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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이영환= “암을 무서워하십니까?”저는 76%의 재발 확률이 있다는 방광암 이었습니다. 암을 처음 발견한 병원에서는 저의 가족에게 마음에 준비를 하라고 말 했다고 합니다.
그런 것으로 보아 1-2기는 아닐 것이고 아마 4기는 넘었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 저의 입으로 물어 본적은 없습니다.
저는 암으로 고생하고, 마음이 암에 사로잡혀 가정의 행복도 깨지고, 경제활동도 중단하고 환자로 살아가는 ‘암’ 동지들을 위하여 솔직하게 말하고자 합니다.
저는 15년의 노인봉사 속에서 노인들과 함께 인간회복운동 건무도18동작을 완성하고, 지난 2003년 11월 건무도 협회를 창립하면서, 좋은 약과 좋은 치료와 좋은 운동도 자신의 생활 습관을 먼저 바꾸는 것이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건강도 경영이다”라는 슬로건으로 출발했습니다.
건무도 교육도 있었지만, “건강도 경영이다” 특강 일정 소화에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2003년 8월 어느 날 “소변에서 엄청난 피가 쏟아지는 것입니다”. “병원으로 갔습니다”. “암이었습니다”. “아! 내 몸속에도 암이 자라고 있었구나”. “이런 생각을 맨 먼저 했을 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내 자신의 행동과 생활 습관을 돌아보면 오고도 남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믿는 곳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산소경영입니다”. 자연이 준 생명의 원천 산소, “나는 이것을 믿었습니다”.
독일의 생화학자, 세계적인 암 연구학자,(1931년 제2회 노벨상수상자)인 바르부르크 박사의 산소 이론에는 “암세포의 발생은 산소부족에 있다고 확실히 단정하고 있습니다.
인체의 세포는 공기 중에 산소가 있어야 하는 유산소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산소가 부족하면 생명을 이어 가려고 하는 생체내의 세포는 변화를 일으키고 해당 작용을 비롯하여 무산소 생활로 바뀐다.
이렇게 바뀐 세포의 핵은 암 세포의 핵과 일치 한다” 또한 오토 바르부르크 박사는“암은 저산소 혈증에 의하여 발생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산소 결핍에 의한 신진대사의 장애는 현대의학에서 이미 상식이 된 학설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인체는 산소가 부족한 곳에 질병은 발생하고 깨끗한 산소만 충분히 공급되면 암은 전의하지 못한다는 이론을 저는 믿었던 것입니다. 저는 2003년 12월1일부터 철저하게 산소를 경영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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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편으로는 의사의 말인데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강의 일정은 계속 잡혀있고 취소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 “피 소변을 보면서 강행을 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1시간을 강의하고 “소변을 보면 피 덩어리가 막혀 소변을 볼 수 없었고 그때 마다 있는 힘을 다하여 소변을 보면 피 덩어리가 총알처럼 튀어나오는 경우도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때 산소의 이론대로 전의가 되지 않았다면 새 생명을 얻는 것이고 말대로 방광을 들어내면 다시는 특강 강사로 강단에 서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강행을 하였고 내 자신이 중환자가 되거나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창시한 건무도가 사라지고 말 것을 대비하여 컴퓨터 앞에서 그동안 모아둔 자료를 가지고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조잡하기 짝이 없는 책을 쓰면서 죽은 이 후를 생각해서 제목을“이 영환의 건무도 (건강도 경영이다, 몸부림을 쳐라)라는 제목으로 책을 쓰고 가족에게 발간해 줄 것을 부탁했던 것입니다.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말로만 듣고 남의 일로만 알았던 일이 바로 내 앞에 현실로, 나는 그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서울아산병원 8층 비뇨기 암 병동에 입원을 했습니다.
입원한 다음날 저의 수술 날이었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의 설명에 나도 내 아내도 밤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한 번도 좌절하지 않았고, 우리가족에게 산소 이론을 설명하고 환자로 취급하지 말 것을 부탁하여 웃음을 잃지 않았는데 주치의의 설명을 듣고 내가 아무리 담담해도, 의학적으로 설명에서는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점막을 지났으면 방광을 들어내는 대수술을 해야 하고 일정은 한 달 후에 잡일 수 있고 수술은 하루 종일 걸리며, 만약 근육 층을 지났으면 전신에 암세포는 전의 되어 수술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설명은 주치의로부터 듣고, 집도를 하실 안한종 박사님으로부터 수술에 대한 계획을 상세히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점막 층을 지났으면 수술은 중단한다고 했습니다.
수술을 마치고 안한종 박사님으로부터 설명을 들어야 하는데 “저녁 회진 때 들을 수 있다고 하여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더디어 안 박사님이 저 앞에 섰습니다”. “눈을 감았습니다”.
“안한종 박사님의 첫마디가 다행이다”.
“깨끗이 제거했다”. “전혀 이상 없다”. “큰놈 치고는 예쁜 놈이었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때처럼 좋아해 본적은 없을 것입니다. 그때 저는 새롭게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2박3일만에 퇴원을 했습니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운지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던 노인들에게로 갔습니다.
사실 저는 일반 특강현장에서는 암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지만, 장수마을에 건무도 운동을 지도하던 노인들에게는 암이라는 사실과 떠나면 다시 노인들과 만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하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완치돼 돌아오라고 크게“돌아오라”를 외쳐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곧바로 장수마을 노인들에게로 갔습니다.
보통 암 환자들은 일주일에 한번 씩 서울을 오고 갑니다. 그러나 저는 진주에서 BCG처리를 5회정도 하였습니다. 저는 수술 후 한 번도 아산병원을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그 누구보다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암 환자라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건강경영프로그램은 철저하게 실천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청백삼탕(a와 잎을 달인 물) 을 한잔 먹습니다. 그리고 산소경영을 합니다. 출근하면 녹차나 영지 물을 하루 종일 마십니다.
강의가 있을 때는 물을 반듯이 휴대하고 강의 중에도 마십니다.
비타민C를 충분히 먹습니다. 가능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양보하고 절대로 화를 내지 않습니다. 이것이 저가 하는 암 극복 법입니다.
저의 초등학교 동기생 중에는 4명이 암에 걸렸습니다.
“그러나 한명은 병원을 전전하다가 사망을 했습니다”. 3명은 생존해 있는데, “한명은 마음이 암에 잡혀있어 항상 우울하고 자신감이 없는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진 한 친구가 있습니다. “성격상 가장 내가 좋아하는 김영부 친구는 당당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보다 훨씬 건강하고 언제나 자신감 있고 당당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 파이팅을 보내고 싶습니다.
암을 무서워하십니까?
“물론 무서운 병입니다”. “그러나 암에 잡히지 마십시오”. “건강도 경영이다” 의 주제로 특강을 하고, “건강회복운동의 창시자라는 내 몸속에도 암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극복 하고 있습니다”. 건강경영, 자신만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천하십시오.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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