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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중앙교회, 특별한 '신앙부흥사경회'19~21일 조용기, 김장환. 김삼환 목사 인도
  • 이준형 기자
  • 승인 2012.11.16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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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코리아저널/ 이준형 기자]포항중앙교회(담임목사 서임중)는 19일부터 21일까지 교회 창립 65주년 기념 신앙부흥사경회를 연다.

신앙부흥사경회는 매일 오후 7시30분 교회 본당에서 시작되며, 조용기(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 김장환(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목사, 김삼환(명성교회) 목사 등 3명의 목회자가 강사로 나서 인도한다.
이들 강사는 한국교회 대표적 목회자들로 한국교계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 조용기 원로목사,
조용기 원로목사는 17세 때 폐결핵으로 인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던 중 병문안 온 누나의 친구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 후 미국인 켄 타이즈 선교사가 인도하는 부산의 거리 천막 부흥성회에서 은혜를 받고 타이즈 선교사의 통역을 도우며 진리를 깨달아 갔다.
그는 금식기도 중 찬란한 광채 속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환상 중에 만나고 성령 충만을 체험했다.

1958년 5월 서울서 교회를 개척한 이래 1973년 9월 1만명이 동시에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를 건축했다. 이로부터 20년 만에 ‘교인 70만명 시대’를 열었다. 지금은 75만명의 교인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단연 세계 최대 교회로 불리고 있다.

조 원로목사는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부흥회를 인도하고 있으며, 그가 인도하는 집회에서 암환자, 벙어리 등 수 많은 환자들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그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등 한국어 저서 325권과 영문저서 49권, 번역서 247권을 펴냈다. 또 ‘얼마나 아프셨나요’ ‘내 평생 살아온 길’ 등 복음성가 및 합창곡 30여곡을 작사했다.
그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장, 국민일보 회장 등을 지냈고 보건복지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미국 연방의회로부터 ‘자랑스런 한국인’ 인증서를 받았다.

조 원로목사 초청 포항 집회는 지난 91년 포항실내체육관서 열린 ‘지역복음화’ 집회 이후 21년 만이다.

▲ 김장환 목사,
김장환 원로목사는 한국전쟁 때 한 미군의 눈에 띄어 1951년 11월 17세의 나이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대학과 대학원까지 있는 밥 존스 재단의 중학교에서 학업을 이어갔고, 이 학교 룸메이트 형으로부터 예수님을 영접했다.

1959년 2월 단테침례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그 해 11월 대학원에서 신학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으로 돌아와 수원중앙침례교회를 섬기고 있다.
당시 12명의 교인에 불과한 수원중앙침례교회는 현재 1만5천명의 대형교회로 성장했다.

수원 YFC(Youth For Christ)를 창설하고 한국 YFC 총재를 지내면서 인재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미국을 돌며 대대적인 홍보 집회를 해서 모금한 20만 달러로 부지를 매입, 기독회관을 건축하고 어려운 학생들을 불러 육영사업을 시작했다.

1973년 110만 인파가 몰린 빌리 그레이엄의 서울 전도집회 땐 통역을 맡아 지구촌 기독교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후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호주, 러시아, 일본, 타이완,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홍콩, 필리핀 등 수많은 나라에서 집회 초청이 이어졌다.
1991년 8월 국제 10대선교회(YFC) 주최로 모스크바에서 열린 청소년 전도집회에 이어, 1995년 로스엔젤레스 대회, 96년 아틀란타 대회, 97년 하와이와 시카고 대회의 주 강사로 초청받아 수많은 성도들 앞에 약속의 말씀을 전하기도 했다.

침례교 역사 이래 미국이나 유럽 목사들이 독점해온 세계 침례교연맹(BWA)의 총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극동방송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 원로목사는 미국 교민 제정 제1회 100주년 기념대상과 캄보디아 외교관계 증진부문 최고훈장을 받았다.

▲ 김삼환목사,
김삼환 목사는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의 등에 업혀 교회를 다녔다.
그는 16세 때 장사를 한다고 돈을 훔쳐 가출해 길가에서 물건을 팔았다.
그때 찾아 온 어머니는 그의 손을 이끌었다. “아들을 포기하지 않은 어머니의 끊임없는 기도와 사랑이 오늘날 저를 있게 했다”고 김 목사는 고백하고 있다.

그는 1980년 7월 서울 강동구 명일동 상가건물 2층에서 명성교회의 문을 열었다.
교회부흥이 더디게만 느껴지던 어느 날 내린 비가 갈라진 천정 틈새로 성전을 적셨다.
그는 성전을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에 밤새 빗물을 퍼냈고, 나중에는 지쳐 성전바닥에 엎드려 온몸으로 비를 받아내야 했다.
이후 부흥의 문이 열렸다. 교회개척 3년 만엔 첫 번째 성전을 건축했다. 2010년에는 ‘교인 8만명 시대’를 열었다.

그가 인도하는 주일예배와 새벽기도회, 삼일기도회와 철야기도회 등은 기도의 불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
매일 새벽 6천여 성도들이(토요일은 ‘새벽을 깨우는 가정’ 8천여 성도) 성전에 나와 교회와 가정, 나라와 민족을 위해 부르짖고 있다.
3월과 9월 매년 두 차례 열리는 특별새벽집회는 명성교회 뿐만 아니라 서울, 한국교회를 깨우고 있다. 이 기간은 하루 5만명까지 참석하고 있다.

그는 예장통합 총회장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회장, 국내최초 민영교정시설 ‘소망교도소’ 이사장, 한국교회봉사단 대표를 지냈다.
김 목사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목련장과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국가재건공로 최고 훈장, 몽골정부로부터 건국 800주년 기념 훈장을 받았다.

서임중 목사는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역사가 일어나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일어난다”며 “이번 부흥성회에 많은 시민들이 참석해 하나님을 깊이 만나 포항과 나아가 열방복음화에 앞장 서 달라”고 말했다.


이준형 기자  iptv82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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