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코리아저널 박완용 기자] 영화 ‘오아시스’는 뇌성마비 장애인과의 동화 같은 사랑이 일반인들의 편견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지는 모습을 그리면서 우리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났지만, 장애인의 성적 권리 보장과 지원방안에 대한 공적인 논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는 장애인의 성에 대한 많은 오해와 선입견들에 기인한다. 특히 발달장애인은 성에 무지하거나, 이성과 건강한 교제를 행할 수 없다거나, 가정을 꾸릴 수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들이 너무 강하다. 그러나 해외의 경우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성, 전반적인 삶의 질 보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발달장애인 역시 다른 비장애인과 같이 동등한 성적권리를 가진 존재이고, 사회적 삶을 살아가면서 우정, 이성교제, 사랑과 같은 것을 배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발달장애인 역시 결혼을 선택할 수 있고, 성관계를 향유하고, 가족을 구성하는 일련의 생애사적 과업을 이룰 수 있으며, 이를 위한 적절한 교육과 지원의 필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시사코리아저널이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연구보고서를 토대로 발달장애인 관점에서 바라본 이성관계의 의미와 실제를 들여다봤다.

▲ 뇌성마비 장애인과의 사랑을 그린 영화 ‘오아시스’ 스틸컷.

이는 19세기 우생학 운동(Eugenics Movement)으로 더욱 악화됐는데, 우생학은 발달장애인은 장애를 가진 자녀를 출산하고, 자녀를 제대로 양육하지 못할 것이며, 결혼과 부모가 갖는 법적 책임감을 이해하기 어렵고, 자녀와 적절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더욱 강화시켰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 1927년 대법원은 버지니아주의 불임법을 옹호하면서 17세 소녀에게 강제로 행해진 불임수술을 정당화했다. 이는 발달장애인의 강제 불임수술을 합법화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이러한 우생학에 대한 잘못된 믿음은 1960년대까지도 계속돼 당시 미국의 18개 주에서는 발달장애인의 결혼을 금지하기까지 했다.

이 시대의 발달장애인은 대형시설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 곳은 개인적 공간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곳이었으며, 그 곳에서의 성적 행동은 처벌을 받아야 하는 행위로 취급됐다. 이처럼 20세기 중반까지도 발달장애인의 성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발달장애인의 인권은 서서히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 특히 Wolfenceberger의 정상화 운동은 발달장애인의 성적 권리 보장을 위해 적절한 프로그램과 서비스가 제공돼야함을 주장했다.

또한 많은 발달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 그룹홈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그들에게 성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과 그들의 성적 발달을 지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하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발달장애인을 위한 성교육 정책은 미비했고 그들의 성적 권리에 대한 차별은 사회적으로 만연했다.

탈시설화(deinstitutionalization)와 정상화 운동은 1990년대 그 정점을 맞이했는데, 이 시기동안 장애인 차별금지 법률들이 제정되기 시작하면서 발달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함을 법적으로 보장했다. 그 결과 발달장애인은 더 이상 강제불임수술, 혐오스러운 중재(intervention), 과잉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권리를 인정받으며 삶의 다양한 영역에 의미 있게 참여하고 삶을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장애인 차별금지 법률과 정상화 운동이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 및 선택의 기회를 향상시켰다할지라도 이것이 발달장애인의 자유로운 성적 표현, 동료와의 우정, 이성관계로까지 확장됐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 든다.

Hinsburger와 Tough에 따르면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여전히 성교육에 참여할 권리 혹은 성적 표현에 참여할 기회에 대해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Oliver 외는 발달장애인과 일반인의 다양한 애정표현 모습을 담은 사진(예, 손잡기, 키스, 자위행위 등)을 일반인에게 보여주고 어느 정도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를 물었는데, 그 결과 연구 참여자들은 일반인의 결혼, 출산에 대해서는 매우 수용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발달장애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이러한 비수용적인 태도는 Lesseliersm와 Van Hove의 연구에서도 드러나는데,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그들은 가족 혹은 기관 서비스 제공자로부터 결혼에 필요한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또한 결혼은 발달장애인의 지능지수와 관련이 있었는데 지능지수 50이하인 발달장애인들 중 결혼을 했거나 동거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는 발달장애인의 정신연령을 성적 발달의 판단 기준으로 삼아 그들은 성적으로 발달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의 잘못된 편견)을 보여주는 것으로 아직도 발달장애인의 성적 권리는 완전하게 존중받고 있지 못함을 알 수 있다.

