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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충경 칼럼] 핀란드 34세 여성 총리 정부의 국정 철학
  • 시사코리아저널
  • 승인 2021.03.2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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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충경 /복지국가소사이이티 공동대표, ㈜펩스젠 대표이사

2년 전의 겨울이다. 2019년 12월 핀란드에서 또 세계를 놀라게 한 뉴스, 34세 여성이 총리로 결정된 일이 있었다.
우리에게는 너무 생소하다. 아니, 우리나라에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신기한 뉴스로 치부될 수 있겠지만, 좀 더 들어가 보면 놀랄 일은 그뿐만이 아니다.

거듭 놀라게 되는 ‘핀란드 정치의 혁신적 모습’

소위 진보·보수, 좌·우 동거의 5개 정당 무지개 연립정부가 출범했다.
그런데 19명의 장관 중에 총리를 포함해서 여성이 12명이다.
놀랄 일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12명 여성 장관 중에서 30대가 4명이나 된다.
여성이니까 네 명 모두 힘없는 부처의 장관이겠지, 이렇게 짐작한다면 또 오산이다.
힘이 막강한 내무부와 교육부 장관이 모두 30대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젊은,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기껏해야 국회의원 말단 비서 또는 하급 공무원이나 하고 있을 나이의 정치인들이 어떤 국정철학을 보여주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국정 프로그램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핀란드 정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A4용지 2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국정방침이 아주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공개되어 있다.

나는 처음에 흥미삼아 읽어보던 것이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놀라움과 감탄을 연발했고, 심오할 정도의 정치사회적 철학이 스며들어 있는 그야말로 민주주의 교과서와 미래 전략 보고서로서 그 어떤 논문보다 좋은 공부가 되었다.
지면 관계상 다 소개하기는 힘들어서 인상적인 것 몇 개만 소개해본다.

첫 번째 서론에서 첫 줄의 따옴표로 강조한 문장이다.
“노르딕 복지국가에서 경제는 국민을 위해 관리되며, 그 반대는 아니다.”(In a Nordic welfare state, the economy is managed for the people, not the other way round)

우리나라 어떤 역대 정부도 경제성장이란 담론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언론에서도 수시로 GDP 성장률의 증감과 수출 규모가 어떻다는 뉴스가 끊임이 없으며, 경제성장률 수치는 국정운영을 평가하는 핵심 지표이다.
경제성장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34세 약관의 여성 총리가 이끄는 핀란드 내각이 발표한 첫 줄에서 경제는 국민을 위해 관리되는 것이지 반대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특이한 점은 200페이지에 달하는 글 전체에서 GDP 성장률은 단 한 단어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경제를 위해, GDP 성장 등을 위해 국민이 존재하고 관리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는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아주 기초적인 상식으로 국정철학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기재부 장관 입만 쳐다보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 참 다른 모습이다.

 혁신 복지국가, 핀란드의 미래를 위한 투자

핀란드도 역시 기후변화와 세계화 그리고 인구의 고령화 등 미래의 불확실한 도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덧붙인다.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변화하는 세계와 미래의 도전은 노르딕 모델을 개혁하고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노르딕 복지 사회는 우리가 미래의 도전에 대응할 수 있는 지속가능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모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회적 지속가능성은 공동으로 미래를 책임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사람들은 평등하며, 이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으로 간주된다.
또한 단 한 명의 젊은이라도 배제되는 위험에 처해서는 안 되며, 단 한 사람의 노인도 늙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그렇다고 평등과 정의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위의 글들을 읽지 않고 넘어가면 영미식 신자유주의 국가가 아닐까 할 정도로 기업들의 성공을 위한 기업 친화적 사회 역시 강조하고 있다.
세금은 노동과 사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데 사용되며, 지금보다 훨씬 더 기업 친화적이고 경쟁력 있는 핀란드를 목표로 삼고 있다.
정부 등 공공기관의 의사결정은 융통성이 있게 사업을 더욱 쉽게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 역시 빠트리지 않는다.

핀란드 같은 노르딕 복지국가는 높은 세율로 유명하다. 2019년 기준으로 국민부담률은 42.1%이다.
한국 27.4%, OECD 평균 34.8%에 비하면 월등히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3년까지 약 1.1%를 증세한다고 한다.
위의 제1장 개요에 이은 제2장 ‘지속가능한 경제의 핀란드’라는 제목의 첫 번째 주제가 증세를 왜 해야 하고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증세된 항목은 소득보장 등 사회안전망의 강화뿐만 아니라 제조업 육성과 탄소중립 등 미래 전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보다 1.5배의 세금 등을 거두고 있고, 거기에 증세를 더하겠다고 말하는 34세의 여성이 이끄는 내각에 핀란드 국민은 지지를 보내고 국정을 맡겼다.
이런 사실을 대한민국 국민들은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국가경쟁력, 교육수준, 디지털과 바이오 등 미래성장 동력이 우리보다 뛰어나고 미래를 위한 대비를 더 잘 하고 있다.

