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 이우근 편집위원.

그런 회장들이 묘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하나 있다. 막강한 재력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주치의가 있을법한데, 하나같이 병자가 되는 순간이 있다. 바로 법을 어기고 재판을 받는 과정이 되면 멀쩡한 회장님들이 병자가 된다. 휠체어를 타거나 이동 침대에 누워 재판을 받으러 나오는 모습들. 멀쩡하던 사람이 재판만 받으면 병자가 되는 이런 모습이 뉴스나 신문지면을 통해 적잖게 보아왔는데, 아무래도 한보의 정태수 회장이 원조가 아닐까?

그 뒤로 회장들이 구속되어 재판을 받게 되면 하나같이 벌어지는 모습이다. 가만히 보면 속된말로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 같다. 이런 저런 병이 많아 휠체어를 타고 이동침대에 누워 나와 재판을 받는다. 여기에 필수품 하나가 있는데 마스크다. 재벌 회장이 구속 되면 또 한 목소리가 나오는 단체가 있다. 바로 전경련이다.

이때의 멘트는 늘 같은 소리다. 경제가 어려운데 회장이 구속되면 각종 사업과 해외 사업에 차질이 생기고 경제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말을 줄기차게 한다. 과연 그럴까? 회장이 구속된다고 경제가 더 어려워지고 나빠질까? 아니다. 회장은 어디까지나 회장일 뿐이다. 기업의 일은 임원이나 직원들이 하고 있다. 그 최고지도자가 없으면 그 다음 지휘자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회장의 상투적인 모습에 어떻게 보면 돈과 권력을 이용해 병자로 둔갑해 재판에서 동정을 받고 일종의 시위를 하는 것이다. 이것도 협박이라면 협박이 될 수 있다. 돈과 힘을 가진 자들의 알량한 모습들은 도덕성은 찾아 볼 수 없고 그저 뻔뻔한 모습들만 보이는 재벌 회장들의 비굴한 모습들이다. 제대로 반성하고 뉘우치는 회장은 찾아보기 힘든 게 한국의 잘못된 경제구조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대기업이 소상공인 업종에까지 사업영역을 넓히고 있다‘고 비판하고 재벌 2, 3세들이 빵, 커피, 물수건, 순대 장사 등 영세 자영업자들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며 실태조사를 지시했었다고 한다.

그 직후 삼성 재벌그룹 중 첫 번째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맏딸인 이부진씨가 사장을 맡고 있는 호텔신라 자회사 베이커리 카페 아티제 사업 철수를 발표했다. 아티제를 운영하는 회사인 보나비의 매출은 호텔신라 전체 매출(1조7000억원)의 1.4%에 불과하다.

삼성에 이어 현대자동차 그룹도 정몽구 회장의 장녀 정성이 이노션 고문과 정윤이 해비치호텔 전무가 경영하는 해비치호텔, 양재동 사옥 등에서 빵과 김밥을 파는 사내 매장 오젠철수를 각각 발표했다. 오젠은 외부에서 빵을 사다가 파는 곳이고, 골목상권 침해 혐의가 적다는 주장도 나왔으나 청와대의 심기를 파악하고 문을 닫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인회 LG그룹도 창업주의 3남 구자학씨가 운영하는 아워홈의 순대 청국장 소매 사업을 철수키로 했다. 아티제 외에도 재벌 3세가 운영하거나 지분을 가진 빵집 브랜드는 더 있다.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외손녀인 장선윤씨의 식품업체 블리스의 포숑, 롯데 신동빈 회장의 크리스피 크림도넛 GS리테일 허승조 부회장의 미스터도넛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의 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의 달로 와요, 데이앤데이, 베키아에누보,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롯데 신격호 회장 외손녀 장선윤씨의 남편 양성욱씨가 설립한 물티슈 생리대 수입판매 업체 브이앤라이프도 서민업종에 진출한 재벌가의 사업이고, 준재벌이라고 할 수 있는 애경그룹은 일본 라면업체인 잇푸도를, 농심그룹은 카레식당 브랜드 코코이찌방야, 매일유업은 인도식당 달, 등을 세워 동네 골목상권에 침투하고 있다. 재벌그룹은 아니지만 대명리조트를 갖고 있는 대명그룹은 퓨전 떡볶이점인 베거백을 운영하고 있다.

경주 최부자집은 일제 초기까지 300년 동안이나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을 이어온 집안이다. “진사 이상 벼슬하지 마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 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최부자집의 가훈은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전형이며, 요즘 얘기하는 경제 민주화의 바탕이 되는 이념이기도 하다.

약자에게 베풀고, 탐욕을 경계하고, 부의 증식을 금한 것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양극화를 축소하기 위한 것이며, 민심의 이반을 염려한 훌륭한 가르침이다. 현재 재벌들이 서민들의 어려움을 아랑곳하지 않고, 건강한 사회를 을 무시하고 대를 물려가면서 무한 확대를 꾀하는 재화의 탐욕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우근 기자  lwk1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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