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코리아저널/ 정종민 선임기자] ‘박꽃으로 마을길이 눈부신 밤 하얀 몸매로 나타나신이여…… 연한 비둘기의 음성으로 오고가는 이웃들을 돌보아 고매한 치마 결로 알뜰히 보살폈듯이 흰 샘물의 미소로 이 땅의 갈증을 풀어준…우아한 신이여, 그처럼 상냥했던 이여! 아주 떠나 가셔야 합니까? 우리를 떠나 비옵니다 꽃보라로 날리신, 영이시여 저 먼 신의 강가에 흰 새로 날으시어 수호하시옵소서 이 조국이 겨레를…’

1974년 8월 15일 광복절기념식장에서 흉탄의 저격으로 49년의 생을 마감하신 고 육영수 여사에게 바친 한 국민의 애절한 시의 한 구절이다. 육영수 여사.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다정한 느낌을 주던 이름이다. 우아한 한복차림에 상냥한 미소를 잃지 않던 모습. 큰일에서 작은 일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자상하게 마음을 기울이고, 한국적인 여성다움을 의연하게 보여 주었던 생전의 모습. 백목련처럼 단아한 육 여사의 생애를 우리는 영영 잊을 수가 없다.

대통령의 아내로서, 세 자녀의 어머니로서, 불우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이웃으로서 생전의 육 여사는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의 인생관이었으며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숙제를 다 하지 않은 학생 기분 같다'고 말하고 늘 상 바쁘기만 했다. 2011년 8월 15일로 서거 37주년을 맞는 고 육영수 여사의 생애를 재조명해 본다. 난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고인이 남긴 봉사와 헌신의 생활, 그리고 사랑의 정신과 진실 된 삶의 자세를 다시금 생각해 볼 때이기 때문이다.

▲ 한국의 영원한 퍼스트레이디 육영수 여사.

"웃고 뛰놀자, 그리고 하늘을 보며 생각하고 푸른 내일의 꿈을 키우자"고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던 육 여사는 어린이대공원을 꾸미고 어린이회관을 마련하는 등 어린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데에도 쉴 틈이 없었다.

폭우가 할퀴고 간 자리, 가뭄에 목이 타는 곳, 무엇이든 언제든 다급한 곳에는 반드시 육 여사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일을 즐겨 찾았고, 아무리 큰일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잘해 나갔다.

그래서 그런 성품에 온 국민들은 더욱 그를 잊지 못하며, 그의 손길이 미친 곳, 그의 의지가 이루어놓은 공적의 고마움을 많은 사람들이 외우고 또 외우고 있는 것이다. 신문팔이 소년, 낙도 어린이 영세근로자들, 나병환자, 채소장수 아낙네에 이르기까지 지금도 육 여사의 잔잔한 미소는 지워지지 않는다.

육 여사는 봉사 및 위로사업을 많이 한 '양지회' 활동에서도 병원 위로 방문 일정에 대해 명절을 피하고 평일을 택하는 쪽을 권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명절에는 여러 사람들이 많이 위문을 가기 때문에 오히려 쓸쓸한 시간을 택한 것이다.

육 여사는 이 부분에서 "명절이 아닌 보통 때 주부들이 그저 병원 하나 둘만 찾아 다녀도 좋은 것 같아요. 적적하게 누워있는 데 빈손으로 가기 안됐으면 하다못해 사과를 몇 개 사 가지고 가도 병원 전체를 상대로 하려면 경제적인 면이 뒤따르니까 어렵지만은 그렇지 않고 한 두 병실을 찾아가 같이 앉아서 얘기도 해주고 또 책도 좀 읽어주는 것이 좋겠다"면서 "그리고 무언가 손재주 같은 것도 길러줄 수 있으면 길러서, 아픈 환자들이 (잠시 아픔을)잊을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육 여사의 생색내지 않고, 실질적이며 진솔한 봉사정신을 전하는 대목이다. 육 여사는 박정희 장군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자선봉사단체인 양지회를 조직, 전국 방방곡곡에 자선의 손길을 뻗치는 등 봉사활동에 앞장섰다.

▲ 한국의 영원한 퍼스트레이디 육영수 여사.

육영수 여사는 '여성의 복지와 사회적 지위 향상',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육영사업', '불우한 노인과 빈민에 대한 구호활동' 등 헌신적인 사회봉사활동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1925년 11월 29일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에서 육종관씨와 이경령 여사의 2녀로 출생한 육영수 여사는 향리에서 죽향국민학교를 마치고 서울 배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옥천여자중학교에서 교원생활을 하던 중 1950년 12월12일 군인이었던 박정희 대통령과 결혼, 슬하에 지만, 근혜, 근영의 3남매가 있다. 목련을 좋아해 청와대들 안에도 흰 목련을 가뜩 심었다는 퍼스트레이디 육영수 여사. 육 여사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지금도 그 백목련의 향기로 살아 있다.

전남의 한 여성단체 회장은 “그분은 저희들이 서울에 올라가 전화만 해도 즉각 저희들을 만나주곤 했다”며 육 여사의 소탈한 면을 떠올리며 “저희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대통령께 청와대의 야당으로서 모든 국민의 소리를 전해 드려야 하니, 여러분들은 나에게 기탄없이 국민의 의견을 전달해 달라면서 따뜻하게 맞아 주던 때가 생각나고, 그분이 너무도 그립다”고 눈가에 이슬을 머금었다.

