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

［시사코리아저널/ 이환수 기자］19대 총선이 8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 한나라당 내에서 때이른 '총선 물갈이론'이 화두로 급부상하면서 마찰음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공천 물갈이'라는 말만 나오면 화들짝 놀란다.

한나라당이 지난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영남 물갈이’를 시도해 영남권 현역 의원 62명 중 27명이 물갈이됐다. 친이계에서는 박희태 국회의장이 당시 희생양으로 날아갔다. 특히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친박계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탈락했다. ‘친박 학살’ 논란이 불가피한 대목이다.

당시 박근혜 전 대표는 “나도 속고 대통령도 속았다”고 반발했다. 200석에 가까운 압승이 예상되던 한나라당은 과반에 겨우 턱걸이했다. 공천을 받지 못한 친박 인사들은 결국 친박연대를 만들어 돌풍을 일으켰다.

친박의 약진은 친이계에 내내 부담으로 작용해 나중에 합당이라는 봉합책으로 수습이 됐지만, 지금까지 계파 논란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형국으로 흐르고 있다. 결과적으로 지난 18대 총선 물갈이 공천은 '실패한 물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때문에 한나라당은 홍준표 당대표 체제 출범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언급되고 있는 '공천 물갈이'를 놓고 벌써부터 전운이 감돌고 있다. 총선 공천시 현역 의원의 교체비율 등을 놓고 불거졌던 물갈이 논란이 당 지도부의 ‘자제령’에도 불구하고 2라운드로 넘어가면서 당내 세력 간 신경전이 더욱 팽팽해질 전망이다.

곳곳에서 터지는 지뢰밭 '물갈이'

한나라당내 '공천 물갈이' 에 따른 전운은 당 인재영입위원장인 주호영 의원이 불을 당기면서 시작됐다. 주 위원장은 "내년 19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대략 40% 중반의 공천 교체가 있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 위원장은 지난달 28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17.18대 국회를 통틀어 공천 교체율이 40%대 중반을 유지했다"면서 "인재영입위 의견은 공천심사위원회가 수용하도록 당규에 규정돼 있다"며 새 인물 영입을 위해 공천 물갈이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주 위원장은 지난 15대 총선 당시 진행한 '개혁과 새인물 영입'을 재추진해야 한다는 당내외 지적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며 "일관되고 지속적인 개혁을 할 수 있는지 여부와 전문성이나 도덕성 또는 헌신성 등이 증명된 사람인지를 주의 깊게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 의원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어느 정도 다양할 필요가 있다"며 "보수나 진보라는 구분이 일도양단적인 것이 아니고 시대에 따라서 지금은 진보적인 것이 시간이 지나면 보수 가치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좀 유연하게 보려 한다"고 설명했다.

주 위원장이 당긴 불씨가 다소 가라않는 듯 했지만, 이번에는 내년 총선 공천의 핵심인물인 김정권 사무총장이 불씨를 재 점화 했다. 김 총장은 7일 "책상형이 아닌 필드형 인재를 영입해야 한다"며 "수구 좌파만 아니면 영입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사무총장은 지난 2일에도 "총선에서 자기희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며 "연말연시가 되면 당 중진 가운데 불출마선언이 잇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경남지역 모 중진의원의 실명을 거론하며 "불출마할 것으로 본다"고도 했다.

김용태 기획위원장은 대통령이나 당 지지율보다 개인 지지율이 낮을 경우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방안을 제안했다. 김 위원장은 "공천에서 감동을 주려면 한나라당의 '꽃밭'에서 혁신적 물갈이를 해야 한다"고도 했다. 강남이나 영남권 등 한나라당 강세 지역에 외부에서 영입한 새로운 인물을 배치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년 총선 전략사령탑인 정두언 여의도연구소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에 대해 20대는 ‘재수없다’ 30대는 ‘죽이고 싶다’ 40대는 ‘관심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면서 "특히 30대에겐 한나라당 간판도 내밀지 못한다. 나도 지역구에 다니다가 30대만 보면 겁이 덜컥 난다"고 말했다.

