다’(이기영 글, 서공임 그림, 효형출판)를 비롯해, 구한말 망국의 위험에서 대한제국을 구하려 했고 한국인보다 더 한국의 혼을 되살리려 애썼던 한 미국인의 분투기인 ‘파란눈의 한국혼 헐버트’(김동진, 참좋은친구), 지난해 타계한 재미작가 김은국의 대표작 ‘순교자’(김은국/ 도정일, 문학동네), 비무장지대의 생태와 통일에 대한 염원을 함께 그려낸 ‘비무장지대에 봄이 오면’(이억배 글·그림, 사계절) 등이 선정되었다.
위원회는 문학, 역사, 아동 등 10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좋은책선정위원회를 두고, 독서 문화의 저변 확대와 양서권장을 위해 매달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선정하고 있다. 2010년‘8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선정된 도서는 다음과 같으며, 자세한 내용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홈페이지(http://www.kpec.or.kr)의 웹진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 8월의 읽을 만한 책 추천사 】
순교자
김은국/ 도정일 / 문학동네
2010. 6. 23. / 326쪽 / 11,000원
김은국의 ‘순교자’는 46년 전에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었던 책이다. 영어로 먼저 쓰여졌다는 얘기다. 출판당시 순교자는 언론과 서평자들로부터 ‘도스토옙프스키’, ‘카뮈’의 위대한 전통위에 있다는 평가와 더불어 ‘20세기 작품군에 포함될 만한 눈부시고 강력한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사이 작가는 타계했고 1964년에 첫 한국어판이 나온 후 지금 다시 세계문학선집에 섞여 재출간됨으로써 ‘순교자’의 명성을 소문으로만 들어왔던 독자들에게 확인 혹은 재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순교자’는 6.25라는 특수한 우리의 민족사적 배경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사적 보편적 문제를 깊이 있게 천착한 작품이다. 남북간의 이데올로기적 대립문제를 넘어 신이 사라진 시대에, 신이 침묵하고 있는 시대에 인간의 구원가능성을 묻고 있는 ‘순교자’는 그 묵직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간의 대화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어 읽는 속도감이 매우 빠르다. 마치 무대 위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할 뿐 아니라 서사의 속도가 거칠 것 없이 빨라서 한 권의 책을 읽는 시간이 단숨으로 느껴질 정도다. ‘인간이 당하는 고통에 과연 의미가 있는지’의 질문을 끝까지 천착해가지만 ‘순교자’의 진실들은 투명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밝혀질 듯이 그러나 밝혀지지 않는 ‘난처한 진실’들 속으로 읽는 이조차 공범자가 되어 빠져드는 순간들을 통과해 나고 난 뒤에 찾아 드는 허무. 그러나 그 허무를 뚫어내는 인간을 향한 이해와 존중, 우리가 진리라 믿는 것들의 낯선 미스터리들과의 조우를 통한 생의 이면들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추천자 : 신경숙(작가)
십자가 초승달 동맹
이언 아몬드/ 최파일 / 미지북스
2010. 6. 15. / 365쪽 / 16,000원
현재 지구상에서 신앙 때문에 가장 많은 억압을 받는 사람들이 ‘무슬림’일 것이다. 2001년의 9·11테러로 새뮤얼 헌팅턴이 말한 문명의 충돌이 일종의 상식처럼 되면서 이런 현상은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 인구의 25%, 즉 24억 명에 달하는 무슬림 중 실제 테러리스트가 몇 명인지는 따지지 않는다. 단지 무슬림이란 이유 하나로 전 세계, 특히 서방 세계로부터 잠재 테러리스트로 취급받는다. 이런 점에서 이언 아몬드가 “미디어들이 이슬람과 기독교 간의 갈등에만 몰두하고 있는 시대에, 나는 그 구도를 거꾸로 뒤집어 갈등과 차이보다는 단결과 협력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고 쓴 ‘십자가 초승달 동맹’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만든 거대한 이미지에 도취되어 있었음을 알아차리게 한다. 저자는 ‘유럽(Europe)’이라는 어원이 ‘아랍(Arab)’처럼 서쪽이나 암흑, 뒤처짐을 뜻하는 고대 셈어 ‘에레브(ereb)’에서 왔다는 사실처럼 유럽과 이슬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서, 11세기 에스파냐에서부터 19세기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이 동맹을 맺고 공동의 적과 싸웠던 사례를 5장에 걸쳐 전해주고 있다.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는 요즘말로
혈맹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공동 전쟁을 치렀다. 저자는 기독교-이슬람 동맹을 세 가지 범주로 나누는데 첫 번째는 ‘정치적 동맹’이고, 두 번째는 우정에 바탕을 둔 ‘따뜻한 동맹’, 세 번째는 같은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는 ‘문화적 동맹’이다. 저자는 유럽사회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잊고 싶은 것은 망각하면서 이슬람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면서 “이런 의미에서 역사가는 시대를 읽어내는 양심이 되어야 한다”고 토로하고 있다. 그런 양심의 눈으로 바라보면 무슬림도 우리의 일부가 된다.