△ 성적 권리는 동등하다

발달장애인의 성적 표현에 대한 동등한 권리는 다양한 법률들에 의해서 보장되고 있다. 캐나다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장애인 평등권을 헌법에 명시한 국가로 장애인의 동등하고 완전한 시민권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1963년 미국인 권리장전을 통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은 권리가 있음을 보장했고, 1973년 재활법에서 다시 한 번 같은 내용을 강조하면서 교육, 사생활, 결혼에 대한 선택 등과 관련된 동등한 권리를 인정했다.

특히, 성 정보와 성교육 위원회는 최근 성별, 인종, 장애의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성 및 성 건강과 관련한 올바른 정보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강조했다. 이와 비슷하게 스페인의 성 권리 선언문은 성별, 연령, 인종, 사회계층,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차별받지 않아야 함을 언급하면서 성적 평등에 대한 권리를 부각시켰다. 즉, 이 선언문은 장애의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성 건강에 대한 권리, 성에 대한 객관적이고 실제적인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 성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UN,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연합 등과 같은 국제기구에서도 발달장애인의 성적 권리에 관심을 보이며 그들의 성을 경험할 수 있는 권리를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2002년 세계 성 건강 연합이 발표한 성 권리 선언문에 따르면 성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특성의 한 부분으로 성의 발달은 다른 사람과의 애정, 감정표현, 사랑과 같은 기본적 요구를 충족시킬 때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 성적 권리는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자유, 존엄, 평등을 기본으로 하는 보편적 권리이다.

최근 UN에서 발표한 장애인인권협약 제 23조 ‘가정과 가족을 위한 존중’에서는 ▲결혼적령기에 있는 모든 장애인은 배우자의 동의하에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권리 ▲자녀의 수와 터울을 자유롭고 책임 있게 선택할 권리 ▲연령에 적합한 정보 및 출산과 가족계획 교육에 대해 접근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으며, 장애인이 이러한 권리를 행사하는데 필요한 수단을 제공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장애인권리협약비준동의안의 제9항은 장애인이 성을 경험할 기회가 박탈돼서는 안 되며 장애인의 성적 관계, 결혼, 양육에 대해 존중해줘야 함을 언급했다. 장애인이 결혼 혹은 가족을 이루면서 겪는 어려움 고려하여 적절한 지원을 제공해야 하며, 가족계획에 있어서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아야 함을 명시했다. 장애여성의 결혼과 성, 자녀 양육에 대해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부정적인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한 정책을 증진하고 대중매체가 이러한 부정적인 태도를 변화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性 정보와 성교육 제한적

발달장애인의 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향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에게 제공되는 성 관련 정보와 성교육은 제한적이어서 그들은 성에 대한 지식을 음란한 서적, 동영상, 인터넷을 통해서 얻는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성지식은 부족하거나 부정확하며 왜곡돼 있기조차 하다.

이에 발달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충족시키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적합한 성교육 프로그램의 개발이 필요하다. 발달장애인의 특성 및 발달수준에 맞추어 개발된 성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그들은 일반인과 동등한 성적 권리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13년 현재까지 발표된 성교육 관련 문헌은 국내논문 총 4편, 국외논문 총 18편으로 국내에서 발표된 성교육 관련 논문은 상대적으로 너무나 소수였다. 국외에서는 1980년대 중반부터 성교육 프로그램이 꾸준히 개발되고 연구되는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초반에 2편, 2010년 이후 2편으로 성교육에 대한 연구자들의 관심이 아직 부족하며, 또한 지속적이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까지 발표된 선행연구 총 22편의 성교육 프로그램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다음과 같이 6가지의 핵심적인 주요내용으로 분류할 수 있다.

몸의 주인의식=몸의 주인의식은 자신의 몸에 대한 권리를 이해하는데 기초가 되는 것으로 성교육의 중요한 내용으로 고려되고 있다. 그러나 성교육 프로그램 중 총 4편만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라는 것을 설명해 주거나 자신과 타인의 차이점을 알고 자신의 소중함을 이해하도록 가르치고 있었다.

신체발달=대부분의 성교육 프로그램은 사춘기, 남녀 신체발달, 남녀 생식기 기능에 대한 설명을 포함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연령에 따른 남녀 신체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생식기관의 명칭과 그 기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일반 신체부위와 성적 신체부위(private body-parts) 위치와 함께 정확한 이름을 설명하는 프로그램은 총 3편에 불과해 성적 부위의 명칭에 대한 교수가 부족함을 알 수 있었다.

