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코리아저널/송윤종 기자］음력 구월 밤에는 한기가 창틈을 파고든다. 들녘에는 황금물결이 넘실대며 저녁 하늘에는 후조의 무리가 날개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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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일 아침 서울대공원에는 중양절(음 9.9)을 맞아 가을꽃의 대표주자 홍국(紅菊)이 고귀한 자태를 드러냈다. | ||
어느덧 억새와 들국화가 가을산하에 피어나고 한 밤을 깨우는 귀뜨라미 소리에 잠못드니 창문을 열고 고요한 달빛을 맞은 산하를 바라본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먼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국화 옆에서”란 시다 호가 미당인 서정주 시인은 1915년 5월 18일 전라북도 고창(高敞)에서 태어났다. 고향의 서당에서 공부한 후,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6년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중퇴했다.
국어교과서에 실린 국화의 시 미당의 시는 가을시의 대표 주자였다.
암울한 일제 강점기 친일 작가로 활동했던 미당의 시는 퇴색된 채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음력 9월 9일을 중양절(重陽節)이라고 부르는데, 중양은 양이 겹쳤다는 뜻으로 9는 양수(陽數) 가운데서 극양(極陽)이므로 9월 9일을 특히 중양(重陽)이라 부른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9월 9일에 노란 국화를 따다가 찹쌀 전을 만드는데 방법은 3월 삼짇날의 진달래전과 같고 이를 화전(花煎)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 양(梁)나라 오균(吳均)의 《서경잡기(西京雜記)》에 "한 무제 때 궁녀 가패란(賈佩蘭)이 9일에 떡(餠)을 먹었다"고 하고 또 송나라 때 맹원로(孟元老)의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에 "도인(道人)이 9월 9일에 밀가루를 쪄서 전을 만들어 서로 준다."고 했는데 국화전이 여기에서 기원된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結廬在人境 (결려재인경) : 속세에 오두막을 짓고 살으니,
而無車馬喧 (이무거마훤) : 수레와 말이 지나는 시끄러운 소리 하나 없구나.
問君何能爾 (문군하능이) :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하면 그럴 수 있는가,
心遠地自偏 (심원지자편) : 마음이 세속과 멀어 외딴 곳에 사는 것 같았노라,
採菊東籬下 (채국동리하) :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
悠然見南山 (유연견남산) : 우두커니 남산을 바라본다.
山氣日夕佳 (산기일석가) : 산의 자태는 석양 빛 속에 아름다운데,
飛鳥相與還 (비조상여환) : 나는 새들도 서로 함께 둥지로 돌아가네!
此中有眞意 (차중유진의) : 이러한 모습 속에 삶의 진정한 의미가 있는데,
欲辨已忘言 (욕변이망언) : 그것을 표현하려 해도 할 말을 잊어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은둔 시인 귀거래사의 도연명(陶淵明) 지은 국화와 관련된 ‘음주(飮酒)’라는 시(時)다.
시인은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이러해서 은둔자의 생활과 은일적 삶의 속내를 동쪽 울밑의 국화로 표현하고, 우두커니 남산을 바라본다고 하는 심오한 초월의 경지를 덧보이고 있다.
속세를 떠나 살면서 그립고 아름다운 추억을 꺼내보며, 은자의 내면의 회한을 석양빛이 아름답다고 말 하며 표현하려 해도 할 말을 잊어 표현할 수 없다고 변(辨:분별) 하는 건 흐르는 강물같이 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중국에서 동리국(東籬菊)은 자경황화(紫莖黃花)를 말 한다. 또한 국화는 서향(西向)을 좋아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으며 전 세계에 200종정도가 분포되어 있고 우리나라에도 10여 종 가량이 있다.
이렇게 아주 많은 종류의 국화가 있지만 식용은 줄기가 붉고 향긋하며 맛이 단 ‘감국’(甘菊)을 쓰며, 줄기가 푸르고 굵으며 잎이 작고 쓴맛이 나는 ‘고의’가 있는데 고의는 맛이 쓸 뿐 아니라 독도 조금 들어 있어 위장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연감유함(淵鑑類函)이란 책의 풍속통(風俗通)에서 중국 허난성 (河南省) 난양(南陽) 에스엔(酈縣) 간꺼우(甘谷)에 산이 있는데 큰 국화가 있어 산에서 물이 흐를 때 그 국화의 자액을 얻는다. 골짜기 안에는 30여 집이 있는데, 우물을 파지 않고 모두 이 물을 마신다. 이 마을 사람은 오래 살면 120~130세, 중간쯤 사는 사람이 100세를 산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국화는 예로부터 불로장수를 이루어 주는 신비한 草花(풀과 꽃)라 하여 민간에서 음식에 넣어 먹기도 하고, 약으로도 써 왔다.
