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코리아저널/ 김민선 기자] 열심히 일하고 정당한 임금을 받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 돈을 받지 못 한하면 얼마나 억울할까? 얼마전 50대 남성이 인근 연립주택 공사장에서 자살시도를 한 사건이 있었다. 제주도 신축 호텔 공사장에서는 40대 근로자가 휘발유를 붓고 분신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밀린 임금을 받기위해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로 다행히 생명엔 지장이 없었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할 만큼 절실한 상황에 놓였었다. 손녀의 귀저기와 분유 값이 없었고, 몇 달째 밀린 임금으로 생활이 막막해져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사회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그들의 목소린 70년대 평화시장의 전태일처럼 자신을 희생하지 않곤 받아들여지지 않는 소리 없는 아우성에 불가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큰 이슈를 불러야지만 밀린 임금을 지급하거나, 다른 방법을 강구해 해결책을 내어 놓으니 벼랑 끝에 몰린 그들이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작년 국내에서 발생한 체불임금은 1조1930억 원이며 피해 근로자 수만 26만7000명에 달한다. 생계가 달린 이들에게 심각한 사회문제인 임금체불에 대해 시사코리아저널이 집중 조명했다.

▲ 임금문제는 근로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본인은 물론이고 딸린 식구의 생계를 생각한다면 더욱 절실한 문제가 된다. /뉴시스

1970년 11월 13일 서울평화시장 앞 22살 청년 전태일은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했다.

그의 죽음은 최소한의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저임금 장시간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발해 사회적으로 노동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노동자들 스스로 자신들의 환경을 개선하려 노력하는 계기가 됐으며, 전국적으로 노동운동을 일으킨 기폭제가 됐다.

평화시장 시다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최저임금도 받지 못 한 체 일했었다. 환기시설이 없어 폐병에 걸리기 일쑤였고, 갑의 횡포에 돈도 못 받고 쫓겨나기도 했다.

그런 그들을 대신해 전태일은 자신의 목숨과 노동자들의 권리를 맞바꿨다.

그의 희생에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이 바뀌게 됐고, 개정에 개정을 거치며 더욱 탄탄해졌다.

하지만 21세기 여전히 7~80년대 노동자들이 겪었던 아픔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해 미혼모 딸과 두 살배기 손녀와 어렵게 생활을 꾸려가던 50대 남성이 밀린 임금 200만원 때문에 자살을 기도한 사건이 벌어졌다.

일용직 근로자인 이 모(51)씨는 인근 연립주택 공사현장의 가림막 철근에 매달려 “손녀 기저귀 살 돈이다. 제발 밀린 임금을 지불해달라”고 외쳤었다.

공사장에서 대리석 접착일을 하는 이 씨는 지난 한 달여간 공사장에서 일하고 받기로 한 임금 200여만 원을 며칠째 받지 못했다.

다세대 주택 단칸방에서 어렵게 사는 이 씨였기에 임금체불의 고통은 더 컸다. 임금 지급을 약속한 현장소장마저 공사장에 나타나지 않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자살을 하려 했었다.

▲ 경기 안성시 건설기계연합회 소속 회원 200여명은 시가 관급공사 재하청업체의 체불임금을 해결하라며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시스

제주시 애월읍의 한 호텔 신축공사장에서는 40대 근로자가 휘발유를 끼얹고 분신을 시도했다. 그는 밀린 임금 500만원을 지급해 달라며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

레미콘 건설노동자 서 모 씨 역시 체불임금에 항의하며 시너를 몸에 뿌리고 분신자살을 시도했었다.

오죽했으면 자살을 선택하려 했을까 싶지만, 임금문제는 근로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본인은 물론이고 딸린 식구의 생계를 생각한다면 더욱 절실한 문제가 된다.

일한 대가를 제때 받지 못했을 때의 상실감과 고통은 겪어 본 사람만 알 것이다.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불안요인으로 작용하며 고용자가 어떻게든 근로자가 밥은 먹을 수 있도록 해줘야하는 기본적 도리의 문제다.

하지만 고질적 임금체불이 적지 않은 사업장에서 비일비재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07년만 해도 임금체불액이 8400억 원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작년 1조1900억을 돌파했으며, 피해근로자도 27만 명으로 상승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32.7%)과 건설업(21.8%)의 비중이 컸다.

상대적으로 저임금 근로자가 많은 소규모 제조업에서 체불은 생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또한 건설근로자의 경우 일감도 일정치 않아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수출규모가 세계 7위며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품목수도 세계 14위를 차지하는 선진국인 우리나라에서 임금체불로 생활고를 겪는 근로자들이 많다는 것만큼 안타까운 소식은 없을 것이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계약문화가 제대로 장착하지 못한 사회구조상 인정에 호소하는 일이 많이 발생한다.

체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훨씬 무디고, 정부역시 소액의 벌금형에 그치는 솜방망이 사법 처리에 의존해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납품대금 지급 지연,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 관행 등으로 중소 사업주가 어쩔 수 없이 월급을 제때 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는 시장 전체적인 회피와 무책임에 대한 암묵적인 관용이 일한 대가를 제때 받는 가장 기초적인 고용질서를 무너지게 만든 것이다.

물론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업체에 불가피한 경영사정도 있을 수 있다.

인정에 호소하며 몇 칠만 기다려 달라고 한 후, 어떻게든 대금을 지급하는 양심적인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악의적으로 재산을 숨기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 근로자들의 임금 지급을 뒷전에 두는 악덕업주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건설이나 기계부품을 다루는 공장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을 고용해 일을 부리곤, 불법체류자 신고를 하는 방법으로 임금을 때먹기도 했다.

