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이 같은 '정부 신뢰도 제로 현상'은 내년에 치러질 총선과 대선가도에도 '정부 여당의 발목잡기'로 이어질 공산이 커지고 있어 한나라당이 크게 부심하고 있다. 문제는 MB정부의 이 같은 '지역갈등 부추기기'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남권 신공항을 둘러싼 대구·경북·경남-부산, LH 이전을 둘러싼 경남-전북, 과학벨트를 둘러싼 충청-대구·경북-광주·전남의 지역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지역 간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가 지역 간 갈등을 일으키는 3대 이슈를 3월 말부터 47일 만에 털어버리면서 전국을 혼란에 빠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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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지난 16일 정부가 밝힌 과학벨트 입지 선정과 관련해서는 대전과 강원을 제외한 영·호남이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당초 과학벨트의 충청권 유치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후 과학벨트 입지 역시 충청권에서 멀어지는 듯 보이면서 논란이 점화됐고, 이 대통령이 올해 초 기자회견서 '과학벨트 입지 원점 재검토' 입장을 시사하면서 유치전이 격화됐다.
논란을 거듭하던 끝에 정부는 과학벨트위원회(위원장 이주호 교과부 장관)가 과학벨트 거점지구 입지로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대덕단지) 내 신동·둔곡 지구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기초과학연구원 소속 연구단은 거점지구인 대덕단지와 광주, 경북권(대구·울산 포함)에 집중적으로 들어선다.
결국 과학벨트 거점 입지가 당초 공약대로 충청권 대덕단지로 결정되면서, 그 동안 정부가 나서 오히려 국론 분열을 부추긴 꼴이 됐다.
정부안이 발표되자 전국은 쓰나미가 덮치듯 했다.
과학벨트 지역 유치를 공동 추진해온 경북도(G)와 울산시(U), 대구시(D)는 "이번 결정은 원천 무효"라며 백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3개 시도는 즉각 성명을 내고 "정부의 공정한 과학벨트 입지 선정을 기다려왔으나 정치논리와 지역 이기주의에 밀려 지역 안배 차원의 나눠 먹기식 결정이 이뤄졌다"며 "부적정한 평가지표와 불공정한 입지평가방식 등으로 원천무효인 결정을 수용할 수 없으며 전면 백지화를 요구한다"고 촉구했다.
이 지역은 또 "경북 동해안은 원전과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등 국가적 기피시설을 떠맡아 국가발전에 기여해 왔지만, 이제 더 이상의 희생을 거부한다"면서 원전 폐쇄 및 방폐장 건설 중단까지 요구했다.
GㆍUㆍD 과학벨트 범시도민 유치본부는 과학벨트 평가기준과 선정절차에 대한 행정정보 공개를 청구하고 입지 선정 원천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하는 등 불복종 운동과 법적 대응에 나설 태세다.
과학벨트 호남권유치위원회도 반발 수위는 마찬가지였다.
김영진 민주당 의원, 강운태 광주시장과 윤봉근 광주시의회의장, 정순남 전라남도 경제부지사 등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입지선정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호남권 유치위원회는 "특정지역을 염두에 둔 짜 맞추기 식의 정략적 심사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며 "16일 최종 입지 선정 발표 이전에 대덕으로 확정된 것으로 보도가 난 것은 특정지역으로 정하려고 미리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의 과학계 출신인 박영아 의원마저도 "과학벨트 사업이 세종시 문제와 얽히는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기업의 대규모 유치 계획이 포함됐고 이것이 지역 간 갈등을 증폭시켰다"며 "지금 과학벨트 사업의 핵심 사업과 예산은 대부분 기초과학연구원이 수행하는 연구, 인건비와 관계가 있을 뿐"이라고 비난조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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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발표된 정부의 LH본사 이전지 결정에서도 경남과 전북 모두의 원성을 사고 있다.
참여정부는 경남의 진주혁신도시에 옛 주택공사를, 전북 전주혁신도시에는 옛 토지공사 이전을 약속했다.
