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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가수 조방원, 강구는 "나의 운명"영덕군, 한국최초 “꿈의 궁전”대중 가요 박물관 지을 것.
  • 이준형 기자
  • 승인 2012.10.06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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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코리아저널/ 이준형기자]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을 매입하지 않았으면 아마 지금쯤 미국에서 사업을 했을 겁니다. 이곳 강구 삼사 해상공원에서 건어물 가게 하면서 날마다 공연하는 것은 ‘나의 운명’입니다”

“미국에서 아들 ‘성완’이를 낳으려고 한국에 온 것이 19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임신하면 시민권 받으러 미국 가는데, 저희 부부는 반대로 미국에서 임신해 처가 동네에까지 왔습니다.”

지난달 27일 오전, 경북 영덕군 강구면 삼사해상공원 정상에서 영덕 특산물‘건어물 가게’를 열고 비가 오나 눈이오나 ‘무료 공연’을 펼치는 "파도의 환상 주인공" 조 방원(56)씨를 만났다.

▲ 경북 영덕 월드스타 조방원 가수,하루 5회 무료공연 중이다.
그는 아침 일찍부터 포항과 영덕 경계지점에서 돌 횟집을 하는 ‘포항목양테마교회 김 상태 장로’를 만나고 오는 길이라 했다. 김 장로와는 20년 지기 서로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 사이다.

▲ 조방원 그가 가족들과 거주하는 '꿈의궁전' 해피데이 월드다.
조 씨의 첫 인상은 마치 산에서 수도하다 내려온 백발 산신령 같았다. 흰 수염에 검은 선글라스. 꽃무늬 셔츠. 빨간 장갑. 화려한 모자까지 쓰고 있으니 보통 사람이 아닌 기인이다.

게다가 머리까지 박박 밀어 국민 가수 태진아(조방헌)와는 영 딴판이다.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작은 눈매와 충청도 말투, 활짝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작은 태진아’다.

▲ 국민 가수 태진아와는 친 형제다.
▲ 가수 조방원은 자신을 천둥번개라 했다.바다가 보이는 무대에서 꿈을 이루고 있다.
그는 기자에게 ‘천둥 번개’라고 했다. 천둥 번개소리는 하늘이 내려준 ‘오케스트라 음악’이라고 했다. 이번 태풍 ‘볼라 벤’과 ‘산바’가 동해안을 휘몰아칠 때 ‘삼사해상공원 정상’에서 대 자연을 무대 삼아 태풍을 맞으며 온몸으로 “파도의 환상”을 불렀다.

조 씨는 경북 영덕,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강구 삼사해상유원지 정상에 자신만의 특설 무대에서 14년째 봄, 여름, 가을, 겨울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신명나는 ‘트롯트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 가수 조방원 인간극장 5부작 방영,
해상공원 주차장에 들어서면 경북 대종 옆 언덕 전망대에 ‘조 방원 인간극장 공연 중’이라는 커다란 대형 간판이 보인다.

‘천둥번개 조방원의 신바람 인간극장 쑈’를 보기위해 전국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동남아등 해외 동포들까지 공연장을 찾는다.

‘사랑은 아무나하나’ ‘거울도 안 보는 여자’ ‘미안 미안해’ ‘잘 살거야’ 등 대부분 태진아의 히트곡이다. 관광객들은 그가 부르는 노래의 음정과 박자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며 삶에 지친 스트레스를 날려 보낸다.

▲ 한여름, 혹서기에 하루 200여 곡의 노래를 소화하면서도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다.
조 씨가 지난 14년 전, 강구 해상공원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한곡 두곡 노래를 부른 것이 이제는 ‘하루 5회 공연’으로 늘어나 어디에서 오는 지 관광차 수 십대가 몰려온다.

그는 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북과 꽹과리, 장구 등이 어우러져 이내 한마음이 된다. 서로가 뒤엉켜 누가 조방원인지? 누가 관광객인지? 모를 정도로 신명나는 한마당 놀이가 펼쳐진다.