▲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정문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제주지역지부 서귀포의료원 관계자가 체불된 임금을 달라며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런 일들이 암암리 벌어지고, 참다 못 한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며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자 정부도 사태수습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여전히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문제는 발생됐다.

이에 자살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며 자신들의 억울함에 귀 기울여 달라는 노동자들이 늘었고, 사회적인 관심도 많이 불러일으켰다.

고용노동부는 뒤늦게 임금체불의 심각성을 느끼고 10년도에 3명에 그쳤던 체불사업주 구속을 2012년 13명, 작년은 12명을 구속하는 등 관리감독에 더욱 힘을 실었다.

또한 상습 임금체불 사업주의 이름 등 개인정보를 공개하며, 신용 제재를 가하는 강경책을 썼다.

사업주의 이름, 나이, 주소, 사업장명, 소재지 등 개인정보와 3년간의 임금 체불액이 관보와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지방고용노동관서 게시판 등에 공개했다.

신용제재 대상자는 성명, 상호, 주소, 사업자등록번호, 법인등록번호와 임금 체불액이 종합신용정보집중기관(전국은행연합회)에 제공돼 7년간 신용관리 대상자로 등재됐고, 금융기관의 신용도 평가에서 영향을 받도록 조취 했다.

고용부는 명단 공개 대상자를 기준일 이전 3년간 임금체불로 2회 이상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고, 1년간 체불 총액이 3천만 원 이상인 사업주로 정했다. 신용제재 대상자도 형사처벌 기준은 같지만 기준일 이전 1년간 체불 총액이 2천만∼3천만 원인 사업주다.

임무송 고용노동부 근로개선정책관은 “명단공개와 신용제재가 임금체불에 대한 사업주의 인식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며 “정부도 임금체불 예방과 권리구제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역시 지난해 12월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를 선정하며, 임금체불 해소를 앞머리에 두었다.

대부분 전체 임금체불의 원인 중 52.0%가 일시적 경영 악화 때문인 것으로 조사된다.

그러므로 정부는 임금 지급에 어려움을 겪는 사업주에게 자금을 융자해줘 재직 근로자의 체불을 예방할 계획을 세웠다. 사업주가 지불능력이 없어 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에 대한 지원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현재는 도산 기업의 퇴직자만 지원하고 있어 효과가 제한적이지만, 체불을 예방하고 기업의 정상화도 돕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처하려는 취지에서 시행될 계획이다. 또 중소기업에서 임금을 못 받고 퇴직한 근로자에게 정부가 일정 부분까지 지급을 보장하는 제도도 마련했다.

그러나 고의·상습적 체불 사업주에게는 더 엄격한 법의 잣대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재산을 빼돌리거나, 임금 지급을 미루다가 도주하고, 심지어 상습적으로 체불한 뒤 ‘합의’라는 방법으로 처벌만 모면하고 끝내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사업주에게는 사법 처리 외에 강력한 경제적 제재를 가해 ‘버티면 그만’이란 인식을 근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 알바노조가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세계인권선언일에 알바인권선언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아울러 연간 33만 건이 넘는 체불사건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행정 서비스도 개선할 예정이다.

서양은 주급이 일반적이어서 근로자는 체불임금이 많이 쌓이기 전에 새 직장을 구하거나 법적인 조치를 취한다.

정부도 임금체불의 심각성을 알고 있기에 체불임금을 해소하기 위한 여러 대책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임금체불 수준은 대동소이하다.

체불임금에 대해 지연이자를 물리고 체불사업자의 명단을 공개하고 기업의 임금체불 사실을 신용평가자료로 제공하는 등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제도를 내놓는다. 그러나 노력에 비해 성적표가 초라하다.

무분별한 온정주의를 버리고 더욱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할 것이다.

법은 임금체불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이라는 철퇴를 마련해놓고 있다. 그러나 경영 마인드를 약화시킨다는 등의 이유로 솜방망이만 사용되고 있다.

이들에 대해서 법이 보장하는 쇠방망이가 기능을 발휘해야 된다.

온정주의는 일시적 자금난 등으로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기업에 집중돼야 하며, 이들이 체불임금을 청산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는 체계가 적절하게 갖춰져야 될 것이다.

또한 임금체불에 대한 응징이 실질적이어야 한다.

예컨대 임금체불액에 대해 배액을 배상케 하고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사업에서 배제하며, 지연이자제의 적용을 퇴직자에서 재직자에게까지 확대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이 적절하게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체불임금에 대해 직접 책임지는 등 근로자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부가 체불임금을 근로자에게 지급하고 기업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체당금제도가 도산기업에만 적용되는 등 매우 협소하게 운용되고 있다. 이 제도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발전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감독체계 강화 일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근로감독관 정원은 1,200명 정도다. 그런데 충원율은 85%에 지나지 않고 그나마 10%는 육아휴직 등으로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태를 그대로 둔 채 임금체불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무리다.

근로감독관 확보뿐 아니라 공급이 넘쳐나는 변호사와 공인노무사까지 활용해 종합적인 감독체계를 새로이 구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고용률을 70%로 높이고 정년을 연장하고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초과근로수당을 인상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일하고 임금을 떼이는 비정상적이고 몰상식한 일이 주위에 널려 있는 한 장밋빛 미래는 회색의 그림자 뒤로 숨을 뿐이다.

2014년 갑오년이 시작한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올해는 임금체벌로 힘들어하는 근로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길 바라며, 정부의 노력이 결실로 맺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민선 기자  sun258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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