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코리아저널 임춘호 기자] 거액의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가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설립한 것으로 드러나 전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재국 씨는 2004년 7월28일 버진아일랜드에 ‘블루아도니스 코퍼레이션(Blue Adonis Corporation)’이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을 알려졌다. 그는 이 회사의 단독 등기이사이자 주주로 등재됐다. 주소로 표기된 서초동 역시 그가 대표로 있는 시공사의 주소와 일치한다. 공교롭게도 이 시점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거액의 자산이 노 전 대통령의 운전기사에게서 나와 두 전직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문제가 나란히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시사코리아저널이 29만원 밖에 없다던 전 전 대통령과 그의 정치적 동반자면서 나란히 거액의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고 있는 노 전 대통령의 추악한 실체를 추적했다.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는 이달 초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확인한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명단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한국사회에서 이름만 되면 알 수 있는 유명 인사들이 대거 포진돼 있었는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이 바로 전 전 대통령의 장남인 재국 씨다.

현재 전 전 대통령은 미납 추징금 공소시효 만료(오는 10월)를 앞두고 1,672억 원의 추징금을 미납해 논란이 되고 있다. 뉴스타파는 기자회견을 통해 재국 씨가 대표적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재국 씨는 2004년 7월28일 버진아일랜드에 ‘블루아도니스 코퍼레이션(Blue Adonis Corporation)’이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 그는 영문이름인 ‘Chun Jae Kook’이란 이름으로 이 회사의 등기이사와 주주로 등재됐다. 주소로 표기된 서초동은 그가 대표로 있는 시공사의 주소와 일치한다.

그가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2004년은 그의 동생 재용 씨에 대한 검찰의 조세포탈 수사로 전두환 비자금 은닉 문제가 불거진 와중이어서 비자금이 페이퍼컴퍼니로 흘러들어 갔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재용 씨에 대한 수사에서는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가운데 73억 원이 그에게 흘러들어 간 것으로 나타나 해당 자금을 추징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뉴스타파는 재국 씨의 페이퍼컴퍼니 추적 과정에서 그가 최소한 6년 이상 이 회사를 보유했고 이와 연결된 해외 은행 계좌로 자금을 움직였다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앞서 그는 2004년 9월 22일까지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에 페이퍼컴퍼니 이름으로 계좌를 만들 계획이었으나 계좌 개설에 필요한 공증 서류가 버진아일랜드에서 싱가포르로 배송되는 과정에서 분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타파는 그가 어떤 계좌에 예치해 둔 돈을 버진아일랜드에 세운 유령회사 명의의 아랍은행 계좌로 급히 예치하려 한 것으로 추정했다.

뉴스타파는 재국 씨 외에도 이수영 OCI 회장, 최은영 한진해운홀딩스 회장,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 등 한국의 상당수 유명 인사들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하거나 이사로 등재됐다고 공개했다.

이에 국세청, 금융감독원, 관세청 등 금융당국은 역외탈세 혐의자와 조세피난처를 통해 불법으로 외환을 거래한 혐의가 있는 인사들에 대한 조사에 이미 착수했다.

검찰 역시 미납 추징금 환수에 공을 들이고 있는 만큼 전 씨의 페이퍼컴퍼니 설립과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이의 연결고리를 밝혀내려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거액 추징금 안내고 버티는 전두환 장남 재국 씨
버진아일랜드에 조세피난처 유령회사 설립 ‘들통’

천문학적인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기로 일관하는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전 재산이 29만원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그와 가족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그는 대통령은 재임 시절 축재한 비자금이 들통 나 1997년 대법원에서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받았다.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1673억 원을 미납했다.

그는 2010년 재산압류를 위한 검찰 조사를 피하기 위해 추징금 시효 만료를 코앞에 두고 300만원을 납부했다. 돈의 출처에 대해선 “강연수익”이라고 했다. 현재 그에 대한 추징시효는 2013년 10월로 연장됐다. 4000만원에 달하는 지방세도 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인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호화로운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해 8~9월 수도권에 새로 개장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뒤 동행한 사람들과 최고급 양주 파티도 즐겼다.

