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코리아저널 김연학 기자] 만 스물다섯에 시작된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인생은 시련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테러가 목숨을 위협해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1969년 초산 테러 직후 “진리를 위한 길, 자유를 위한 길이라면 싸우겠다. 싸우다가 쓰러질지언정 싸우겠다”라며 독재와 불의에 맞섰다. 야심 많은 이 젊은 정치인은 유신 독재의 모진 탄압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1974년 신민당 총재 수락 연설에서 “나는 앞으로 우리들이 가야 할 길이 험난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여러분이 오늘 나에게 준 이 영광이 결코 영광이 아니요. 십자가라고 나는 생각한다”며 기꺼이 십자가를 짊어졌다. 무장경찰이 당사를 짓밟고, 정권이 자신을 의원직에서 제명하고 앞길이 막막할수록 투지는 더 불타올랐다. 1979년 의원직 제명 이후 “아무리 닭의 목을 비틀지라도 새벽이 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며 지금도 회자되는 그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유신의 종말은 독재의 끝이 아니었다. 신군부는 눈엣가시인 김영삼을 가택연금 한다. 몸은 갇혔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의지는 자유로웠다. 1985년 2월 “나를 감금할 수는 있어. 힘으로. 이런 식으로 힘으로 막을 수는 있어. 그러나 내가 가려고 하는 민주주의 길은 말이야. 내 양심을 전두환이 빼앗지는 못한다”며 신군부의 서슬 퍼런 총칼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다. 잠깐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은 가지 않겠다던 김 전 대통령. 그는 이제 한 줌 흙으로 돌아갔지만, 그가 외친 말들은 한국 민주주의를 지키는 파수꾼으로 남게 됐다.

▲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오후 서울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故김영삼 대통령의 유해가 실린 운구차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김 전 대통령은 이날 0시21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혈액감염 의심 증세로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

정치권은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큰 별이자 문민정부 시대를 연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가슴 깊이 애도했다.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큰 별이자 문민정부 시대를 연 장본인”이라고 밝힌 뒤, “유가족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상도동계 인사로 분류되는 김무성 대표 역시 “민주화 운동의 영웅이 돌아가셨다”면서 “김 전 대통령의 민주주의 대한 열망과 열정이 영원할 것”고 애도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온 국민과 함께 애도하며 명복을 빌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수 대변인은도 구두 논평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주의의 거목으로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큰 지도자였다”면서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온 국민과 함께 애도하며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이어 “박정희 독재 시절 정권에 의해 국회의원직을 제명당한 최초의 의원이었으며, 그의 제명은 부마항쟁으로 이어져 유신의 종말을 고하는 도화선이 됐다”고 강조했다.

또 “전두환 정권 시절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전개하는 등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 운동의 구심점으로 큰 발자취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김 대변인은 “3당 합당과 국제통화기금, IMF 구제금융 등 김 전 대통령에게 지워질 정치적 책임도 분명하지만, 민주화에 대한 고인의 업적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88세 ‘인동초’ 같은 삶 마감

그렇게 김 전 대통령은 88세를 일기로 ‘인동초’ 같은 삶을 마감하고 영원한 안식을 얻었다.

민주화와 민권을 위해 평생 굽히지 않았던 그는 우리 곁을 떠나면서까지 ‘통합과 화합’을 마지막 선물로 남겼다.

김 전 대통령의 국가장(國家葬) 영결식은 26일 오후 2시부터 1시간20분 동안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 거행됐다. 헌정 사상 첫 국가장이다.

이날 오전 10시 수원중앙침례교회 김장환 원로목사의 집전한 발인(추모)예배에 이어 오후 2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영결식이 열렸다.

영결식에는 손명순 여사와 장남 은철 씨·차남 현철 씨를 비롯한 유족, 친지, 장례위원회 위원, 유족 추천인사, 각계 대표, 해외 조문사절단 등 7000명이 참석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다자외교 강행군에 따른 건강악화의 여파로 영결식에 불참하는 대신 김 전 대통령의 빈소가 있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다시 찾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이 때문에 영결식 식순은 그대로 진행됐지만, 헌화·분향 절차에서 유족 다음으로 현직 대통령을 건너뛰고 전직 대통령 측이 하게 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와 고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함께 헌화·분향을 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불참해 함께 헌화·분향을 하지 못했다.

장례위원장인 황교안 국무총리에 이어 4부요인 및 각 정당의 대표가 함께 헌화하고 정의화 국회의장이 대표 분향을 했다. 마지막으로 해외 조문사절과 주한 외교단을 대표해 엔그웨이 엠담보 주한 콩고민주공화국 대사가 헌화했다.

헌화·분향에 이은 추모 노래는 한양대 교수인 바리톤 고성현 씨가 국립합창단, 구리시립소년소녀합창단과 함께 고인이 평소 애창했던 가곡 ‘청산에 살리라’를 불렀다.