정 소장은 ‘물갈이 공천’에 대해 "거부감을 주는 그런 용어는 안 썼으면 좋겠지만 ‘새 피 수혈’ ‘인재영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지금 같은 인적구성으로 간다면 국민이 더는 기대할 것이 없다고 본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사무총장, 인재영입위원장, 기획위원장, 여의도연구소장 등 공천 실무자들이 이같은 발언을 계속하고 있어 공천과 관련한 물갈이의 당위성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 한나라당 홍준표(우) 대표.

영남권 중진의원들 폭발 일보직전

물갈이의 대상으로 ‘존재감 없는 영남권 중진’이 거론되면서 이 지역 친이(친이명박)ㆍ친박계 중진들의 분위기는 폭발 일보 직전이라고 할 만큼 격해 있다. 영남의 한 친박계 중진은 홍 대표를 겨냥해 "공천에 대한 개인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영남권에 친박 의원이 많은 만큼, 친박계를 겨냥한 포석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박근혜라는 유력 대권주자를 가진 친박계보다 사실상 와해하다시피한 친이계 영남권 중진들의 불안감은 더 커 보인다.

대구지역 4선인 박종근 의원은 "원칙과 기준도 없이 덮어놓고 물갈이를 해야 한다는 것은 정치공세"라며 "다선이 무슨 죄인가. 다선은 유권자가 달아준 명예훈장으로 박탈도 유권자만이 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8대 총선 공천에 탈락한 뒤 당시 ‘친박연대’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그는 "18대 총선에서 친박 학살극을 벌이고 엉터리 공천을 한 데 책임진 사람이 있느냐, 반성한 사람이 있느냐"면서 "예전의 잘못된 공천 과실은 덮어놓고 아무 기준도 없이 물갈이를 언급하는 까닭을 모르겠다"고 힐난했다.

그는 당직자들 사이에서 잇따르는 공천 관련 발언에 대해 "정기국회가 코 앞이고 산적한 과제도 많아 공천 얘기를 할 때가 아닌데도 집안 싸움이나 부추기는 소리나 하는 이들이 당직자인가. 공천심사위원도 아닌 분들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면서 "자신들은 그 (물갈이) 범주에 안 들어가는지 먼저 성찰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친이계 핵심으로 부산 출신 3선인 안경률 의원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당이 지나친 물갈이를 하다 큰 것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지도부에서 그런(물갈이)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데, 공천 문제는 시대정신을 읽고 시대에 맞춰 해야 하는 것"이라고 불쾌감을 나타냈다.

영남의 한 친이계 중진의원은 홍 대표를 겨냥해 "계파를 없애자며 당선되더니 이제 자기 계파를 만들려는 것이냐"며 "물갈이는 숫자로 볼 때 절반이 넘는 초선부터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 수도권 의원들 사이에서 지역구에서 대통령이나 당 지지율보다 개인 지지율이 낮으면 공천에서 배제시키는 방안이 거론되는 데 대해서는 "영남권은 한나라당 지지도가 대단히 높아 이를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은 박근혜 전 대표 한 사람 외에 없을 것"이라며 "당이나 대통령 지지도가 낮은 수도권은 다 살고, 영남권은 다 죽으라는 무책임한 얘기 아닌가"라고 반론했다.

제발, 공천 언급 자제를...

이처럼 당 지도부의 공천기준에 대해 기존 현역 의원들의 반발이 백가쟁명식으로 표출되는 것에 대해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우려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8월 국회 개최가 결정되고 현안처리가 시급한 마당에 공천문제가 확전될 경우 야당과의 정책 경쟁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유승민 최고위원 등은 "지금 당직자들이 공개적으로 떠들면 공천 블랙홀로 모든 게 빨려들어가 민생이고 정책이고 할 수가 없다"며 "회의에서 공천 언급 자제를 공식 촉구하겠다"고 말했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물갈이론'을 둘러싼 당 내분 양상에 대해 7일 "지금은 국회에서 최선을 다해 일할 때이지 공천에 대해 언급할 때가 아니다"라며 "때가 되면 내 의견도 밝히고 당의 의견도 모으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의 공천개혁 작업을 주도해온 나경원 최고위원은 7일 "현역 의원을 `물갈이' 하더라도 국민의 손으로 하는 게 맞다"며 "누군가 칼을 휘두르는 `공포의 공천'에는 반대한다"고 밝혔다.

