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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저의 영원한 ‘0순위’는 바로 아내”[기획특집 인터뷰2] ‘행복 유성을 디자인하다’ 허태정 유성구청장
  • 이명순·이희내 기자
  • 승인 2015.10.0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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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코리아저널 이명순·이희내 기자] 대전 유성구는 최근 '젊음의 도시'로 불리고 있다. 유성구 주민 중 20~40대 젊은 층이 무려 50%이상으로 전국에서 2번째로 젊은 도시이기 때문이다. 이런 젊음의 열기가 넘치는 유성엔 젊은 구청장이 있다. 젊음과 소통의 아이콘으로 사랑받는 인간 허태정을 유성구청 쉼터 카페에서 만나 그의 삶과 사랑, 그리고 철학을 들어봤다.

▲ 본지 이명순 대전취재본부장이 허태정 대전광역시 유성구청장과 대담을 나누고 있다.
젊음과 소통의 아이콘으로 ‘주목’

- 나이가 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정말 젊어 보입니다. 구청장님만의 건강관리 비결이 있나요?

어렸을 때 핸드볼 선수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건강한 편이고 운동신경도 있는 편입니다. 그러나 단체장이 되면서 건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동하며 항상 집중해야 합니다. 개인시간이 거의 없어 별도로 운동시간은 내기가 힘듭니다. 일상생활에서 몸을 많이 움직이려고 합니다. 출퇴근 시 아파트 계단, 구청 계단을 항상 이용하고 엘리베이터 이용을 자제합니다. 나름대로 운동이 되고 그나마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 정치에 상당히 젊은 나이가 입문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학 졸업 후 공장에 취업해서 노동환경을 직접 경험한 것이 큰 역할을 했지요?

제가 85학번인데요. 제가 대학을 다닐 당시에는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과 저항이 지성인의 책무였습니다. 저 역시도 87년 민주화 운동을 거치면서 사회에 대해 깊은 고민과 생각들을 키워왔던 것 같습니다. 또 대학 졸업 후에는 공장에 취업해 노동자들과 한동안 지내면서 열악한 노동환경과 현실의 높은 벽도 마주했었습니다. 이러한 고민과 열정이 저를 30대의 젊은 나이에 정치에 투신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 허태정 하면 소통하는 구청장으로도 많은 화두를 장식했습니다. 구민과의 대화를 유성구 곳곳에서 지속적으로 하고 계시다고 들었는데요.

올해는 지방자치가 시작한지 20년이 되는 해입니다. 주민참여 없이 지방자치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저는 민선 5기부터 이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구정의 많은 부분을 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바쁜 일정과 생활로 참여가 어려운 구민들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엔 저와 공직자들이 찾아가서 청취하고 반영하도록 시스템을 만들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주민참여예산제와 구민배심원제, 온천문화축제가 있는데요. 이런 제도를 통해 주민들은 사업을 제안하고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습니다. 참여가 어려운 주민들은 인터넷 의사결정도 하고요. 주민참여는 지방자치를 성숙케 하고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할 것입니다. 구청장으로 이러한 참여와 소통의 기회를 확실히 보장하고 확대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까까머리, 예산 촌놈 꿈을 품다

- 이젠 조금 포커스를 돌려서요. 구청장님이 아닌 남자 허태정, 인간 허태정을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예산의 촌놈 허태정, 까까머리 어린 시절 그는 어떤 소년이었습니까?

고향은 충절과 사과의 고장으로 유명한 예산입니다. 완전 촌놈이죠. 양천 허 씨가 300년 넘게 살아온 뿌리 깊은 집성촌이기도 한데요. 6남매 중 막내라 솔직히 아주 개구쟁이에다, 별명이 놀부였습니다. 동네 골목대장은 맡아놨었죠. 집안 큰 마당에서 아이들과 놀았는데, 제가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승부근성도 강해서 애들이 좀 힘들었을 겁니다.

