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 이우근 편집위원.

장자(莊子)의 달생편(達生篇)에 목계의 덕(木鷄之德)이 나온다. 기원전 8세기경 중국 주나라의 선왕(宣王)은 닭싸움을 매우 좋아했다. 선왕은 당대 최고의 투계 조련사인 기성자(記成子)에게 최고의 싸움닭을 만들어 달라며 자신의 닭을 맡겼다. 열흘이 지나자 선왕은 기성자에게 닭싸움 준비를 마쳤느냐고 물었다. 기성자는 닭이 강하긴 하나 교만하여 자신이 최고인 줄 안다며 조련을 더해야 한다고 답했다.

다시 열흘이 또 지나자 왕은 이제 그 닭을 싸움판에 내 보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기성자는 교만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의 소리와 행동에 너무 쉽게 반응하기 때문에 인내심과 평정심을 기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다시 열흘이 지났다. 왕은 어찌되었느냐고 재촉하자 기성자는 조급함은 버렸으나 눈초리가 너무 공격적이라 눈을 보면 닭의 감정상태가 다 보인다며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고 답했다.

싸움닭 조련을 맡은 지 40일이 지나서야 기성자는 왕을 찾아왔다. 그는 이제 다 된 것 같다고 했다. 상대방이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위협해도 반응하지 않고 완전히 편안함과 평정심을 찾았으니 마치 나무로 만든 닭(木鷄)처럼 어떤 닭이든지 바라보기만 해도 도망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목계의 덕은 자신만이 옳다는 독선을 버려야 바른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교만하면 반응도 경솔해져 일을 그르치기 쉽고, 조급한 눈초리로 공격의 수를 읽혀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뒤집어 보면, 기세등등한 태도와 재빠른 반응과 험악한 분위기 조장은 약자의 전유물이다. 지도자의 독선은 무엇인가. 듣지 않는 것이다. 지자체 정치인들은 반드시 필요한 정책들을 펼치고도 결국 자신들이 시행한 생산기반 확충과 공익사업에 발목을 잡혀 고배를 마신 원인은 민의 반영에 필요한 절차와 홍보부족 이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투자와 복지사업이 전임 시장에게 독이 된 것은 인식이 사실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간과한 탓이다. 정책을 펼치거나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공개하고 평가받으며 중지를 모으는 절차가 생략된 것이다. 까다로운 일이다. 자치단체가 정책을 토론에 붙이고 난립하는 의견들을 수렴하는 과정은 당장 번잡스럽다. 의제를 처리하는 과정이 더디고 시간과 공간이라는 비용을 수반한다.

하지만, 의견의 난립 정도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토론의 기회를 적게 가졌다는 방증이다. 미숙은 학습을 통해서 성숙된다. 자치단체가 시민들에게 그럴 기회를 주면 참여가 촉진되고 지역사회의 구심력이 형성된다. 이는 또 민-관 협치의 기틀이 되고, 사회 대통합의 원심력이다. 민관의 소통이 원활해질 즈음엔 비용도 감소하며, 의견을 개진하는 민간 쪽이 효율성을 추구하게 된다.

민-관이 하나의 유기체로 작동하는 자치단체는 변화에 민감하고 적응이 빠르며 어떤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는다. 지자체장들이 취임 전후에 주창한 거버넌스(민관 파트너십, 대안적 통치 또는 관리 개념)는 그러한 협치를 전제하고 그 효과를 추구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창조적 행정행위를 거버넌스 체계 안에서 운용하지 않고서 자신의 족적을 남길 수 없다. 무엇보다 정치적 고립을 극복하고 대통합을 이룩하는 유일한 방법은 협치다.

본론으로 말하자면 울진군을 보자. 부산시와 울산시가 원전해체유치에 치열한 경쟁에 돌입한 상태다. 울진군의 경우 울진군민들이 지역경제가 회생되길 바라는 이 시점에서도 침묵으로만 일관하는 울진정치인들에게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그 첫걸음은 행정의 투명성 확보다. 비공개 정보를 최소화하고 정보를 전면 개방하는 것이 급선무다. 새로운 정책을 알리는 공론의 장에 시민들을 적극적으로 끌어 모으고 수많은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그래야 행정행위의 명분이 뚜렷해진다. 공조직의 수동성과 그로인한 경색은 복합적인 요소에서 비롯한다. 그 요소들은 한 결 같이 상상력을 가로막고 있다. 다른 가능성과 다른 방법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은 공조직을 시민사회와 섞이게 하여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법 테두리 안에서의 제한적인 사고에 길들여지고, 신분보장 아래서 과도하게 일할 필요가 없는 관성에 젖어버린 탓이다.

그래서 목계의 덕은,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잘 들어야 한다는 이청득심(以聽得心)과 일맥상통한다. 시민이 장인 시대다. 고로 구호가 아니라 현실이 되기를 바란다.

이우근 편집위원  lwk1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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