나 최고위원은 또 "공천에 대해 중구난방식으로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스템에 의한, 국민의 손에 의한 물갈이가 돼야 한다"면서 "국민공천이 원칙이고, 전략 공천은 최대 20% 비율로 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지도부 한목소리에 '홍준표가 의심스럽다'

▲ 한나라당 김정권 사무총장.

물갈이론이 불과 1주일 사이에 당직자들의 입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자, 홍준표 대표와 교감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일면서 곱지 않은 시각도 존재하고 있다.

특히 홍 대표가 내년 대선 이후의 정치적 입지 등을 고려해 공천의 주도권을 쥐려한다는 일각의 시각도 그런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홍 대표는 지난 7월 당 대표에 당선 되자마자 "계파활동을 하는 의원은 내년 총선 공천을 주지 않겠다"는 발언과 함께 "대표가 되기까지 단검을 들고 나 홀로 험난하게 싸워 왔지만, 지금은 장칼을 들고 있다. 나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며 지금 칼자루를 쥐었기 때문에 헤쳐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곧 "당 대표가 공천권을 좌지우지 하겠다는 것이냐"는 논란을 불러왔었다.

17대 국회 당시 공천 심사위원을 맡은 후 물갈이가 많이 됐다는 한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두 차례 대선 패배 이후 선배들이 정치에 의욕을 잃어 자진 은퇴 하는 경우가 많았다. 용퇴하는 분들이 많아서 편한 공천을 할 수 있었다"고 답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홍 대표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진 당 쇄신그룹이 물갈이론의 중심에 서 있는 점도 이러한 해석에 힘을 싣고 있다. 한 영남권의 중진 의원은 "홍 대표가 임명한 인사들이 한결같이 물갈이론을 말하는데 저의가 의심된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물갈이'론의 得과 失

법조계 인사가 많은 당의 편향된 인적 구성에 변화를 주기 위해 시민사회 활동을 했거나 현장에서 치열하게 주민과 봉사활동을 한 명망가를 영입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지역구를 배정하자는 게 이들의 구상이다.

뜨거운 '공천 감자' … 말! 말! 말! 김정권 사무총장-극좌인사를 제외한 개혁적인 인사로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 현자에서 봉사활동을 한 시민사회활동가 등이 대상이다. 김용태 기획위원장-구체적 준거를 빨리 제시해야 한다. 지명도 있는 외부인사를 좋은 지역으로 배치하는 전략공천도 필요하다. 박종근 의원- 아무 원칙과 기준없이 물갈이 해야 한다는 것은 정치공세다. 다선은 명예훈장으로, 박탈도 유권자만이 할 수 있다. 정의화 의원-국민적 분위기가 없는 상황에서 내년 총선이 불안하다는 이유만으로 현역의원 교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경원 최고위원-현역의원을 물갈이하더라도 국민의 손으로 하는게 맞다. 누군가 칼을 휘두르는 '공포의 공천'에 반대한다.

지난 1995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당시 민주자유당이 15대 총선 당시 이재오 특임장관과 김문수 경기지사 등 ‘운동권’ 출신과 ‘모래시계 검사’로 불렸던 홍준표 대표를 포함한 대중성 있는 인사를 대거 공천해 총선에서 선전했던 것처럼, 지방선거와 4·27 재보궐 선거 패배로 위기에 빠진 한나라당도 ‘폭넓은 인재 영입’으로 돌파구를 찾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15대 총선 당시를 모델로 삼는 점을 공식화하기에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당시 인재 영입을 위해 40명가량의 현역의원들이 물갈이됐었다는 점 때문이다. 당직자들도 인재 영입을 강조하지만, 공천 기준 등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김 총장은 “본격적인 공천 논의는 정기국회 이후 시작돼야 한다”며 “인재를 영입하는 것은 물갈이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며, 또 인위적으로 물갈이 기준을 정해놓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의도와 달리 물갈이 논란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인재 영입을 위해 이념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당 일각에선 “건전한 중도우파로의 확장이 아니라 좌파 인사들까지 데려와 ‘이념의 잡탕’을 만드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또 대중적 인기가 높은 명망가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텃밭’을 주는 것은 당선 지역 한 곳을 더 늘릴 기회를 스스로 저버린다는 주장도 계속되고 있다.

이환수  naewoe45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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