또 어르신들은 "그를 보면 꼭 태진아를 보는 것 같다"며 그의 공연에 열광한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조 씨는 어르신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시간을 행복하단다.

태진아는 동생들의 학업 뒷바라지는 물론, 가난한 집안을 일으켜 세웠던 조 씨에게 영웅 같은 존재다. 한여름, 혹서기에 하루 200여 곡의 노래를 소화하면서도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다.

관광객들은 바다가 탁 트인 해상공원에서 준비해온 음식을 먹고 한바탕 즐겁고 신나게 놀고 조 씨가 운영하는 ‘건어물가게’에서 덤으로 영덕 특산물을 구입한다.

게다가 비가 올 때나 추운 겨울이면 그의 집 1층에 있는 해피데이 월드를 통째로 빌려준다. 자릿세는 물론 없다.

그는 상품 판매가 목적 아니라고 했다. 이곳에 오는 분들은 동창회나 각종 친목회 관광객도 있지만, 주로 전국의 마을회관에서 차를 맞춰 오는 효도관광객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등 연로한 분들이 즐겁게 놀면서 농사일에 지친 심신을 달래다 돌아가는 모습이 감사하다고 했다.

▲ 영덕군, 한국최초 “꿈의 궁전”대중 가요 박물관 지을 것.
그는 1979년 12월, 23살 나이에 ‘파도의 환상’ ‘보내는 마음’ 등의 곡으로 가수에 데뷔했다. 68년 태진아가 설립한 진아기획 소속 제1호 가수다. 중앙대학교 연극 영화과2년을 중퇴하고 가수데뷔 후 얼마 되지 않아 ‘육군 공수 특전사’에 입대한다.

82년 전역 후 가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예전(현 서울예술대3년)을 편입하고 부산, 광주에서부터 서울까지 전국공연을 꿈꾸었다.

그러나 태진아는 동생이 공부를 계속하길 바랐다. 당시 태진아는 미국에서 사업을 했다. 그는 형님의 초청으로 미국에 건너가 뉴욕 대 영화학과에 편입했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보다 사업가로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한다. 결국 학업을 포기하고 뉴욕 맨해튼에서 형이 경영하는 꽃가게와 옷가게에서 열심히 일을 배웠다.

태진아는 당시 미국에서 ‘성공한 한인’으로 손꼽히고 있었다.

▲ 그는 1957년 충청도 보은군 탄부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사업가로 독립할 목적으로 뉴욕 할렘에서 옷가게 점원생활을 시작 했다, 그의 독특한 아이디어 하나로 돈을 엄청 벌었다. 돈을 벌자 형이 만든 진아 기획을 재 설립했다, 그러다 우연히 하와이에서 전시기획자로 일 하던 지금의 아내(장영숙씨·55)를 만난다.

아내는 영덕출신으로 홍익대 미대2년을 중퇴하고 미국에서 무대 디자인 일을 했다. 서로가 외로운 이국땅에서 같은 피부색의 동양 사람을 만나니 반가운 나머지 교제를 했다. 영어로 말을 했기에 서로 일본사람인 줄 알았다고 했다.

1년간의 교제 끝에 서른둘 나이에 결혼 했다. 아이를 가졌는데 미국보다 한국에서 해산하고 싶다고 아내가 원하기에 같이 경북 강구에 까지 왔다고 했다.

강구에서 아들 ‘성완’이를 낳고 시작한 사업이 24시간 편의점을 했다. 동해안 7번 국도라 오고가는 차량 손님이 대부분 이었다. 당시 IMF시기라 사업을 하다 부도가 난 사람들이 주로 편의점을 찾았다. 소주라도 먹고 바다에 빠져 죽으려고 했다.

조 씨는 늦은 밤 편의점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죽을 만큼 고생한 자신의 과거사를 들려주면서 이들이 다시 새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노신사 한분이 강구해상 공원 정상에서 소주를 마시기에 혹시나 이분도 자살 하려는가보다 하며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분은 오늘 이 땅과 이별을 하기에 섭섭해 소주한잔 한다고 했다.