그의 장남 재국 씨는 시공사 등 거대 출판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최근 경기 연천군에 토지를 매입, 대규모 휴양지인 허브빌리지를 만들었다.

그의 큰손녀이자 재국 씨의 장녀는 지난해 6월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객은 600여명으로 식대만 7000만원이 넘어 최소한 1억 원의 예식비용을 들였을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 대통령의 차남인 재용 씨는 탤런트 박상아 씨와 결혼해 현재 서울 용산구의 한 빌라에 살고 있다. 이들 부부는 이 빌라단지에 세 채의 집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막내 재만 씨도 부유층이 모여 사는 한남동 고급 주택가에 빌딩을 소유하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은 2003년 추징금 관련 재판을 받을 당시에 ‘측근과 자식들이 추징금을 왜 안 내주나’라는 판사의 질문에 “그들도 겨우 생활하는 수준이라 추징금을 낼 돈이 없다”고 말했었는데,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를 비롯한 일가족들은 초호화판으로 생활해가고 있다.

들끓는 여론, 전직 대통령 추징금 환수 도마 올라
검찰, “신발 한 짝이라도” 단호한 의지… 결과는?

그런 만큼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전 전 대통령 등에 대한 추징금 환수는 검찰로서 사활을 걸지 않을 수 없는 사안이다.

채동욱 검찰총장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해 총력전을 지시했다. 채 총장은 두 전직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와 관련, “특별수사를 한다는 비상한 각오로 임해야 한다”며 “계좌추적과 압수수색 등의 방법을 총동원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달라”고 강조했다.

검찰이 두 전직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를 위해 수사에 준하는 ‘압수수색’ 등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의 단호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전국 58개 검찰청에는 검거활동과 재산추적, 강제집행 업무를 담당하는 ‘집중집행반’을 설치했으며 특별히 전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1672억 원을 집행할 전담팀을 서울중앙지검에 마련했다.

전두환추징금추적팀 유승준 대검집행과장은 “신발 한 짝이라도 찾아오는 심정으로 국내외의 재산을 환수하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드러냈다.

전 전 대통령 등 두 전직 대통령의 추징금 문제가 국민적 공분을 사면서 여론이 들끓자 그동안 뒷짐만 지던 국회도 슬그머니 팔을 걷고 나섰다. 더 이상 국민적 바람을 외면하기에는 사태의 심각성이 너무 컸다.

게다가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가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설립해 역외탈세를 했다는 의혹이 드러나면서 시쳇말로 멍석도 깔렸다.

이에 여야는 모처럼 한목소리로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은닉 의혹을 철저히 조사할 것을 촉구했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는 “정부는 해외 페이퍼컴퍼니 설립자 명단을 조속히 입수해 그 내용을 국민 앞에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며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성역 없는 조사를 통해 엄중히 의법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원내대표는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탈세를 방지하기 위해 해외금융계좌 신고를 강화하고, 신고하지 않은 경우에는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외탈세 조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여야, 전직 대통령 비자금 의혹 철저한 조사 촉구
‘전두환 추징법’ 이견… 새누리당 난색, 꽁무니 빼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도 모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전두환 추징법’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전반적인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국민들이) 지켜봐 줬으면 한다”고 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추징금 징수에 초점을 맞췄다면, 민주당은 법을 개정해서라도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은 반드시 환수해야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전두환 비자금’의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며 “전두환 추징법을 6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원내대표는 “검찰과 국세청은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추징 시효 만료 시한인 10월까지는 얼마 안 남았다”고 말했다. 진보정의당 이지안 부대변인도 “이번 임시국회에서 전두환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두환 추징법은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정식 명칭이다. 개정안은 추징이 확정된 뒤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고 3년이 지날 경우 강제 추징 절차에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도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강제노역 등에 처하도록 했다. 또 불법 취득한 재산임을 알고도 증여나 양도를 받은 사람에게 추징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미납 추징금 1672억 원에, 추징 시효가 10월 10일까지인 전 전 대통령을 겨냥해 민주당 최재성 의원이 지난달 발의했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에게까지 소급해 적용하는 것은 불소급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친인척에게 재산을 빼돌렸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도 쉽지 않다.