그러나 MB 정부는 두 지역으로 각각 이전할 주택공사와 토지공사를 통합했다.
이로 인해 통합된 LH(토지주택공사)의 본사 이전지 유치를 놓고 두 지역이 첨예한 갈등을 빚었다.
정부는 두 공사의 통합을 발표하면서 이처럼 첨예한 이전지 문제를 고려치 않았던 것으로 전해져 두 지역민들의 울분을 사고 있다.
결국 2008년 10월 주·토공 통합 계획 발표 이후 지금까지 MB 정부가 우물쭈물하는 동안 지자체간 갈등의 골만 깊어진 셈이다.
정부가 LH본사를 진주로 이전하고, LH분리 이전 후보지였던 전주에는 국민연금공단을 마치 '민심 달래기'처럼 이전하기로 결정하자, 전북에서는 "우리가 거지냐"라는 격한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불복종 운동까지 점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한나라당 최고위원이자 전북지사 출마자였던 정운천 전 농수산부 장관은 전북도민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는 표현으로 스스로‘함거(檻車)’속에서 가부좌를 하는 등 석고대죄를 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LH본사를 거머쥔 경남 역시 국민연금공단이 전주로 가면 반쪽 이전 밖에 되지 않는다며 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신공항 백지화…여권도 분열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로 대구ㆍ경북(TK)과 부산ㆍ경남(PK) 지역민은 물론 여권 등 정치권이 폭발 직전까지 갔다. 영남권 의원들 사이에서 '탈당' 이야기까지 나왔다. TK와 PK 지역의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한나라당 전통 지지기반인 영남권과 청와대와의 갈등은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그 동안 TK와 PK는 각각 밀양과 가덕도에 동남권 신공항 유치를 위해 사활을 걸어왔다.
그러나 입지발표를 계속 미뤄오던 정부는 지난 3월 30일 경제성 논리로 신공항 건설을 백지화하기로 했다.
TK와 경남지역은 "신공항 백지화는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표현까지 하면서 들끓었다.
대구시는 다시 신공항 유치작업에 나서기로 해 정부의 정책을 비웃었다.
김범일 시장은 한나라당과 연 당정협의회에서 '영남권 통합신공항'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경제성 있는 통합신공항 건설 방안을 마련하고, 부산과 공동으로 추진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또 수도권의 인식 전환과 내년 대선 때 공약화를 위해서도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시는 대구경북연구원에 신공항 관련 정책을 연구할 ‘영남권 통합신공항 정책연구단’을, 대구시에는 교통정책과장을 팀장으로 하는 통합신공항팀을 신설키로 했다.
또 울산·경북·경남 등과 협의해 연내 통합신공항 건설방안 마련을 위한 용역도 마무리할 방침이다.
온 도시를 신공항유치 플래카드로 도배하다시피 했던 부산지역도 반발을 넘어서 독자 추진에 나섰다.
허남식 부산시장은 즉각 기자회견을 갖고 "제대로 된 평가를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신공항 건설이 부적합하다며 무산시킨 것은 어떤 이유로든 수용할 수 없다"면서 "신공항은 24시간 운행 가능한 안전한 공항이어야 하며, 그 최적지는 가덕도 해안밖에 없다"며 "시민의 지혜와 힘을 모아 김해공항의 가덕도 이전을 반드시 이뤄낼 것"이라고 강조해 독자적인 가덕도 신공항 이전 추진을 가시화 했다.
