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의 영원한 퍼스트레이디 육영수 여사.

이승만 전 대통령 부인 이 프란체스카 여사가 말하는 육영수 여사

조국 광복의 끈질긴 투쟁과 험난한 역경을 지나 지금은 유명을 달리하신 부군 이승만 박사와 해방의 기쁨을 나눈 지가 엊그제 같은데 바로 그 감격의 날, 이토록 놀랍고 가슴 아픈 소식을 접하게 되다니.... 처음엔 커다란 충격으로 전율을 느끼며 희망적인 보도만을 기다렸었다.

하나님께 쾌유를 도와주시도록 간절히 기도드렸건만 모든 기원도 헛되이 애통함과 깊은 슬픔 속에 잠겨 있는 청와대 빈소에 소복으로 분향재배하고 돌아올 때의 내 심정은 그렇게 고독하고 허무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약한 자와 가난한 자의 편이셨던 훌륭하신 육영수 여사님께서 비명에 떠나시다니 너무도 비통하기 그지없으나 그 아름다운 영혼을 다소나마 위로하고 깊이 애도하며 명복을 비는 마음으로 황망히 추모의 글을 적는다.

하필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이토록 육 여사님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시기에, 더욱이 이토록 젊은 나이에 데려가셨는지... 참으로 안타깝고 애석하기 그지없다.

육 여사님께서는 운명의 순간까지 아내의 도리를 다하셨고 비길 데 없이 훌륭한 내조자로서 항상 헌신적으로 대통령을 보좌하시며 자녀교육도 훌륭하셨던 좋은 어머니셨다. 그리고 내 손자들에 관해서까지도 자상하게 물어보시던 분이었다.

또한 생전에 자애로우신 육 여사님께서는 불우한 어린이들, 역경에 처해 있는 여성들, 특히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은 물론, 가난한 예술가들의 일까지도 발 벗고 도와주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한 일이란 마음은 있어도 쉬운 일이 아니다.

▲ 육영수 여사가 이 프란체스카 여사의 생일을 축하하고 있다.

인상 깊게도 처음 만난 순간부터 티 없이 맑은 미소를 띠고 알뜰하신 배려와 다정하고 따뜻한 말씀으로 위로해 주셨고 공사다망하신 가운데에도 한 결 같이 정성어린 선물로 과분한 정의를 보여주셨다. 해마다 내 생일을 기억해 주시고, 특히 작년엔 나를 청와대로 초청해서 정성껏 오찬을 준비하여 생일 축하를 해주시고 우리 손자들에게 갖다 주라고 케이크까지 들려 주셨다.

나도 그 분의 세 자녀분이 생각나서 케이크의 반을 드리면서 자못 한 가족이 된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자주 만났거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서로의 어렵고 힘든 위치와 처지를 이해하였으며, 나는 솔직히 말해서 우리의 대통령 영부인 육 여사님을 퍽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우아하고 기품 있는 한복차림의 모습과 꾸밈없는 성격과 고운 마음씨, 참으로 내가 사랑하는 우리나라의 고유한 미덕을 고루 갖추신 그윽한 향기를 지니셨던 분으로 느껴졌다.

특히 이화장을 찾아주신 국내외의 친지들도 여사님의 청와대 안주인다운 인품을 극구 찬양하고 내 며느리도 육 여사님은 신사임당처럼 본받을 점이 많은 분이라고 존경하고 흠모하였다.

무엇보다도 나라와 겨레를 끊임없는 노력과 심혈을 기울여 이룩하신 탁월한 업적과 남다른 용기와 신념은 세계 어느 퍼스트레이디도 따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며, 이 헌신적인 봉사활동이야말로 깊이 경의를 표하고 싶다.

어둡고 찬 곳을 따뜻한 양지로 바꾸고, 메마른 곳을 풍성한 숲으로 이룩하고자 하나하나 심고 가신 사랑과 봉사의 씨앗은 나날이 모든 국민의 가슴 속에서 자라난 더욱 많은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울 것이며 영원불멸할 것이다.

육 여사님께서 지니셨던 아름다운 모습과 고귀한 인품과 유덕을 마음속 깊이 기리며 정성을 다해 명복을 빈다. 끝으로 박정희 대통령각하를 구해 주신 하나님께서 각하와 영식·영애, 그리고 육 여사님의 팔순 노모님의 깊은 슬픔을 위로해 주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린다.

▲ 대한민국의 영원한 퍼스트레이디 육영수 여사.