그는 당장 엎드려 큰절을 하고 이 땅 제게 파십시오, 국민가수 태진아 친동생입니다. 이 땅을 팔지 않으면 우리 아들 첫돌 지나면 제 가족 모두 미국으로 갑니다. 그러자 노신사는 흔쾌히 땅을 넘기어 주었다.

▲ 강구는 나의 운명 “파도의 환상 주인공. 가수 조 방원”

그래서 강구 삼사 해상공원에서 무료 공연과 함께‘건어물 사업’이 시작됐다.

그는 1957년 충청도 보은군 탄부면에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는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상동광업소 사장 이었다. 어머니가 중병에 걸려 용하다는 점쟁이가 병을 고치려고 하면 고향으로 내려가라고 했다.

점쟁이 말만 믿고 고향인 충북 보은으로 내려와 아버지는 ‘보은 군수’ 출마를 위해 전 재산 모두를 고향발전을 위한답시고 기부했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부터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집이 너무 가난하여 먹을 끼니조차 없자 진아 형이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서울 가길 결심 하고 어머니가 애지중지 하던 금반지 한 돈을 훔쳐 서울로 간다.

진아 형이 서울 가기로 결심한 그날 밤 동생(방원)과 함께 누워 형이 서울 가서 꼭 돈 많이 벌어 성공해서 돌아 올 태니 너는 공부 잘해라 밤새 부둥켜 울다 잠이 깜박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진아 형이 없어졌다.

이른 새벽 밖을 뛰쳐나가보니 밤새 내린 함박눈에 형의 발자국이 있었다. 미친 듯이 눈길 따라 달렸다, 형, 형 아무리 불러도 소용이 없었다. 이미 서울행 버스를 타고 떠났다.

기자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진아 형과 얽힌 사연에 그는 연신 눈물만 흘렸다. “형님은 제 인생의 ‘멘 토’이자 ‘우상’입니다. 형님의 10분의 1이라도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인 형님은 저를 미국유학까지 시켜주고 뒷바라지 해줬습니다. 형님한테 늘 빚을 지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가수 태진 아 친 동생이지만 그는 형보다 ‘조 방원’으로 더 유명하다. 그의 삶이지난 8월 KBS 1TV '인간극장' ‘나는 가수다’ (5부작)으로 소개돼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다.

기자가 지난9월 27일 오전, 그의 집에서 인터뷰를 했다. 조 씨는 그 이튿날 종합검진 받으러 포항성모병원으로 갔다. 뜻하지 않게 뇌종양 조기 판정을 받고 10월 5일 서울대 병원에 입원 했다.

그는 자신의 홈피에다 팬들을 향한 글을 남겼다. “천둥번개 ‘조 방원’ 뇌종양 깨끗이 물리 칠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제 서울로 출발합니다. 뇌종양 제거 수술을 잘 받고 성공적으로 완치해서 건강한 몸으로 회복되어 영덕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신명나는 ‘트롯트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두 가지 꿈이 있다.
첫째는 ‘꿈의 궁전’프로젝트다. 영덕군에 한국최초의 대중가요박물관, 호텔, 실버타운을 건립하는 것이다. 뛰어난 아티스트의 이름을 새겨 넣는 미국의 로큰롤 ‘명예의 전당’처럼, 대중가요박물관은 한국의 대중음악 발전에 기여한 가수들을 기념하는 공간이다.

둘째는 롤스로이스 영국에서 제작하는 최고급차이기도 하지만 아무나 돈 이 있다고 살 수 가없는 사는 사람의 품격과 인격을 심사해서 통과를 해야 만이 구입을 할 수 있는 차를 구입해 아들 ‘성 완’이의 운전기사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갈매기 파도위에 춤추던 그 바닷가
둘이서 소라 불며 행복을 노래했지
파도 밀리지만 환상은 남았고
그대 떠난 곳에 사랑이 남았네,
갈매기 파도위에 춤추던 그 바닷가
파도의 환상만이 내 마음 달래주네
가수 조 방원이 지난 1979년 데뷔한 “파도의 환상”노래다.


이준형 기자  iptv82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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