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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미술 선구자, 향당(香塘) 백윤문 화백 그림세계이당(以堂) 김은호 수제자 산수와 인물화 능해.
  • 오경화 기자
  • 승인 2013.03.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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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당(香塘) 백윤문 화백(1906~1979)은 20세기 초 한국 근대미술의 선구자였다. 그는 이당(以堂) 김은호의 수제자로 산수와 인물화에 능했다. 20대에 벌써 천재 화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일제시대 국전인 선전(鮮展) 특선과 입선 수상을 비롯해 후소회전과 서화협회전 등 활발한 전시활동을 했다. 또 운보(雲甫) 김기창 등 후학 지도에도 힘을 쏟았다.

호는 향당(香塘). 할아버지의 둘째 형 백희배가 산수화가였으며 할아버지의 8촌 백은배는 조선 말기 도화서 화원일 만큼 그림에 재능이 있는 집안이다. 20세에 김은호의 문하생이 되었고 서화협회전람회에도 참가하였으며 1936년부터 김기창, 장우성, 조중현, 이유태, 한유동 등과 함께 김은호 문하생 '낙청헌' 출신 작가들의 모임인 '후소회' 창립회원으로 활동했다.

1927년 제6회 조선미술전람회에 〈봄날〉이 처음으로 입선한 후, 1931년 제10회까지 〈투계〉·〈춘사〉·〈춘란〉·〈정〉·〈난일〉등으로 연속해서 입선했다. 1932년 제11회에 〈촉규〉, 제13회 〈어사휘탁〉, 제15회 〈위진팔황〉으로 특선하는 등 인물·꽃·새 등을 소재로 한 채색화를 출품해 8회 입선과 4회 특선이라는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1942년 기억상실증으로 작업을 중단했다가 1977년 35년 만에 기억을 되찾아 다시 창작에 몰두해 1978년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작품에 〈건곤일척〉·〈가두소견〉등이 있다.

운보 김기창의 스승인 이당 김은호 화백의 수제자인 백윤문 의 대표작품

조선인과 일본인이 장기를 두다 다투는 장면을 그린 `분노`는 1935년 선전 특선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반일 감정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입선으로 강등된 작품이다.

장기판에 놓인 돗자리를 차지한 일본인이 장기판을 뒤엎고 한국인에게 횡포를 부리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고 한다

반일감정을 부추키는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일제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받고후유증으로 정신질환을 얻어 36년이란 긴 세월을 예술과 담을 쌓고 지냈다 기적적으로 회복하여 복귀 1978 년 성공적으로 재기전을 열고 이듬해 워싱턴에서 개인전을 가진후 미국 소미소니언박물관 한국실에 작품의 수익금을 기부하고 곧 타계하였다

오경화 기자  op0495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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