- 추천자 :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나를 찾아온 철학 씨
마리에타 맥카티/ 한상석 / 타임북스
2010. 6. 20. / 493쪽 / 16,000원
“내 친구들에게 좋은 삶을 살다가 간다고 전해 주오”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철학자가 마지막 죽음 앞에서 제자에게 남긴 말이다. 어떻게 살면 좋은 삶을 살았다고 남에게 말할 수 있을까? 에피쿠르스 학파 사람들은 쾌락적인 삶을 살아야한다고 한다. 쾌락적인 삶은 육체적 본능과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고 정신적 안정을 취할 때 가능하다. 공자는 인이 극기복례라고 정의한다. 자신을 극복하고 예를 되찾는 것이 바로 인(사랑)이다. 본능에 휘둘리지 않고 차분하게 이성적 관찰과 판단을 내리면서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진정한 바람이다. 차 한 잔 마시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가 바로 성찰하는 삶이고, 좋은 삶이다.
저자 마리에타 맥카티는 철학 클럽을 운영하면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정답 없는 질문을 자신과 남들에게 던지면서 살아간다. 왜 정답 없는 질문을 철학자는 던질까? 정답이 없는 질문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창조적 사고를 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헬스 클럽에서 몸을 단련하듯이, 철학은 우리의 정신을 단련시킨다. 정신의 단련은 생각하는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마치 근육이 성장하는 것은 파열의 고통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맥카티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함, 의사소통, 시각, 유연함, 공감, 개성, 소속, 평온함, 가능성, 기쁨과 같이 지극히 평범하고 우리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주제들이다. 현대 문명의 기술들은 우리 육체의 편리함을 추구하다 보니, 정신적 건강함에 대한 배려를 상실한다. 정신적 건강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대화와 토론을 이 책을 통해서 할 수 있다.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것이다. 사색을 하고 나면 뜻이 맞는 사람과 그 생각에 대하여 검증 작업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에 나오는 주제는 인류 역사상 뛰어난 철학자들이 이미 탁월하게 분석을 해 두었던 것이라는 사실도 맥카티의 안내를 통해서 알게 된다. 시와 음악,
그리고 연극이 어우러지는 철학의 향연을 이 책과 함께 즐겨보기를 바란다.
- 추천자 : 김형철(연세대 철학과 교수)
마을로 간 한국전쟁
박찬승 / 돌베개
2010. 6. 21. / 320쪽 / 17,000원
이 책은 마을에서 벌어진 갈등과 상호 학살을 중심으로 한국전쟁을 분석한 한국전쟁의 미시사이다. 이 책은 저자가 전라남도와 충청남도에 소재한 다섯 마을을 분석대상으로 삼아 10여 년간 해당 지역을 현장 답사하며 관련자 구술을 채록하고 희생자 씨족 가문의 족보까지 꼼꼼히 조사하여 얻은 연구 성과물이다. 저자는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시야를 한반도 전체에서 마을공동체라는 구체적 공간으로 좁힘으로써, 그동안 거시사 연구가 놓쳐왔던 마을 주민들 간의 신분·이념·종교·토지소유 등의 갈등까지 세밀하게 짚어낸다. 이를 통해 저자는 한국전쟁기 마을에서의 갈등 원인을 주로 이념과 계급 갈등으로 한정지어왔던 기성 학계의 통념에 도전한다. 저자는 민간 차원의 갈등과 학살의 주된 원인을 지주-소작인 간의 계급 갈등에 더하여 친족 내부의 갈등, 마을 간의 갈등, 기독교도와 사회주의자 간의 종교·이념 갈등과 같은 복합적 갈등구조에서 찾는다. 이 연구를 통해 저자는 브루스 커밍스가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남부 지방에서 일어난 지방 봉기의 원인을 지주-소작인 간의 계급 갈등으로 기술하고 있는 논점이 정확한 현실적 근거가 없다고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마을에 잠
복해 있던 민간차원의 갈등이 남북한 국가권력의 침투와 맞물려 비극적인 충돌과 학살로 귀결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되돌아보면서, 오늘날 남북관계나 한국 사회에서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가는 능력이 과연 얼마나 성숙했는가를 되묻는다.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이한 해에 출간된 이 책은 한국전쟁에 관한 기념비적 저작으로 기록될 것이다.
- 추천자 : 강정인(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블루 이코노미
군터 파울리/ 이은주 외 / 가교출판
2010. 6. 15. / 444쪽 / 22,000원
이 책의 저자 군터 파울리(Gunter Pauli)는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전 세계 지식인들의 모임인 로마클럽의 초창기 회원으로 활약했다. 로마클럽은 더 이상의 성장이 환경에 심각한 위협을 가져올 것임을 경고한 ‘성장의 한계’(Limits to Growth)라는 책을 출판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지구의 미래를 위해 더 이상의 성장을 자제해야 한다는 결론은 사람들을 큰 충격에 빠뜨렸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태도를 180도 바꿔 성장과 환경 보호가 양립가능한 명제라고 말한다. 4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그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는 녹색경제(green economy)를 대체할 ‘청색경제(blue economy)’를 주창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녹색경제는 환경 보호라는 목표의 달성을 위해 기업과 소비자에게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문제점을 갖는다고 한다. 이에 비해 청색경제에서는 환경을 보호하면서 더 큰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저자는 청색경제의 핵심이 생태계의 지혜를 활용하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생태계는 우리의 파괴적인 생산과 소비 모형을 좀 더 생산적인 것으로 바꿔나가는 데 필요한 영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흰개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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