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재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안전처 신설을 공언했다. 충격과 비탄, 한숨을 한꺼번에 안긴 역사이래 최악의 인재(人災)가 또 다시 발생하지 않게 근본부터 뜯어고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대통령이 재난 시스템을 재정립하겠다고 한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사고의 직접 원인을 제공한 청해진해운도 문제지만 단 한명도 구해내지 못한 무능한 정부와 '관피아(관료＋마피아)'에 대한 비난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착관계에 따른 형식적 안전검사와 같이 그동안 암묵적으로 이뤄진 병폐를 과감히 도려내고 새 살이 돋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성급한 대책이다. 그동안 수없이 다양한 인재를 경험하면서도 정부는 매번 땜질식 처방을 내놓는데 그쳤다. 그 모든 땜질 처방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이번 참사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34일째인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와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던 중 희생자의 이름을 언급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민관 전문가들이 합동으로 독립적 기구를 만들어 재난 컨트롤타워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성급하게 추진하기보다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하나하나 짚어보며 해법을 마련해야 또 다른 세월호 참사를 막을 수 있다.

◇아무도 구하지 못한 '재난 컨트롤타워', 전문가 키워라

안전행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이 행정대신 국민 안전을 우선하겠다며 문패만 바꿔 2013년 3월 출범시킨 조직이다. 하지만 불과 1년여 만에 존재감을 잃어버렸다. 강병규 안행부 장관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임에도 이번 사고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 취임 14일 만에 세월호 참사를 겪었기 때문이라고 항변해보지만 거센 퇴진 압박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행시 21회인 강 장관은 대통령 비서실을 거쳐 안행부의 전신인 내무부에서 일한 정통 관료다. 2009년에는 안전을 담당하는 행안부 2차관을 거쳤다. 차관을 했다지만 행정 전문가인 탓에 현장 경험이 부족해 이번 대형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단순한 조직개편과 이름 짓기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정부3.0'이라는 말을 만들어 부처 간 칸막이를 모두 없애며 효율적이고 유능한 정부인양 행세했지만 눈앞에서 꽃다운 생명들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나랏일은 세치 혀로 하는 게 아니라 온 정신을 모아 노력하고 땀 흘려 최선을 다해야 한다.

현장 지휘를 해야 하는 이주영 해수부 장관도 현장을 모르기 때문에 지휘는커녕 실종자 가족들에게 붙들려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보고와 의전에 능한 관료로는 절대로 국가적 재난을 수습할 수 없다는 게 드러난 셈이다. 현장을 아는 전문가를 키워야 현장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정부의 재난대응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만큼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그 연장선에서 새로운 국가안전처 신설은 청와대가 아닌 총리실 산하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임시조직인 범부처사고대책본부에 총리가 참여했듯 내치에 속하는 국가적 재난을 컨트롤할 권한을 총리에게 줘야 한다.

국가안전처는 10여개에 달하는 사고대책본부를 모두 품고 소방방재청의 자연재난 기능과 안행부의 사회재난 기능을 가져와 총괄 조정하고 관리하는 컨트롤타워로 만들어야 한다. 지자체 등의 신속한 현장 출동 기능은 살리고 안전처가 관리하는 식이다.

현장을 잘 아는 민관 전문가들도 충원하거나 내부에서 키워야 한다. 법에 명시한 재난안전직에 맞는 전문가를 뽑으면 해결될 일이다. 다양하고 복잡한 재난에 모두 대처하기 힘들다면 외부 전문가를 끌어들여 재난별로 즉각 대응이 가능하게 자문기구 등으로 조직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3000여개가 넘는 재난관련 매뉴얼도 손봐야 한다. 꼼꼼하게 다시 정리해 이를 민관이 모두 체득할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특히 미국이나 일본처럼 재난관련 공무원들은 순환보직에서 제외해 오랫동안 경험을 쌓아 전문가로 활동하게 할 필요도 있다.

◇초동대처만 잘해도 인명구조율 급상승

이번 참사에서 거듭 이야기 되는 것이 골든타임, 즉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절대적 시간인 30분을 그냥 흘려보냈다는 것이다. 온 국민이 가슴을 치며 울분을 삼킨 초기에 대응만 신속하게 했다면 아이들을 모두 구할 수도 있었다. 새로운 기관을 만들고 전문가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들을 주기적으로 훈련시켜 급박한 사고현장에서 신속한 대응을 하게 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말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일본은 지난해 해난사고 구조율이 95%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은 우리의 해군 해난구조대(SSU)와 특수전대(UDT) 잠수사들 보다 실력이 뒤쳐진다. 구조율이 높은 이유는 신속한 초동대처 때문이다. 골든타임 30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사고 규모가 결정되는데 일본은 매우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뜻이다.

육해공 재난사고에 대비한 훈련도 엄격하게 진행해야 한다. 세월호의 경우 열흘마다 비상대응훈련을 하게 되어 있는데 일 년 동안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의 배에 책임의식도 없는 선장과 선원들이 만든 합작품인 것이다.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손 놓고 구경한 해경이나 정부는 더할 나위 없다.

사고를 막기 위해 매뉴얼을 꼼꼼히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위법이 만연하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안전수칙이 제대로 지키지 않을 경우 법에 따라 엄하게 다뤄야 한다. 귀찮다고, 아는 사람이라고 봐주고 암묵적 카르텔을 형성하게 되면 이번 같은 참사가 또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고대처도 중요, 예방활동은 필수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예방활동이다. 사고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부터 이를 막기 위한 예방활동을 적극 벌여야 한다. 사후 약방문 격으로 닥쳐야 움직이고 일하는 공무원의 전형을 과감히 내던지고 새롭게 변모해야 한다는 뜻이다.

국가안전처라는 컨트롤타워를 중심으로 각 지자체와 기관 모두가 그동안의 관료주의를 뒤엎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특히 현장 중심의 실효성 있는 매뉴얼을 토대로 위급상황에 맞는 행동 패턴을 몸에 익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골든타임을 허비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공직사회 개혁을 위한 관료주의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이번 사태를 경험하며 일부에서는 '천민관료주의'라는 말까지 하고 있다. 의전 하느라, 보고하느라 사고수습에 뒷전인 관료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형식적 안전관리로 문제를 일으킨 산하기관과 유착도 끊어내야 '관피아'라는 손가락질에서 벗어날 수 있다. 퇴직 공무원이 관련기관에 재취업하는 낙하산을 아예 막을 필요도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 소속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은 "안전에 관한 문제는 몇 군데만 부분적으로 손본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외국 사례를 받아들여 혁신적으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짜야 한다"며 "재난 전문가 양성과 함께 현장중심의 매뉴얼도 만들어 이런 시스템이 사람마다 자동으로 주입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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