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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창 칼럼] 깊고 넓은 연대의 ‘전 국민 고용보험’이 필요하다
  • 시사코리아저널
  • 승인 2020.08.25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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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창 /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사무처장

코로나19 사태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신천지 발로 기승을 부리던 코로나19 위기가 다소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최근 들어 일부 교회와 생활 속의 감염 확산으로 다시 확진자의 증가세가 커지고 있다.
긴 장마와 홍수 후의 무더위와 함께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경제사회적 긴장과 심리적 짜증 지수는 더 높아지고 있다.

지난 상반기부터 우리네 지구촌을 뜨겁게 달군 사회 담론은 바로 ‘코로나 이후의 사회’였다.
코로나19 감염병은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단순한 질병이 아니다.
감염병의 성격이 과거와 그것들과 다르다는 측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해석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즉, 지구환경의 위기와 맞물린 거대한 재난이며, 이제 다시는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것이 세계 석학들의 지적이 그것이다.
이제 이 거대한 재난과 함께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것이 인류의 중요한 과제로 등장했다.

재난 유토피아와 재난 자본주의

순환적 시공간관을 가지고 있는 사회에서는 대체로 위기와 기회는 하나이면서 둘, 둘이면서 하나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위기를 잘 극복하면 새로운 기회의 공간이 열리지만,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면 파국으로 간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덮쳤지만, 비교적 한국 사회는 코로나에 대한 대응을 잘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경제성장률을 예측한 결과, 한국은 –0.8%를 기록하겠지만, OECD 국가들 중에서는 가장 양호한 성적을 거둘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은 -6%이고, 미국 -7.3%, 영국 –11.5% 등과 비교해보면 큰 격차가 난다. 이는 봉쇄 없이 진행한 성공적 방역의 결과라고 분석할 수 있겠다.

‘재난 유토피아’와 ‘재난 자본주의’라는 말이 있다.
‘재난 유토피아’는 재난이 닥쳤을 때 사회구성원들이 신뢰와 연대를 바탕으로 유토피아적 모습을 만드는 경우를 말한다.
80년의 광주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80년 광주는 엄청난 사회적 재난을 당했지만, 시민들은 연대와 신뢰를 바탕으로 뜨거운 공동체의 모습을 만들었고, 이후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를 성취하는 데 디딤돌의 역할을 했다.

반면, 나오미 클라인이 제기한 ‘재난 자본주의’는 재난을 이용해 자본과 권력이 실현하고자 목표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그녀는 미국의 지배층이 9.11 사태와 이라크 전쟁이라는 위기를 이용해 체계적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소수 엘리트의 기득권을 강화시켰다고 평가한다.

결국, 재난이 해당 사회를 새로운 기회 혹은 파멸로 이끌 것인가는 그 사회가 축적해온 인적·물적 자산과 함께 구성원들의 성찰 능력과 미래에 대한 태도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지난 상반기에 코로나19 위기를 성공적으로 관리·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의 투명한 행정과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 방역 관계자들의 헌신적 노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97.2%의 국민이 가입한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역할(나머지 약 3%의 국민은 정부가 재원을 책임지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관리를 위임했으므로 사실상 전 국민을 포괄함)이 매우 컸다.

의심 환자를 사실상 무상으로 신속하게 진단하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기 때문에 사회적 확산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가 없고, 상업적 의료보험이 주된 역할을 하는 미국에서는 진단에 1인당 400만 원이나 들기에 취약 계층이 진단과 치료를 회피하도록 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지금까지 570만 명이 확진자가 발생해 전 세계 확진자의 25%의 차지했다.
사망자는 18만 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경제는 장기침체마저 예측되고 있다.
미국의 코로나19 대유행에는 다양한 원인이 작동했겠지만 사회연대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부실한 의료보험 체계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음은 확실하다. 

모두의 건강보험, 절반의 고용보험

재난은 그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보장률은 선진 복지국가에 비해 떨어지지만, 누구에게나 적용(보편적 가입)되는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코로나19의 확산을 저지하는 방패 역할을 수행했지만, 2명 중 1명꼴로 밖에 가입돼 있지 않은 고용보험(취업자 중 절반만 가입)은 사회적 약자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더구나 코로나의 위험에 덜 노출되는 정규직들은 대부분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고 있지만, 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 자영업자, 단기노동자들은 실업의 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재난을 통해 우리 사회는 강자에게는 안전하고 약자에게는 더 위험한 야만의 모습을 다시 지켜봐야 했다.