박인호 바른공항건설시민연대 공동회장은 "신공항 백지화를 기정사실화해 놓고 평가단을 꾸려 가덕도와 밀양을 둘러보고 나서 평가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이는 지역 주민을 우롱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과학벨트 등 국정조사 가나
동남권신공항. LH공사 이전. 과학비즈니스벨트 등 국책사업 결정과정의 문제점으로 지역간 갈등이 심화되자, 이들 사업의 결정과정에 대한 국정조사가 민주당 차원에서 요구될 것으로 보여 한나라당의 수용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지역 민심을 고려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입장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새로 등장한 한나라당 원내 지도부가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고 나섰고, 앞으로 도래할 권력으로의 재편 움직임이 벌써부터 표면화 되고 있는 것도 국정조사의 향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민주당 박주선 최고위원은 지난 20일 오전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동남권신공항 △LH공사 진주일괄 이전 △과학비즈니스벨트 선정 등 최근 잇따른 국책사업의 후보지 결정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민주당 차원의 진상조사특위를 구성할 것과 6월 임시국회에서 국정조사를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민주당 최고위윈회는 이 같은 박 최고위원의 제안을 수용하고 특위 인선작업에 들어가는 한편, 국정조사 요구서도 제출할 예정이다.
박주선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 모두발언을 통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선정, 동남권신공항 건설계획 취소, LH공사 모두 경남권 이전 등 국책사업을 둘러싼 대통령의 약속파기 그리고 계획의 취소, 변경 등으로 국책사업 자체가 표류하는가 하면 지역균형발전이 심각하게 훼손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최고위원은 또 "더욱 심각한 것은 국민이 분열하고 있고, 지역갈등이 심각한 상황을 넘어 위기적인 상황"이라며 "이 같은 현상은 용기 없는 대통령이 여론이 무서워서 국정을 사실상 포기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최근 세 가지 국책사업의 문제점 등에 대한 민주당 차원의 진상조사특위 구성을 역설했다.
MB 단초제공…與 좌불안석
국책 사업을 둘러싼 일련의 국론 분열 사태를 분석해보면 △각종 지역 사업에 편승해 쉽게 표심을 얻으려 한 일부 정치인 △갈등 조정 기능을 상실하고 지역 갈등을 조장한 정치권 △입지 선정 과정에서 신속한 처리와 신뢰 획득에 실패한 정부 △국가사업과 지역발전 사업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한 추진방식 등에서 공통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지역 사업에 대한 정치인들 집착이 참여정부 탄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충청권 수도 이전 공약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2002년 대선에서 특정 지역을 겨냥한 공약의 힘이 확인된 이후 이명박 정부 탄생 과정에서도 각 지역을 겨냥한 다양한 공약이 쏟아져 나왔고, 결국 치밀하지 못했던 공약들은 국론 분열을 야기했다.
사업성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예산 확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던 영남권 신공항 건설사업이 대표적인 예로 꼽히고 있다.
이와 함께 공기업과 국책기관의 지방 분산배치와 과학벨트 사업 역시 세종시 처리를 두고 벌어졌던 정치권 공방이나 표 계산과 관련이 있다.
각종 국책사업이 수도 이전과 패키지로 논의되는 과정에서 각 기관의 지방 배치가 계속 미뤄지거나 당초 취지와 달리 사업 성격이 왜곡됐고, 논의 과정도 투명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대목이다.
여권에서는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가 일으킬 후폭풍과 그동안 세종시를 비롯해 과학비즈니스벨트 등 정부의 국책사업이 수도권과 충청, 호남, 영남 등 지역간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대통령 공약이 번복되고 뒤집히면서 민심이 크게 저항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여당 텃밭에서 발생한 '내전'이라는 점에서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이는 TK와 PK간 갈등을 일으켜 정권 재창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동남권 신공항 사업과 LH본사 이전 사업은 지역균형발전을 고려한 것으로 국가의 미래성장동력을 위해 추진되는 과학벨트 사업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전형적인 국책사업인 과학벨트 마저 지역갈등을 초래하게 된 것은 정부의 잘못된 대처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일관되게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고 주장해 왔다.
이 대통령이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기자회견에서 "미래 세대가 떠안을 부담을 고려해야 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말 바꾸기'로 인한 '여론악화'를 고려해 막판까지 애매모호한 입장을 보이다 별안간 결정을 내린 채 지역민들의 유치전을 '지역이기주의'로 치부하면서, 민심의 이반을 자초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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