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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료중인 이도형 치과 원장. 인터뷰 도중 치과진료를 위해 찾아 온 김만식 몽고식품 회장이 치료를 받고 있다. | ||
여의치 않은 집안사정으로 중학교를 채 졸업도 하기도 전에 치과의원 ‘조수’로 들어가 일을 시작하다가 ‘늦깎이’ 치과의사가 된 화제의 인물이 있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이도형(61) 치과 원장이다.
중학교 졸업식 포기, 돈 벌러 ‘마산행’
1952년 경남 합천군 초계면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에 다닐 무렵, 어머니의 오랜 지병으로 가정형편이 매우 어려웠다. 힘들게 중학교는 다니고 있었지만, 고등학교 진학은 엄두도 내지 못할 상황이었다.
남들은 소도 팔고 논도 팔아 아들을 고등학교에 진학시켰지만, 교복조차 살 수 없는 형편에 고교에 진학하겠다는 말은 아예 꺼내지도 못하고 포기해야 했다.
당시에는 고교진학을 못하는 중3에게는 어떻게든 수학여행은 보내주는 것이 유일한 ‘위로’였지만, 그는 수학여행은커녕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도 오로지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졸업을 얼마 앞두고 마산행 버스에 몸을 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가 1967년, 당시 그의 나이 15세였다.
학교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어렵사리 일자리를 찾은 곳이 바로 치과의원. 당시 마산에서는 3~4개 밖에 없던 치과의원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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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과기공소 '조수'로 일하던 10대 이도형. | ||
“대합실에서 새우잠 자며 주경야독”
“조수로 처음 일을 시작한 곳이 제일치과 기공실이었습니다. 힘든 일을 마치고도 몸을 눕힐만한 곳조차 없었어요. 병원 대합실 바닥에서 연탄을 피워놓고 웅크린 채 잠을 청해야 할 정도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반면 자신과 같은 또래인 치과 원장의 아들은 유복한 환경으로 대구의 한 유명한 고등학교로 ‘유학’까지 갔다. 주말이면 교복을 입고 나타난 그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주경야독’이다. 치과 기공실에서 일을 하며 받은 월급으로 마산공고 야간부 화학과를 다녔고, 3년 뒤 무사히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고교를 다니던 3년간은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었다. “성공하지 않으면 고향에 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든 공부도 하고 치과 분야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 밖에 없었어요.”
치과기공사 면허 취득, 40세에 ‘유학’
고교를 졸업하고 성년이 되자 군에 입대해야 했던 그는 치과기공실에서 배운 치의학과 치과기공 경험을 인정받아 해군교육단 의무실에서 군 복무를 마쳤다. 그리고 독학 끝에 1977년 비로소 치과기공사 면허를 취득했다. 치과기공실에서 근무한 지 꼭 10년 만의 일이었다.
면허증을 움켜쥔 그는 곧바로 부산으로 향했다. 거기서 세 곳의 치과를 거치며 치과기공실장으로 근무하다 서른 살 되던 해인 1982년부터 부산광역시 대한치과기공소 소장으로 근무했다. 그런데 여기서 그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어느 날 치과기공 문제로 오전 10시에 의사를 만나기로 돼 있었어요. 당시 기공소 소장의 신분이었지만, 의사가 약속시간을 두 시간이나 지나도록 만나주지 않았어요. 그 때 생각했습니다. 의사라는 직업이 그렇게 대단한 신분이라면 나도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결국 한참 일할 나이인 40세가 되던 1992년 4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가족까지 남겨둔 채 홀몸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필리핀 라쉬움시의 노스웨스턴(Lyceum Northwestern) 치과대학에 입학한 그는 5년 교육과정을 모두 마치고 졸업했다. 그의 유학생활은 어땠을까?
“부산에서 기공소장으로 있기 전부터 틈틈이 유도를 배웠어요. 그 결과 1987년에는 유도공인 4단을 땄습니다. 필리핀에서 공부를 하면서 대학의 유도 교관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1997년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면허시험을 치르기 위해 또 다시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 3년 만인 2001년 9월 꿈에 그리던 치과의사 면허시험에 합격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모를 만큼 공부에 열중했다고 한다.
‘늦깎이’ 의사지만 “빈틈없는 사람”
의 새로운 인생, 치과에 ‘입문’한 지 35년 만에 의사 면허를 취득한 그는 2001년 10월 현재의 이도형 치과를 개원했다. 50세의 ‘늦깎이’ 의사였지만 그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현재 위치에서 12년째 치과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도형 원장에게도 숨은 ‘멘토’가 있었다. 몽고식품 김만식 회장이다.
이 원장이 치과기공실 ‘조수’로 일할 때 치아 관리를 위해 가끔 들렀던 김만식 회장은 어린 나이에 마산에서 주경야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직간접적으로 후원자 아닌 후원자가 되기도 했다.
“치과 기공실에서 일한 지 2년쯤 되던 해인 1968년 처음 만났습니다. 만난 지 33년 뒤에 치과의사가 되어 마산에서 개원한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는데 너무 반가워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2년간 치과질환이 생기면 꼭 저를 찾아주십니다.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분입니다.”
인터뷰 도중 때마침 진료를 받기 위해 찾아온 김 회장에게 ‘인간 이도형’을 물었더니 명쾌하게 답변을 내려줬다. “성격이 깐깐하긴 하지만, 의사로서나 인간으로서나 빈틈이 없는 사람이다.”
박유제 기자
박유제 기자 forall@koreaj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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