박주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은 전 전 대통령의 불법 재산을 추징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국회 발의 중인 ‘전두환법’ 통과를 꼽았다.

박 사무차장은 시공사의 예처럼 가족들에게 명의가 옮겨진 재산은 지금까지 추징이 어려웠는데 새로 발의된 법안들이 통과되면 추징이 가능해지는 길이 열린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는 추징을 거부하면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지만 미국 뉴욕이나 영국, 프랑스의 경우 추징을 거부하고 버티면 구금을 시킬 수 있는 제도를 이미 두고 있다”며 “추징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기면 전 전 대통령이 버티기로 일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의 해외 페이퍼컴퍼니가 드러났지만, 역외탈세나 은닉재산을 찾아내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박 사무차장은 “현재 증거로는 재국 씨가 역외탈세를 했다거나 재산을 은닉했다고 하는 부분에 대해선 충분한 자료가 드러나고 있지는 않다”며 “실제로 전 전 대통령의 돈이 페이퍼컴퍼니로 흘러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어떻게 자금이 조성돼서 어떤 경로로 흘러갔는지가 파악이 돼야 된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 꽤 지난 일이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송금이 됐으면 밝히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먼저 국내 자금 흐름 추적에 주력해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박 사무차장은 “조세회피처의 특징이 금융에 대한 비밀을 보장해준다는 것”이라며 “국내에서 분명히 자금이 조성되고 흘러갔을 것이다. 국내에서 자금흐름은 검찰이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그 부분을 먼저 수사해서 돈 흐름이 파악된다면 다른 방법을 추가적으로 동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태우 비자금(?) 거액자산, 운전기사 명의서 나와
“농협 등 9개 계좌에 모두 30억여 원 갖고 있었다”

이제 전직 두 대통령에 대한 추징금 환수는 시대적 대세가 됐다. 여기다 국회가 거액의 추징금을 납부하지 않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상대로 이른바 ‘전두환 추징금 환수법’ 처리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공교롭게도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것으로 의심되는 수십억 원의 자산이 포착됐다.

법조계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 측 운전기사인 정 모 씨가 농협과 국민은행 등 5개 금융기관, 9개 계좌에 모두 30억여 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국세청이 지난해 노 전 대통령의 동생 재우 씨 회사인 경기도 용인의 오로라씨에스에 대한 세무조사에서 드러났다.

정 씨는 지난 1998년부터 2011년 7월까지 오로라씨에스 소속 직원으로 돼 있었으나 실제로 서울 연희동 노 전 대통령 집에서 운전기사로 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씨의 당시 연봉은 3900만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의 차명통장에 있던 거액은 노 전 대통령 측이 묻어둔 비자금일 가능성이 크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자금 출처에 대해 모르는 일이라며 오로라씨에스의 주장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노 전 대통령 아들 재현 씨와 지난달 이혼이 확정된 전처 신 모 씨 가족 등 4명은 공동명의로 통상 20억∼30억 원 선에 거래되는 강원도 평창군 용평리조트의 포레스트 레지던시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노 전 대통령은 또 아들 재현 씨 명의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옆에 별채와 대구시 동구 지묘동 팔공보성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1997년 대법원에서 추징금 2천 600여억 원을 확정 받아 이 가운데 230여억 원을 미납한 상태다.

전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두 전직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문제가 과연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모든 시선이 검찰과 국회로 쏠리고 있다.

임춘호 기자  8035ok@koreaj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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