터져 나오는 불안과 불평에 정부는 긴급하게 재난지원금을 뿌려야 했지만, 재난지원금은 48년 정부 수립 이후 억압과 강제, 부패와 불신의 대상이었던 ‘국가’의 본질적 역할을 새롭게 보는 작은 계기가 됐다.
그 영향인지 총선에서 정부여당은 예상을 초월하는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같은 코르나19 위기에도 불구하고 북유럽의 선진 복지국가에서는 이런 현금 살포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미 보편적 복지 제도로서 실업보험이 제도적으로 탄탄하게 구축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들 나라에서는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논란이나 갈등을 겪을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1977년 7월 박정희 정부에서 시작했고, 2000년 7월 김대중 정부에서 통합된 의료보험으로 새롭게 출범했던 국민건강보험은 이번 코르나19 재난에서 큰 역할을 했다.
만약 김대중 정부에서 의료보험이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수백 개의 크고 작은 의료보험조합들로 여전히 나눠져 있었더라면 코로나와 같은 전국적 재난 상황에서 쉽게 대처하지 못했을 것이 자명하다.

반면에 지난 10여 년간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줄기찬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용보험은 큰 진전이 없었다.
가장 취약한 절반의 노동자들과 영세 자영업자들이 여전히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고용보험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들도 낮은 수급율과 짧은 급여기간, 불충분한 서비스 등으로 고용보험의 실효성을 충분히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가장 시급한 것은 실업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취약한 노동자들의 고용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이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 연설에서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오랜 숙원이었던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겠다고 선언했다.
아직 세부적인 계획은 나오지 않았지만, 예술인,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의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자영업자들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은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점진적으로 해 나가자는 단계적 방안을 정부에서 모색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부가 구상의 일단으로 밝힌 5년에 걸친 단계적 실시 방안은 이전의 어떤 정부보다 진일보했다.
하지만 이런 단계론적 인식이 재난이 일상화되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분명한 것은 이런 방안이 국민적 환영과 기대의 대상이 아님은 확실해 보인다.

산업이 고도화되고, 4차 산업이 활성화될수록 비정규적 노동과 실업은 일상화될 가능성이 높다.
온라인 플랫폼에 기반을 둔 기업들은 기존의 전통적 고용-피고용 관계를 넘어서고 있으며, 일반 기업들에서도 고용의 외주화는 일상화되고 있다.
기존의 고용보험은 20세기의 선명한 고용-피고용을 전제하고 설계한 사회보험제도이기에 21세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고용관계에서는 그대로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기존의 방식을 따른다면 플랫폼 노동자를 누가 고용했는지, 스스로를 고용한 자영업자에게 왜 고용보험을 지원해 주어야 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한 지난한 사회적 논쟁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새로운 고용보험 모델의 역동적 작동이 필요하다

고용노동부는 대통령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연말까지 세부 계획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현재까지의 추세를 볼 때 혁신적인 반안을 내놓을 것 같지는 않다.
가입률이 절반에 그치고 있는 고용보험의 수혜자들을 점진적으로 늘려나가는 단계적 해법 정도에 그칠 것 같다. 하지만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만큼 정부도 이런 시대 전환적 흐름에 맞춰 전향적이고 혁신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부자나 빈자나 모두 병들고 아플 수 있다는 대전제를 가지고 누구에게나 보편적 의료보장을 설계했듯이,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고용 문제는 누구나 쉽게 실업을 당하고 폐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대전제를 가지고 새롭게 고용과 실업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단순 보험이 아니라 사회적 연대에 기반을 둔 사회보장의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
플랫폼 노동, N잡, 시간제 노동 등은 경제 생태계의 불가피한 변화인 만큼, 이에 발맞춘 사회보장 설계를 해야만 한다.
건강보험만큼의 연대성과 보편성의 원리를 가지고 고용보험 제도를 새롭게 설계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해왔던 것과 같은 임기응변의 땜질식 처방, 즉 누더기 제도를 면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정책적 시도가 요구된다.