- 이렇게 멋진 남자로 허태정을 키워주신 부모님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저희 집은 시골이지만 동네에서는 살림이 넉넉한 편에 속하는 집이었습니다. 소위 시골부자라는 정미소와 목장을 운영했으니 먹고 가르치는 걱정을 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죠. 덕분에 저는 큰 고생 없이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시골에서는 조금 사는 집이었는데요. 집주변에 과일수가 많기도 했죠. 가을이 되면 아이들이 밤 주우러 많이 왔는데요. 어느 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밖에 나가려고 하는데 할아버지께서 조금만 있다가 나가라고 하시는 거예요. 웬일인가 했더니 아침이면 떨어진 과일을 주우러 오는 동네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과일 줍는 것을 민망해 할까봐 일부러 저를 못나가게 만류하신 것이었습니다. ‘떨어진 과일은 이미 우리 것이 아니니 욕심내지 말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이제 생각해보면 나누고자 하는 큰마음이었다는 걸 알게 됐네요. 아버님 역시 4대독자로 손이 귀한 집이었구요. 고등학생 때 결혼하셔서 스물여덟에 6남매의 가장이 되셨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교육열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으셔서 육남매를 다 대학까지 보내셨답니다. 이런 것들이 당시엔 별 것 아닌 줄 알았는데 내가 자식을 키워보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이 들며 지금도 감사함과 죄송함이 듭니다. 어머니께서도 매 끼니 밥을 할 때마다 한 솥을 더해서 어려운 분들께 나누어주시고, 이웃사랑을 실천하시고, 더불어 사는 세상을 어린 시절 허태정에게 보여주셨습니다.

- 청소년 시절, 허태정이 꾸었던 젊음의 자화상은 무엇이었습니까?

아무 탈 없이 청소년을 보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예산에서 대전으로 올라와 고등학교 생활을 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입시공부보다는 인생 공부에 재미를 붙였어요.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해서 당시 무전여행이 유행이라 혼자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는데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책의 3분의 2를 다녀봤을 정도로 여행을 좋아했습니다. 또한 형과 누나들이 읽던 책에도 관심을 가졌구요. 영화감독의 꿈을 갖고 영화개봉작은 다 봤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부모님 뜻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방향으로 갔죠. 그렇지만 지금 생각하면 여행이 나를 많이 키워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생각의 깊이를 갖게 하고 성숙시킴은 물론 시야를 넓히게 하는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허태정의 사랑, 그리고 운명

- 허태정의 사랑. 그 아름다운 만남의 계기, 어디에서 시작했습니까?

군사정권시절, 1988년에 지명수배를 당해 모교인 충남대 캠퍼스에서 숨어 지냈습니다. 경찰이 학교로 밀고 들어오는 위기에 빠졌을 때 피신할 곳을 수소문하다가 가게 된 학교방송국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한쪽 구석에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밤새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랑하게 되었죠. 8년간 연애 끝에 결혼해서 두 아이를 낳았습니다. 어려운 시절에 늘 저를 보듬으며 투정한번 없이 묵묵히 곁을 지키면서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지금도 저의 영원한 0순위는 아내입니다.

- 허태정 구청장님의 또 다른 가족인 유성 구민 분들께서 이 질문을 보내주셨습니다. 허태정의 가장 힘들었던 시련.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리고 인생에 있어 가장 기뻤을 때가 궁금합니다.

누구나 어려운 시절은 있었겠지만, 사명감과 일에 대한 자부심이 그 어려움을 딛고 서게 하는 무언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저 역시 힘들었던 시절이 많았거든요. 잘되던 사업이 망하기도 했고, 진짜 재기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까지 들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때가 저를 가장 많이 성장시킨 성장의 기회의 시간이었습니다.

- 앞으로 유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요? 유성의 성장 동력에 대한 구청장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유성구청이 추구하는 제일의 가치는 구민의 행복입니다. 유성구청은 민선 6기의 패러다임인 혁신과 협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적 배려를 통한 사회통합, 미래유성을 위한 지속가능한 발전기반 마련이라는 3가지 영역에서 사업들을 펼쳐나갈 계획입니다. 먼저 민선6기 새로운 패러다임인 혁신과 협치를 위해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진화하는 행정조직으로 변모할 것입니다. 혁신의 중심에는 구민과 함께하는 민관 협치가 바탕이 될 것입니다. 둘째, 주민 삶에 대한 배려의 철학을 바탕으로 계층 간 갈등을 극복하고, 효율성이라는 현대의 자본논리에 공동체가 희생되지 않도록 ‘행복의 공동체’ 마련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인구 40만의 중핵도시를 준비할 것입니다. 급격한 인구증가와 도시개발에 있어 도시의 품격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교육, 문화, 건강, 복지 인프라 확충을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 이와 함께 복지, 평생교육, 자원봉사, 사회참여 등 소프트웨어적 측면도 균형 있게 발전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충남 예산 출신인 허태정 유성구청장은 충남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참여정부시절 대통령비서실 인사수석실 행정관, 정무수석실 행정관 등에 이어 대덕연구개발특구 복지센터 소장을 거쳐 2010년 제 11대 유성구청장에 당선된 데 이어 지난해 제12대 유성구청장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대담 이명순·정리 이희내 기자

이명순·이희내 기자  dlgmls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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