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코리아저널 허경태 기자] 프랑스 작가 미셸 깽이 쓴 소설 ‘처절한 정원’을 두 번째 읽었다. 짧은 소설이지만 한 편의 드라마처럼 독자에게 강한 호소력을 주는 감동의 작품이었다.

이 소설의 중심은 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모리스 파퐁의 재판이다. 파퐁은 2차 대전 때 레지스탕스 대원이었다는 경력을 내세워 드골 정권하에서 예산장관까지 지낸 인물이다. 하지만 사실과는 달리 파퐁은 비시 정권 아래에서 1천 500여 명의 유태인을 아우슈비츠로 보낸 나치의 꼭두각시였다.

그의 소행은 한 역사학자의 끈질긴 추적에 의해 폭로됐으며 자신은 오직 나치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뻔뻔한 주장을 반복하던 그는 10년 징역형을 받았다. 파퐁 재판이 열리던 법정에 어릿광대 복장의 한 남자가 계속해서 입장하려다 저지당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 사진은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 스틸컷.

서술자는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창피하게 여기며 못 마땅해 했지만, 그 뒤에는 숨겨져 일화가 있다는 것을 가스똥 삼촌을 통해 알게 된다. 아버지와 삼촌은 레지스탕스 대원으로 활동하다가 열차 역 변압기 폭파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바로 그 죄 때문에 독일군에게 잡혀 흙구덩이에 갇혀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 때 아버지 앙드레와 삼촌 가스똥을 감시하던 초병이 익살과 묘기로 추위와 공포로 떨던 그들을 안심시켜 삶의 희망을 준다. 비록 독일의 초병이었지만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그는 자신의 전직이 어릿광대라고 말한다. 소설의 대반전은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에 발휘된다.

서술자의 눈에는 촌스러웠던 숙모에게 슬프면서도 엄숙한 비밀이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와 삼촌이 열차 역 변압기를 폭파할 때, 마침 철도공 한 명이 근처에서 일을 하다가 중상을 입게 된다. 살아날 가망이 전혀 없었던 철도공의 아내는 죽어가는 남편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뜻 있는 일을 하기로 결심, 남편을 폭파범으로 신고하게 된다.

죽음의 공포로 떨고 있던 주인공의 아버지와 삼촌은 뜻하지 않는 행운으로 흙구덩이에서 무죄로 풀려난다. 철도공의 아내는 죽음이 예정된 남편 대신 아버지와 삼촌을 구했던 것이다.

남편도 아내의 뜻을 좇아 자신이 범인이라고 인정하고 기꺼이 총살당한다. 철도공의 아내 니콜은 뒤에 서술자의 숙모가 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어릿광대이자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 앙드레와 전기정비공이며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삼촌 가스똥.

아버지와 삼촌이 동시에 좋아했던, 가스똥의 아내이자 서술자의 숙모인 니콜. 서술자에게 들려주는 가스똥 삼촌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이 앗아간 무고한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 무고하게 희생된 영혼을 생각하며, 평생 몸을 낮추고 고개를 숙이며 살아있음에 미안해하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어릿광대 아버지를 통해, 전쟁의 반인간성과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자를 작가는 전 인류에게 고발한다.

“이 세상에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또한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린다면 어떻게 미래에 대한 책임을 가질 수 있겠는가?”

전쟁의 처절한 상황 속에서도 아름다운 인간애는 꽃을 피운다. 힘들수록 더 깊어지는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처절한 정원’을 읽음으로써 뼈 속까지 느낄 수 있다.

미셸 깽은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던 할아버지와 2차 대전 레지스탕스 요원이자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에게 이 책을 헌정했다.

2001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세계 각국에 소개되고 있는 이 소설은 개인의 양심과 역사의 틈 사이에서 겪게 되는 개인의 고통, 운명을 알 수 없는 인간의 불완전성과 아울러 인간의 존엄성이 당당하게 살아있음을 확인시킨다.

허경태 기자  gjshstn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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