-군 연락병의 회고 중에서-

1955년 노량진에서 셋방살이를 하실 때다. 우리가 보기에도 딱할 정도의 어려움 속에서 육영수 사모님이 항상 조용하게 미소를 머금고 생활하시는 것이 놀라웠다.

“우리 집 명물 콩나물죽” 사모님은 이런 농담을 하며 아랫사람을 달래 주셨다. 그래서 살림의 어려움과는 반대로 집안에는 화기가 넘쳐흘렀다. 그 만큼 알뜰하고 또 살림이 어려웠다는 뜻도 되는데, 사모님이 지어 주시던 콩나물밥은 정말 별미였다.

1956년 어느 날이었다. 사모님은 손님 대접도 분수에 넘치게 허세를 부리는 일이 없었다. 가계부와 견주어 가며 점심은 고작 국수를 대접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었다. 때로는 박정희 준장이 "오늘은 귀한 손님 오셨는데 고기라도 좀 사올 일이지, 만날 절간 음식이오?"라며 농담 비슷하게 말할 때도 있었다. 그러면 사모님은 웃으며 "그래 보여도 이게 영양가가 제일 많다고요"라며 받아 넘기는 것이었다.

▶“이러다 신당동 집에 가면 어떻게 살려고...”

-육영수 여사의 수기에서-

1964년의 일이다. 기숙사 생활을 하던 근혜가 주말에 청와대로 돌아왔다. 모처럼 집으로 돌아온 딸을 위해 몇 가지의 음식을 장만하였다. 저녁 식탁에 생굴이랑 평소보다 두어 가지 많은 찬이 차려져 나오자, 근혜의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이러다간 신당동 집에 가서 살게 될 때 어떻게 하려고...."라며 놀란다.

어른스럽게도 앞일걱정을 하며 자칫 지금의 환경에 젖어 버리기 쉬운 주변 사람의 주의를 환기시키곤 한다. “내 딸이지만 그 소박하고 성실한 성품은 기특하고 본도 받아야 한다”고 대통령은 흐뭇하신 표정이다. 어린 딸의 기특한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버지께 ‘여보’라고 못 부르고 ‘이거 보세요’ 호칭으로 존경"
아버지보다 더 엄하셨지만, 때론 친구 같고, 언니 같은 어머니

▲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박 전 대표는 지난 1999년 발행한 ‘육영수 나의 어머니’를 통해 “어머니는 남편을 가졌다는 것으로도 영광이라고 말씀하시며 모든 즐거움은 함께 나누고, 자랑스러움은 마음껏 보여드리며, 가정 일로 마음에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이 아버지를 내조하는 것이라는 원칙을 삼고 계셨다”고 털어놓았다.

남편인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기에 퍼스트레이디로서, 주부로서 온갖 힘든 일을 감당하면서, 자신의 삶이 남편을 사랑하는 방법이고 그럼으로써 보람 있고 의미 있다고 믿으셨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조용하지만 각별한 사랑을 나누던 두 분의 모습은 해마다 목련이 피는 4월 중순이면 청와대에서 뵐 수 있었다”면서 “두 분이 목련 꽃송이의 바다 속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정하게 산책하는 모습이 제 방 창 너머로 보이곤 했다”고 회상했다.

또한 “어머니는 평생을 두고 충북 재천에서 토호 육종관씨의 둘째 딸로 태어나 봉사의 나래를 펴기 49년, 육 여사의 손길은 한없이 뻗치고 미처 외딴 섬 어린이들은 물론 전국의 87개 음성나환자 정착촌까지 그의 온화한 정이 스며들었다. 항상 조용한 목소리로 ‘이거 보세요’, ‘어디 계세요’라는 말로 호칭을 대신하며 존경과 신뢰로 아버지를 대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어머니는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편한 생활을 하려하고, 나의 노력이 아닌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무슨 일을 해결하거나 물건을 갖게 되는 일을 엄하게 꾸짖어, 아버지 보다 더 엄한 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때문에 박 전 대표는 남들 보다 좋은 장난감이나 학용품을 가져본 기억을 찾지 못한다.

청와대가 장난감 없이 놀 수 있을 만큼 넓다는 어머니의 생각 때문에, 남동생(지만)은 장난감다운 장난감을 가져보지 못했고, 어린 시절의 여동생(근령) 역시 빨강, 노랑, 파랑의 흔한 삼색우산이 유일한 장난감이었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표는 “어머니는 저에게 때로는 친구 같고, 때로는 언니 같은 분이셨다”면서 “제게 많은 조언을 해 주시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스스로 위로를 받기도 했던 것 같다”고 어머니에 대한 아련한 마음을 소개했다. /정종민 선임기자

정종민  korea21c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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