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공(海公) 신익희선생 54주기 추모행사가 5일 오전11시, 서울 강북구 수유리 묘소에서 거행됐다.
해공 신익희선생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진행된 추모행사에는 유족들을 비롯해 추모사업회장인 남덕우 전총리, 이윤성 국회부의장, 한나라당 유일호, 정진섭의원, 민주당 장성민 전의원 등 정계 인사와 국가보훈 우무석차장, 국민대학교 김철수 부총장, 헌정회 이윤수 사무총장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남덕우 회장은 추모사에서 "본인은 신익희선생이 설립한 국민대학교 최초의 입학생이며 선생님의 제자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소회를 밝히고 "신익희 선생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말을 자주하셨는데 이는 반드시 민주주의가 승리할 것 을 가르친 것으로 54주년을 맞은 오늘 선생님의 위대한 애국업적이 가슴에 더욱 사무친다"고 말했다.
이윤성 국회부의장도 추모사에서 "민주주의 완성을 위한 해공선생의 삶이야 말로 정치의 시작이자 마지막"이며 "선생은 의회정치의 길잡이"라고 추모했다.
해공 신익희선생은 1864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한성외국어학교와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수학하고 5년여 동안 국내에서 교편생활과 독립운동을 하던 중 중국으로 망명해 상해임시정부수립과 더불어 내무차장ㆍ외무차장ㆍ국무원 비서장ㆍ외무총장 대리ㆍ문교부장 등을 역임한다. 귀국 후에는 김구 등 임시정부 계통과는 노선을 달리해 정치공작대ㆍ정치위원회 등을 조직, 이승만과 행보를 같이한다.
1946년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부위원장, 자유신문사 사장, 국민대학교 초대학장 등을 겸하다가 그 해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대의원에 피선, 1947년 의장이 된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자 국회의장에 취임했으며 1949년 민주국민당을 결성, 1950년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국회의장을 연임한다. 1955년 민주국민당을 민주당으로 개명하고 대표최고위원을 맡고 1956년 민주당 공천으로 대통령에 입후보, 자유당의 이승만과 경합을 벌이던 중 열차 안에서 뇌일혈로 급사했다.
신익희선생의 삶과 정치역정을 살펴보면 현 민주당의 뿌리다. 그러나 오늘 그를 54번째 추모하는 이 자리에는 민주당 인사는 볼 수 없었다. 6.2지방선거가 코 앞에 있기는 하지만 정세균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 주요당직자 단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은 것은 물론, 민주당 사람 명의로 된 그 흔한 조화(弔花)하나 볼 수가 없었다.
민주당 인사로는 유일하게 참석해 눈길을 끈 정치인은 국민의 정부 초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장성민 전의원뿐이었다.
장 전의원은 조은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신익희선생은 한강 백사장이 흑사장이라 불릴 만큼 시민대중에게 호소력이 있었던 매력적인 최초의 한국 정치인이었고 민주당의 정신적 뿌리"라고 강조하면서 " 이런 분의 54주기 추도식에 단 한명의 민주당 지도인사가 참석조차 하지 않은 것에 적지 않은 충격"이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장전의원은 "해공선생의 피땀어린 독립운동과 위대한 민주, 애국정신이 밑거름 됐기에 오늘날의 민주당이 국민속에 존재해 오고 있는 것"이라면서 "그 정신적 지주인 해공선생의 추모식에 단 한 사람의 민주당 당직자가 참석하지 않은 것은 당의 뿌리와 역사성 그리고 정체성을 잃고 있는 민주당의 현 주소를 보는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민주당이 역사속의 국민정당으로 거듭 나려면 해공 신익희, 유석(維石) 조병옥, 운석(雲石) 장 면, 김대중 전대통령이 이룩해 온 정치적, 정신적 민주와 자유주의 사상에 대한 전통과 역사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 "이런 민주당의 맥을 이어 나가면서 민주당의 정책과 비전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을 세계 일류국가로 이끌어 나가는데 정치적 열정을 쏟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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