앞서 김 전 대통령의 생전 영상이 나오자 유족과 시민들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현철 씨는 오열했고, YS의 최측근이었던 최형우 전 내무장관도 울었다.

◇국민을 섬긴 문민정치가

황 총리는 조사에서 “우리나라 민주화의 큰 산이었던 김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에 황망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며 “고인의 염원인 ‘평화롭고 자유롭고 번영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오늘의 우리들이 해야 할 몫이다. 더욱 자랑스럽고 부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온 국민의 힘과 지혜를 모아가겠다. 언제까지나 우리나라를 지켜주시고 우리 국민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시라”고 추념했다.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인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추도사에서 “그렇게 사랑하던 조국, 그렇게 사랑하던 국민, 그렇게 사랑하던 동지들을 남겨놓고 이렇게 홀연히 가신 거냐. 머지않아 저희 모두 대통령의 부재를 실감하게 될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 전 의장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을 섬겨 오신, 진정한 문민 정치가였다”고 평가하며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온 국민의 이름으로 말씀드린다. 참으로 참으로 수고 많으셨다. 정말, 정말 감사하다. 사모하던 하나님의 품 안에서 부디 안식하소서”라고 어렵게 말을 이어갔다.

지난 22일 김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 알려진 뒤 가장 먼저 빈소를 찾은 인사는 김 전 의장이다. 그는 김영삼 정부 임기 후반기에 2년간 국회의장을 맡았다.

조사·추도사 직후에는 김 전 대통령과 유족의 종교인 기독교를 시작으로 불교, 천주교, 원불교 등 4대 종파의 종교의식이 이뤄졌다.

기독교 의식은 김장환 목사, 불교는 대한불교조계종 화암 스님, 천주교는 한국천주교 인천교구장인 최기산 신부, 원불교는 황도국 교무 각각 맡았다.

◇김 전 대통령 마지막 가는 길

영결식이 끝난 후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은 별도의 노제와 추모제 없이 서울 상도동 사저만 들린 후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이어졌다.

상도동 사저는 김 전 대통령이 1969년 이사를 한 뒤 46년간 살아온 곳이다. 거실 곳곳에 고인의 흔적이 묻어 있다.

민주화 투쟁 시절 가택 연금과 23일 단식이란 고통스런 시간도, 대통령 당선이란 환희의 순간도 함께 했던 곳이다.

동교동계와 함께 민주화 운동의 쌍벽을 이룬 상도동계의 베이스 캠프이기도 했다. 운구차와 유가족 일행을 실은 차량은 개관을 앞둔 김영삼 대통령 기념 도서관 앞에도 잠시 머물렀다.

별도의 노제와 추모제는 열리지 않았고 운구차는 곧바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향했다.‘칼국수 대통령’이라 불릴 만큼 검소함과 소박함을 강조했던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다.

지난 닷새 동안의 국가장 기간은 우리 사회가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역정을 되돌아보는 자리였다. 통합과 화합이라는 고인의 유지를 어떻게 실천할지는 이제 정치권의 몫으로 남았다.

◇5일 국가장 전 국민들 애도

5일 국가장 기간에 전 국민은 슬픔에 잠겼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봐 온 상도동 주민들이 슬픔을 말할 수 없이 컸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애도하기 위해 전국에 마련한 분향소에 18만7000여 명이 조문했다.

26일 오후 2시 기준 전국 자방자치단체가 설치한 221개(17개 시·도 23곳, 162개 시·군·구 198곳) 분향소에 18만3796명(누계)이 다녀갔다. 22일에는 1300명이 찾은데 이어 23일과 24일, 25일에는 각각 3만9602명, 5만2295명, 6만9399명이 조문했다.

국회의사당에 설치된 정부대표 분향소 누적 조문객 3218명까지 더하면 18만7014명에 이른다. 서울대병원에 차려진 빈소에 지난 5일 동안 다녀간 누적 조문객 수는 총 3만7300여명이다.

◇여야, 고인 업적 재평가

고인은 외환위기에, 아들 비리란 오명 속에 임기를 마쳤다. 하지만 서거하자 유신에 항거한 정치 투사, 금융 실명제를 실시한 개혁의 전도사, 하나회를 척결했던 문민 대통령이란 점이 집중 부각됐다.

국민 90%가 갈채를 보냈던 재임 초기 대통령의 모습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김 전 대통령께서 정말 우리나라를 훌륭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누대에 남을 위대한 업적을 많이 남기셨다”고 평가했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 전 대통령은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 최연소로 당선된 뒤 제 5·6·7·8·9·10·13·14대 국회의원까지 9선 의원의 족적을 남긴 정치거목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도 “이렇게 떠나보내게 되니까 착잡하고 이제는 그것이 우리 후배들에게 남겨진 몫이라는 생각과 다짐을 한다”고 고인을 기렸다.

여야는 민주화 운동을 함께 했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고인의 업적을 공동으로 재평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연학 기자  dusgkr08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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