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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이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공천제 폐지를 추진키로 방침을 정한 가운데, 기득권을 쥔 일부 정치권의 반발 움직임도 거세다.
특히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회가 지방선거에서 이들에 대한 공천제 폐지를 심의 의결하자 당 일각에서는 “자살행위”라는 용어까지 섞어가며 반대하고 나섰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공천 폐지는 지난해 대선 당시 여야가 나란히 공약으로 내건 사항이지만, 여당 못지않게 야당에서도 내부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정당 공천은 지방자치제 도입 취지를 훼손하고, 기초자치가 소속 정당과 지역출신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논리에 예속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부작용이 사라질지 주목된다.
공천제 폐해 심각, 대선공약으로
기초의회는 1991년부터, 기초자치단체는 1995년부터 민선제로 운영되고 있다. 각 후보들이 소속 정당에서 공천을 받은 뒤 주민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정당 공천제가 시행된 뒤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휘둘리는 폐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기초 지방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들 정파에 따라 사분오열되기 일쑤였다.
실제로 상당수 시장?군수?구청장들과 지방의원들이 지역출신 국회의원과 중앙당 및 시?도위원장들의 정치논리에 휘둘리면서 ‘패거리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이 같은 폐해가 심각하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지면서 지난 대통령선거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선거공약으로 공천제 폐지를 내놨고,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공약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최근 공천제 폐지를 정치적 이슈로 급부상시킨 사람은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유정복 행정안전부 장관이다.
‘박심’들의 폐지발언 잇따라
유 장관은 3월 13일 취임식이 끝난 뒤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 “정당 공천제에 기초한 현 지방자치제도에는 부작용이 많다”면서 “내년 6월 지방선거 전까지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체적인 추진 방향에 대해서는 “국가 효율성을 위해 폐지를 위한 충분한 논거를 정치권에 제시해 지방자치법 등 관련 법률 개정에 착수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개인적으로는 정당 공천제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지만, 정치권 일부에서는 생각이 다른 것 같다”면서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조정하기도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 장관의 공천제 폐지 발언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기초단체장 모임인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즉각 성명서를 내는 등 크게 환영하고 나섰다.
협의회는 14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유정복 행정안전부 장관이 취임 후 지방자치사(史)에 길이 남을 정치적 소신을 언급한데 대해 전국의 시장?군수?구청장들과 함께 지지의사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성명은 이어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일각에서는 정당공천으로 인한 주민의사의 왜곡, 지방의 중앙정치예속, 각종 부작용과 잡음 등 역기능이 심각하다”면서 “여?야를 떠나 국회에서도 진정한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정당공천제 폐지 공약을 조기에 입법 처리해 달라”고 촉구했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그 동안 공청회나 세미나 개최, 1천만 명 서명운동, 사회원로 시국선언 등을 통해 정당공천 폐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확산시켜 왔다.
최고위원들의 거센 ‘반란’
새누리당의 기초단체장 및 기초의원 공천제 폐지 방침은 지난 19일 열린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에서 방점을 찍었다. 위원장을 맡고 있는 서병수 사무총장은 이날 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에게 “대선 때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회 의원에 대한 공천은 안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서 위원장의 이 같은 언급은 공직자추천위가 4·24 재?보궐 선거에 한해 의결한 내용이지만, “정치쇄신과 국민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내린 결정”이라는 설명은 박 대통령의 선거공약을 지금부터 지키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인 20일 열린 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는 ‘충돌’이 벌어졌다. 4.24 재보선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회 의원에 대해 공천을 않기로 한 방침을 재확인하기도 전에 내부 반발에 부딪힌 것이다.
먼저 황우여 대표는 이 자리에서 “대선을 앞두고 기득권 내려놓기와 쇄신 차원에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공천을 안 하겠다고 약속했다”면서 “대선 때 마련한 정치쇄신안을 충실히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당내 대표적 소장파인 남경필 의원 역시 “상대방이 공천할 경우 우리에게 쉽지 않은 점이 있다”면서도 “새누리당이 먼저 기득권을 포기할 때 국민이 진정성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힘을 보탰다.
“공천 않으면 백전백패” 목소리도
그러나 정우택 최고위원은 “선거 때 당연히 후보자를 공천해 국민들로부터 표를 얻어야 하는데 공천하지 않는 것은 정당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기준 최고위원 역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정당공천 배제가 개혁인지 개악인지 검증되지 않았다”면서 “많은 의원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의원총회를 열어 중지를 모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특히 심재철 최고위원은 “우리만 공천을 안 한다면 기호 1번은 공란으로 남고, 우리 후보는 4~6번으로 밀려나기 때문에 공천을 하지 않는 것은 자살행위”라며 강력 반대하고 나섰다.
심 최고위원은 이어 “사활이 걸린 수도권의 경우 공천을 않으면 백전백패”라고 강조하고 “입후보 예정자도 강력 반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이 있은 며칠 뒤 그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스마트폰 검색을 통해 여성 나체사진을 감상하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잠적한 뒤 국회 윤리특위 위원직 사퇴를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천위는 ‘강행’ 재확인…시민단체도 압박
새누리당 일부 최고위원들의 이 같은 반발과는 관계없이 26일 열린 제5차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 공천제 폐지 입장을 재확인했다.
공천위 대변인인 김도읍 의원은 회의가 끝난 뒤 브리핑을 통해 “아직 최고위원회의 의결이 없는 상태지만, 공심위의 (무공천)의결 내용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그러면서 “만약 최고위원회가 (추천위의)무공천 의결에 대한 재심의를 결정한다면 재심 절차를 거칠 것”이라고도 했다.
이는 최고위원회 결정을 일단 존중한다면서도, 대통령 선거공약을 최고위가 앞장서서 안 지키는 결정을 내리지는 못할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된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도 정당공천 폐지를 강력 촉구하고 나섰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26일 전국 30여개 지역경실련과 공동성명을 내고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비롯한 6개항의 지방분권 실현 과제를 발표했다.
경실련은 앞서 ‘경실련전국분권운동본부’를 발족하고 새 정부의 지방분권적 정부운영시스템 구축을 촉구한 바 있으며, 필요할 경우 전국 단위의 지방분권 운동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야당은 ‘현행대로’…포괄적인 법 개정 진행돼야
한편 야당은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 공천제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기류가 강하다.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은 일단 지난 대선에서 공천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긴 했지만, 법 개정 전에는 후보 공천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용진 대변인은 “법 개정이 이뤄지기 전에는 법의 취지에 따라 기초의원까지 공천하는 것은 정당의 의무이고 당연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그러면서 “현재 4·24 재?보궐선거 해당지역의 광역단위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한 상태이고, 후보공천을 위한 논의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새누리당의 무공천 방침과 관련해서는 “무책임한 논란을 일삼지 말고 관련법 개정에 속히 나서야 한다”며 “정당공천제 폐지뿐만 아니라 투표시간 연장 등 다양한 정치관계법 개정 사안이 있는 만큼 국회논의가 포괄적으로 진행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이처럼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전체적으로는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정당공천 폐지를 위한 관련법 개정 필요성에 어느 정도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공천권을 틀어쥐고 있는 정치권의 기득권 포기가 쉽게 이뤄질 가능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무공천시 현직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들의 ‘프리미엄’ 문제 등 후속조치가 어떻게 이러질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박유제 기자
박유제 기자 forall@koreaj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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