위생=많은 성교육 프로그램은 발달장애 학생에게 남녀 생식기관의 청결, 성병 예방, 생리 등과 같은 위생개념을 교수했으며, 자위행위, 동성연애에 대해 교수하는 프로그램도 하나 있었다. 그러나 해외연구와 달리 국내연구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교수하는 프로그램이 한 편밖에 없었다.

임신과 출산=대부분의 성교육 프로그램은 임신, 출산, 피임법에 대한 설명을 포함하고 있었다. 즉, 아이가 생기는 과정, 임신 동안 몸의 변화, 피임의 개념과 종류에 대한 설명을 제공했다. 그러나 피임방법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성학대 예방 기술=발달장애인이 성적 위험상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학대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상황을 회피하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술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이 기술들 중 성학대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가장 기초적 기술로 대부분의 성교육 프로그램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서, 거의 모든 성교육 프로그램은 다양한 위험상황의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비디오를 보여주고 안전한 상황과 위험상황을 구별할 수 있도록 교수했다. 성교육 프로그램들은 또한 성적으로 위험한 상황을 피하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러한 기술을 역할극을 통해서 연습할 수 있도록 했다.

성학대 예방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보고기술(reporting skills)로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경험을 외부로 노출시키지 않으면 성학대는 반복해서 발생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교육 프로그램은 발달장애인에게 위험상황을 반드시 보고할 필요가 있음을 가르쳐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많은 발달장애인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지님을 고려해 위험상황을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적절한 어휘를 지도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까지의 성교육 프로그램은 위험상황을 보고해야 한다는 것만을 강조할 뿐 그 상황을 묘사하는데 필요한 어휘에 대한 교육은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신고기관(믿을만한 사람)의 구체적 목록, 성학대 사실에 대한 비밀을 조건으로 위협을 받더라도 꼭 다른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을 설명한 프로그램은 매우 소수였다.

이성교제=발달장애인이 일반인과 비슷한 성적욕구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건강하고 친밀한 이성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보인다. 그러므로 성교육의 주요 영역으로 이성교제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 지금까지 성교육 프로그램은 이성교제와 관련해 데이트 기술을 교수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데이트 기술 프로그램은 데이트 신청하기, 데이트 거절 받아들이기, 데이트 장소와 시간 정하기, 다른 사람의 감정 이해하기, 자신의 감정 표현하기 등과 같은 기술들의 교수를 포함한다. 그러나 해외연구와 달리 국내연구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교수하는 프로그램이 한 편도 없었다. 더욱이 해외연구에서도 이성교제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 상황이나 이성친구의 과도한 성적표현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법 등을 설명하는 프로그램은 하나도 없었다.

최근까지 발표된 성교육 관련 국내문헌과 해외문헌을 살펴보면, 발달장애인은 성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그들의 성지식 및 성태도가 향상됐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는 발달장애인이 이성관계, 결혼, 출산 등과 관련해 현명하고 책임감 있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있어 성교육이 긍정적 효과를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발달장애인을 위한 성교육 프로그램이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제공돼야 함을 시사한다.

△ 성적 경험의 기회 제공해야

역사적으로 발달장애인은 성적으로 충만한 삶을 누리지 못했다.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는 발달장애인이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인식하지 못했고 이에 대한 관심도 없다고 믿어 왔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발달장애인을 영원한 아이로 여겨 무성적 존재(asexual beings)로 생각하거나 성적으로 문란하고 충동적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비록 정상화와 탈시설화 운동이 사회의 잘못된 편견과 무지를 변화시키는데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여전히 발달장애인을 향한 왜곡된 태도로 그들의 성적 권리는 완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발달장애인은 이성교제와 같은 성적 경험을 거의 하지 못하고 성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도 제한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발달장애인을 위해 개발된 성교육 프로그램은 소수이며, 그와 관련한 연구 또한 미비하다.

따라서 발달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그들의 성을 인정하고 성 관련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져야한다. 이와 함께 사회적 인식 변화를 위한 지속적인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 발달장애인의 성적 권리에 대한 당연성과 그들의 성적 발달을 인정하고 지원해주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발달장애인뿐 아니라 부모나 서비스 제공자의 인식 변화에도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완용 기자  pwyong1004@naver.com

<저작권자 © e시사코리아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