육 여사는 영부인 시절 전국 주요도시에 9개의 여성회관 건립 미망인자활공장 설립하며 여성들의 지위향상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농어촌 여성들의 계몽을 위해 ‘희망의 등불’이라는 책자를 발간하는가 하면, 농어촌 여성들의 소득증대를 촉진하기 위해 양잠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여성본위향상을 위하여 영부인배 탁구대회, 정구대회, 어머니 배구대회 등 각종 경기대회를 개최했다.

그는 어린이들에 대한 사랑도 남달랐다. 동양 최대 규모의 어린이회관과 어린이대공원 건설을 주도하는가 하면, 소년소녀 잡지인 ‘어깨동무’를 발간하고 ‘양지문고 보내기 운동’을 전개해 어린이 독서운동에도 불을 지폈다. 특히 낙도와 벽지 어린이에 사랑도 커 이들을 서울에 초청하고, 전국적으로 학용품 보내기 운동을 벌여나갔다.

불우 청소년의 기술 교육을 위해 ‘정수기술훈련원’을 설립하고 정영사를 서울대학교 구내에 건립하기도 했다. 그녀는 ‘월요노인회’를 만들어 매월 위로연을 벌이면서 틈만 나면 고아원과 양로원을 방문하고 선물보내기 운동을 전개했다.

육 여사는 소외된 이웃에 대한 배려도 아끼지 않았다. 전국 87개 나환자촌을 방문하고 자활사업을 지원하는데 앞장서 음성 나환자들의 가장 다정한 벗이었다. 1971년 12월 겨울바람이 매우 세차게 불 때 육 여사는 좋지 않은 기상조건을 무릅쓰고 헬기편으로 전남의 당시 음성 나환자 정착촌인 현애원에까지 내려와 씨돼지 20마리를 손수 전달한 일화가 회자되고 있다.

육 여사는 씨돼지를 전달하면서 “이 돼지를 잘 길러 나가면 멀지 않아 여러분들의 훌륭한 생활 밑천이 될 것이니, 정성껏 길러보기를 바란다”면서 “1년 후에 이 돼지들이 새끼를 낳을 때 그 중 2마리만 나에게 보내주면 그 두 마리를 또 다른 음성 나환자촌에 전달하고, 그렇게 해서 전국의 음성 나환자들이 돼지를 길러 모두 잘살게 되면 오죽 좋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육 여사는 위로와 격려를 하면서도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자립과 희망을 심어줬던 것이다. 그 날 육 여사는 현애원의 음성 나환자들과 일일이 손목을 잡고 2세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주민들의 부엌살림을 살펴보는 등 이들을 위로, 격려하는데 한나절을 보냈다.

그 후 현애원 주민 102세대 459명은 열심히 이 씨돼지를 기르고 또 새끼를 길러내, 육 여사가 서거한 이듬해까지 그 씨돼지 20마리를 715마리로 불리고, 여기에 닭 2천 마리, 한우 40두를 확보하여 기업적인 축산농업으로 성장했다.

이들 주민들은 “씨돼지가 새끼를 많이 낳으면 2마리만 보내 달라”는 육 여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73년 봄에 약속한 20배인 40마리를 청와대에 보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영부인과 나환자의 약속과 사랑, 그리고 믿음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대규모의 기업축산으로 발전하게 된 현애원 주민들이 가축을 기르는데 사료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사료공장 건립기금을 지원, 육 여사의 유지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육 여사는 정신박약아 및 지체부자유아의 교육과 근로자 합숙소, 시립병원, 상이용사 재활원 등을 지원하는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 한국의 영원한 퍼스트레이디 육영수 여사.

우리나라에서 그토록 자애로웠던 국모 육경수 여사는 해외에서도 많은 활동을 했다. 육 여사는 박 대통령과 함께 세계 여러 나라를 공식 방문했다. 1964년 12월 독일연방공화국, 1965년 5월 미국, 1966년 2월 말레이시아, 태국 및 중화민국, 1968년 9월 호주. 뉴질랜드 방문을 비롯해 1969년에는 8월 샌프란시스코 한·미 정상회담으로 또다시 미국을 방문했다.

육 여사는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 항상 우리의 한복을 입었다. 또 외국의 국가 원수와 퍼스트레이디가 한국을 방문할 때도 역시 한복 차림이었다. 육 여사 자체에서 나오는 자비로운 미소와 한복의 자태가 어우러져 대한민국을 투영시킨 것이다.

육 여사는 때로는 한국 음식을 직접 대접하기도 하고, 음식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크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그런 한국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미국 방문 당시 안내를 맡은 의전장 부인 핸드 여사는 “육 여사야 말로 내가 만난 퍼스트레이디 중에서 가장 활발하고, 건강하고, 명랑하고, 그리고 교양 높은 분이었다”고 존경을 표했다.

미국 존슨 대통령 부인 버드 여사는 “(육 여사는) 한마디로 지극히 비범한 여성이라고 생각한다”며 “워싱턴에서 처음 만나 뵈었을 때부터 그 인품에 감명을 받았으며, 부드러움을 느끼게 하면서도 지성적인 분이었다”고 말했다.

독일 방문 때 현지 언론에서는 “남편과 나라를 열애하는 알뜰한 퍼스트레이디”라고 극찬했다.

이러한 탓에 육 여사는 한국에서 수여하는 훈장은 차지하고라도, 1964년 중화민국의 특기대수일등경성헌장, 독일연방공화국의 특등대십서공로훈장, 1966년 말레이시아의 마고타네가라 최고훈장, 태국의 1등 촐라촘크라오 최고훈장, 중화민국의 특기대수서운 훈장, 1968년 에티오피아의 시바 여왕 대훈장, 1969년 월남국의 특등 킴판 훈장, 니제의 끄랑끄로와·드리토·나쇼날·드·니제 훈장 등을 받았다.

정종민  korea21c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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