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호 / 대전대학교 교수

[시사코리아저널=이선우 기자] 한국 드라마를 보다 보면 '다른 드라마, 같은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예컨대, 회사 임원이 부장이나 과장에게 기획안을 트집 잡으며 갑질을 하고, 부장이나 과장은 대리나 사원을 향해 똑같이 갑질하는 장면이 그렇다.

일상에서 '사회적 악(惡)자'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권력, 재산, 지위, 주류성등의 상대적 기준으로 사회적 약(弱)자와 강(强)자를 구분할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상대적'이라는 단어가 주는 아이러니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약자 집단 안에서도 또 다른 약자가 존재하고, 사회적 강자 집단 안에서도 또 다른 강자가 생겨난다. 

심지어 사회적 약자 가운데 치졸한 강자가 나오기도 하고, 사회적 강자 중에는 비열한 약자가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드라마 속 장면처럼 사원이나 대리는 과장이나 부장에게 억압을 받으며 약자의 위치에 있고, 과장이나 부장은 이사나 사장에게 눌려 강자의 위치를 빼앗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중간 관리자가 직원에게 폭언과 차별을 일삼거나, 간부가 임원 승진을 위해 상사의 실수를 부풀리고 허물을 들춰 협박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이러한 이들은 사회적 약자도, 사회적 강자도 아닌 '사회적 악자'라 불러야 마땅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는 이러한 사회적 악자들이 넘쳐난다.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하듯, 다양한 직업군에서도 사회적 악자가 늘어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어 안타깝기만 하다. 

사회적 악자는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불쾌감을 이유로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사나 동료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협박하는 부류이다.

TV 뉴스를 보다 보면, 사회적 악자들의 행태에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많다. 예컨대, 만취한 상태로 고급 승용차를 몰아 한 가정의 가장인 배달 기사를 치어 사망에 이르게 한 뒤, 법정에서 감형을 위해 피해자가 교통법규를 지켰더라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파렴치한 운전자, 군에서 직속 상관이 부하 장교를 성추행한 후 오히려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아가려 한 비열한 인간, 이처럼 우리 사회 곳곳에는 사회적 악자들이 기생하고 있다.

나는 사회적 약자이면서 강자이기도 하다. 어떤 측면에서 약자보다는 강자 부류에 좀 더 강하게 속해있다고 볼 수 있다.

가끔 출근길에 나는 내가 믿는 신에게 기도하곤 한다. “선한 영향을 주고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알며 책임 있는 행동을 하는 강자로, 부당한 일에 당당하게 맞서고 차별과 불평등에 침묵하지 않는 약자로 오늘 하루도 정의로운 삶을 살게 해주세요”

시청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장면을 계속 보는 이유는 갑질에 대응하는 장면이 보고 싶어서일 것이다. 우리는 회사 중간 관리자나 직원이 혼나면서 이른바 사이다를 선사할 수 있는 장면을 기다린다.

그러나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라서 그러한 사이다 장면을 흔히 볼 수 없다. 

이 사회가 그 누구도 부당한 피해를 겪지 않고 악의적인 소수가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지 않게 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차기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관심을 가져 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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