당(唐)나라 고종 때 이적(李適)이란 학사가 있었는데 이적이 고종과 자은사(慈恩寺)를 방문했을 때 주지가 국화주를 올리며 장수하라고 축원했다고 한다.
布濩河洛
縱橫齊秦
掇以織手
承以輕巾
揉以玉英
納以朱脣
服之者長壽
食之者通神
하수(河水)와 낙수(落水) 가에 널리 퍼져 있고,
제(齊)나라와 진(秦)나라에도 이리저리 피었네,
여린 손으로 꽃을 따서,
가벼운 수건에 받네,
깨끗한 꽃 뿌리만을 골라,
붉은 입술로 가져가네,
그 것을 마시는 자는 장수하고,
그 것을 먹는자는 신이 통하네.
국화 술을 마시는 사람은 장수하고 신(神)에 통한다고 하여, 선계(仙界)를 오르는 매개 역할을 국화가 한다고 보아 구월 구일 중양절에는 국화전, 국화주로 연회를 연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고려 가요“동동(動動)의 구월 령에 나타난 것으로 보아 그 역사가 오래 됨을 알 수 있다.
국화는 모든 초목이 시드는 늦은 가을에 무서리를 맞으며 피어나는 절개의 꽃으로 기림 받아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는 군자의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어 오상고절(傲霜孤節)로 불리고 있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동풍(東風) 다 지나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느냐,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 뿐인가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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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국화의 일종 구절초와 벌(12일 세종대 캠퍼스) | ||
조선중기의 문신 이정보(李鼎輔)의 시조다.
춘삼월 다보내고 낙엽마져지는 가을 한천(寒天)에 피어나는 국화를 유교사상을 연결시켜 칭송하는 유명한 국화 시조 다.
국화를 보는 엣 선비의 기품은 도덕을 완성한 고고한 군자로 보아 그를 본받고 자부하려는 지조를 찾을 수 있다.
면앙집의 저자 조선중기 문신 송순(宋純)은 임금으로부터 국화를 선물 받고 지은 시조 “자상특사황국옥당가(自上特賜黃菊玉堂歌)”에서
풍상(風霜)이 섞어 친 날에 갓피온 황국 화를,
금분(金盆)에 가득 담아 옥당에 보내오니,
도리(桃李)야 꽃인 양 마라 임의 뜻을 알 꽤라.
임금이 국화를 하사한 이유를 복사꽃과 배꽃에 비해 가을 국화를 택한 속내를 매서운 바람이 부는 계절에도 향기를 발하는 국화의 지조에서 찾은 듯하다.
정철(鄭澈) 송강은 함흥시월간국(咸興十月看菊)아란 시(時)를 지어 국화를 앞세워 고난을 이기려는 결의에 찬 심사를 보여 주고 있는데,
秋盡關河侯雁飛
思歸且上望鄕臺
慇懃十月咸山菊
不爲重陽爲客開
가을 다한 변방에는 기러기 울음 슬픈데
고향생각 일어나 또 망향대에 오르네,
은근한 시월에 핀 함산(咸山)의 국화는,
중양절에는 피지 않았다가 지금 나를 위해 피네,
이렇듯 국화는 은자의 고독과 그리움으로 칠한 파스텔 톤 회한의 꽃으로, 군자의 지조로 상징되었는데 역사 속에서 국화를 가까이하고 애송한 시인으로 한나라 때 장후(獎詡)라는 사람과 있었다.
“자치통감”에서 장후는 평제(平帝)때 사람으로 지금의 허베이(河北)와 산뚱성(山東省) 지역의 연주(兗州)자사를 지냈는데 청렴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을 때 왕망(王莽)이 왕위를 찬탈하자 병들었다는 핑계로 낙향했다고 한다.
낙향한 장후(獎詡)는 집안에 세 길을 만들어 놓고 송(松), 국(菊), 죽(竹)을 심어놓고 그 곳에서 노닐었다고 삼보결록(三甫決錄)은 적고 있다.
이후 장후의 정직함과 청빈한 모습을 본받고 청백리를 흠모하고 추앙하던 한사람 도연명에게 계승되고 송 나라 때의 시인 양만리(楊萬里)는 삼삼경(三三徑)이라 하며, 국화의 예찬계보를 은연중 설명하고 있다.
三經初開是獎詡
再開三經是淵明
誠齊庵有三三經
一經花開一經行
삼경을 처음 연 것은 장후이고,
두 번째 연 사람은 도연명일세.
나의 집에 삼삼경이 있으니,
한 쪽 길에 꽃이 피면 다른 길로 다니네.
국화가 주는 은일지덕(隱逸之德)의 면모는 아담하면서 옥(玉)이며, 금(金)과 같다는 고상함을 갖고 있다.
청정한 가을하늘을 닮은 소박하면서 군자의 기품을 거스르지 않는 당당함!
소슬한 바람이 불어와 더욱 선명할 국화가 오늘 보고 싶은 건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