국정과제 즉, 전략적 과제로 7개가 있는데, 첫 번째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을 꼽고 있다.
핀란드는 이미 기후변화 대응 측면에서 세계적 모범국가이다.
탄소세를 1990년부터 세계 최초로 도입했고 재생에너지 비율이 2018년 기준 41%로 유럽 평균 18%대보다 월등하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5.8%이며, 2020년 목표조차 현재의 핀란드에 크게 못 미치는 20%에 불과하다.
34세 여성 총리가 이끄는 핀란드는 2035년 탄소중립화 달성과 2029년 5월까지 석탄 발전의 완전한 중단을 위한 투자를 하려고 증세를 선택한 것이다.
여기에 ‘걸어서 또는 자전거로 출근하기’ 등에도 투자를 하겠다며 상세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한다.

인재 육성 또한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교육·연구·혁신에 투자하여 복지국가 건설과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반을 닦았고, 평등한 사회는 모든 시민들이 그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강조하고
4차 산업혁명과 같은 급변하는 기술적 진보에 대응하고 고용 촉진을 위한 평생학습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변화하는 업무에 요구되는 숙련도의 향상(upskilling)과 새로운 기술 학습(reskilling)을 위한 고등교육과 직업학교의 수준 강화도 빠트리지 않는다.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 오해와 진실

국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기본소득에 대한 언급도 있는데, 딱 한 줄이다.
이전의 정부에서 추진했던 기본소득 실험 결과에 대해 다시 보겠다는 것인데, 말 그대로 딱 한 문장이다.
참고로 잘 알려진 것처럼, 핀란드는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 실험을 했다.
지난 중도우파 정부가 복지 정책의 축소를 노리고 2017년부터 2년간 2,000명을 대상으로 월 560유로(약 73만 원)를 기본소득으로 지급하고, 고용률 등을 실업수당을 받는 실직자 그룹과 비교한 실험이었다.
결과를 보면, 실험의 가설로 설정했던 고용효과는 없었고 행복도가 약간 올랐다고 했다.
그런데 핀란드는 유엔 산하기관이 매년 발표했듯이 행복지수 3년 연속 1위를 기록한 나라이다. 행복도가 약간 오른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원래 핀란드는 정부 스스로 실험을 하는 나라라고 칭하고 있다.
현 정부의 국정 운영 방침에도 핀란드를 세계 최고의 혁신과 실험을 하는 나라라고 명시하고 있다.
4년 전 시작했던 기본소득 역시 그런 실험 중의 하나였고, 우파 정부가 복지 축소와 고용률 증대를 겨냥해서 시도한 ‘큰 당근’이었으나 실패로 결론 내리고 중단했다.

재무부 산하 고위 연구직이 말했듯이 기본소득 실험은 고용효과를 노린 ‘큰 당근’이었지만 효과는 없었고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 사안이다.
결국, 중도우파 정부의 기본소득 실험은 내부 갈등을 초래했고, 사민당이 주도하는 중도좌파 연정에게 정권을 넘겨준 계기 중의 하나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현재 한국 사회에서 철지난 기본소득 주창으로 유명 정치인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있는 모습을 보면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

34세 총리의 발언에서 얻는 소중한 교훈

다시 서두로 돌아가서 34세 여성 총리, 아니 30대 장관들이 어떻게 내각을 차지하고 있는지, 이 부분에 대해 추가하고 글을 맺겠다.
그들의 핀란드는 상식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다.
핀란드에는 15세부터 참여하는 청소년 의회가 있다. 전국 단위로 운영되고 현직 총리가 1년에 한두 번은 참석해서 질의 응답할 의무가 있고, 청소년 의회에서 결의된 의안은 성인 의회에서 심의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금의 산나 마린 총리 역시 어릴 적부터 그렇게 정치 경험을 쌓았으니, 실은 20년 가까운 정치 경력이 있는 셈이다.

혹자는 어린 학생들이 공부는 안하고 정치를 한다고 혀를 끌끌 찰지는 모르겠으나 핀란드 학생들은 그들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공부, 즉 정치가 가장 갚진 공부가 될 수도 있다고 반문할 것이다.
산나 마린 총리 역시 그렇게 해서 2012년 27세의 나이로 핀란드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인 탐페레 시의회 의장이 되었고, 핀란드 사람들에게 친숙한 정치인이 되었다. 그가 한 말로 끝을 맺겠다.
“나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강력한 복지국가와 핀란드 교육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성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너무나 소중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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