첫째, 무엇보다 고용-피고용이라는 전통적 취업자의 관점이 아닌 소득 기반 위에서 새롭게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디지털 경제와 4차 산업은 전통적 고용 관계를 허물고 있기 때문에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이들이 실업에 처했을 때를 대비한 사회보험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득 기반으로 관점을 바꾼다면 플랫폼 노동의 고용주 문제, 자영업자들에 대한 큰 사회적 논란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게 된다.
또 빠르게 바뀌고 있는 경제 생태계의 변화는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시민들이 실업에 노출될 위험이 커졌고, 빠른 사회 변화에 맞춰 직업 능력과 직업의 전환을 국가가 섬세하게 지원해줘야 한다.

둘째, 제도의 개혁은 ‘보다 강화된 사회연대성의 원리’에서 출발해야 한다.
현재 공무원 등 별도의 연금 체계에 속해 있는 146.9(5,4%)만 명은 고용보험을 들지 않고 있다.
이들은 고용 해지의 위험이 덜 하기 때문에 가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 있겠지만, 사회연대의 원리를 통해 모든 경제 활동을 하는 이들은 의무적으로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전체 경제인구의 1/4을 차지하는 자영업자들은 현재도 고용보험을 가입할 수 있지만, 본인들의 선택사항으로 두고(임의가입) 있고, 소득의 2.25%라는 상대적으로 높은 보험료율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고용보험 가입률은 0.4%에 그치고 있다.

만약 고용보험의 가입 여부를 본인들의 선택에 맡겨둔다면 고용안정성이 높은 이들은 참여하지 않으려 할 것이고, 안정성이 낮은 이들만 높은 위험에 따른 많은 보험료를 부담해야하기에 고용보험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게 된다.
또 아버지가 안정된 직업의 공무원이라도 아들은 플랫폼 노동자가 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사회연대성과 세대연대성의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천명했던 것처럼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인구가 참여하고 함께 실업을 극복한다는 ‘사회연대’의 철학을 고용보험 속에 충분히 녹여내야 한다.

셋째, 소득에 기반을 둔 새로운 고용보험 체계를 만들려면 무엇보다 소득에 대한 투명한 파악이 선행돼야 한다.
사회적 신뢰도가 약한 우리 사회는 여전히 소득의 누락과 탈세 문제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투명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소득 기반 고용보험은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이미 전산화를 통해 국세청 소득신고 건수가 3천만 명을 넘어섰고, 거의 모든 취업자를 포괄하며 있다.
다소의 인프라만 보완하면 새로운 고용보험 체계를 구축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소득 기반 고용보험을 설계한다면 소득 파악과 같은 하드웨어와 함께 소득 정보와 사회보험료의 통합적 운용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소득 정보는 국세청이 가지고 있지만, 사회보험료 징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수행하고 있는 만큼, 이들 간의 역할을 통합하고 재조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 미래 사회의 위험이 더욱 증대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사회보험을 통해 위험을 전략적·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사회보험청’과 같은 별도의 기구를 둘 필요도 고민해봐야 한다.

복지국가는 단순히 복지 제도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 개개인들의 열망과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이를 현실화시킬 때 이뤄질 수 있다.
시민들의 열망과 재능은 직업과 일을 통해 이뤄지는 만큼, 고용보험은 단순히 보험을 통한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각자의 재능과 역량이 십분 발휘될 수 있도록 평생교육 등과 연계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역할까지 수행해야 한다. 

물론 전 국민 고용보험을 새롭게 설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득 기반 고용보험으로 전환한다고 할 때 국가의 지원과 역할,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 정도, 사업주에 대한 보험료 징수 등 크고 작은 이슈들이 있겠지만,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방향을 제대로 잡고 사회를 합의를 만드는 일이다.
지금 정부는 절반에 불과한 현재의 고용보험 가입률을 단계적으로 더 높이겠다는 단순하고 소극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은 단계적 확대가 아니라 모든 경제활동인구가 가입하도록 한다는 대전제를 가지고 질적 전환을 해야 한다.
그래야 예상되는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줄이고, 사회적 연대와 효능을 극대화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재난 유토피아’을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실천해야 할 때다.

※ [윤호창 칼럼]은 프레시안과 공동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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