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판위에 작업하는 목산 지정 선생,

지난 1995년 53세의 나이로 명예 퇴직한 뒤에는 청소년기부터 꿈꾸었던 예술가의 길에 도전, 늦깎이 서각(書刻)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경북 포항시 북구 죽도동, ‘화랑서화촌’ 안에는 연꽃무늬, 떡살무늬의 미적 영역과 특징을 강조한 작품, 각종 희귀 음·양각 등 전통 목각의 멋과 혼이 깃든 작품들을 만드느라 지정 선생은 무더운 여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는 “목각은 글씨나 그림을 나무에 새기는 공예로 입체 혹은 평면으로 조각하는 작업”이다. “나무는 다른 재료에 비해 조각가의 기량과 솜씨가 가장 정교하고 극명하게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 경북 포항시 북구 죽도동, ‘화랑서화촌’ 안에는 연꽃무늬, 떡살무늬의 미적 영역과 특징을 강조, 각종 희귀 음·양각 등 전통 목각의 멋과 혼이 깃든 작품

서각을 하게 된 것은 포스코 생활주임 당시 나의 역할은 신입사원의 생활지도와 더불어 자기개발을 위한여러 가지 취미활동을 선정 지도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생산과 품질의 향상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 역할의 일환으로 나는 생활 주임들의 지도력 향상을 위한 능력개발교육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서울에서 한 달을 지내게 됐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들른 죽봉 황성연 선생의 서예 전시회에서 퇴직 후의 행로를 결정짓는 출발점이 되었다.

숱한 서예 작품들의 행렬 속에서 나는 언뜻 보이는 서각 작품 앞에 발을 멈추게 되었고 순간 고풍스러운 나무 빛깔 위에 아로 새겨진 글씨의 멋스러움에 한 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 바로 이거구나’ 내가퇴직이후의 평생진로와 함께 노후의 동반자가 될 좋은 취미생활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조선대 미대를 중퇴하기까지 나는 학창시절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었으나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끝내 학업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현역작가로 활동하는 옛 친구들의 소식을 보고 들을 때 마다 젊은 시절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나이가 들어서도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본 서각의 세계는 내게 노후의 새로운 도전을 충동질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당장 서예 점에서 책 한 권을 산 후 서각 작품 제작 현장을 볼 수 있다는 인사동에 들러 눈으로 보고 익혔다.

서울에서의 교육이 진행된 한 달 여 동안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현장에 들르다시피 했고 서각에 필요한 자료와 도구를 마련해 직장으로 돌아왔다.

▲ 경북 포항시 북구 죽도동,‘화랑서화촌’ 안에는 연꽃무늬, 떡살무늬의 미적 영역과 특징을 강조한 각종 희귀 음·양각 등 전통 목각의 멋과 혼이 깃든 작품

나는 회사로 돌아온 후에도 1995년 퇴직할 때까지 시간 나는 틈틈이 자료 수집과 실기 공부를 하면서 서각 전시회와 서각 인들을 만나 도움을 받았다.

퇴직과 함께 ‘화랑 서화촌’ 이라는 간판을 걸고 일을 시작한 지도 이제 햇수로 20년째다. 종교와 관련된 현판, 화각, 교리 말씀과 옛 선인들의 좋은 문구, 가훈 등의 글씨, 문인화, 불화까지 이제 내 손으로 나무 위에 조각되는 것들은 노년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들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거칠고 힘든 목공예를 하느라 굳은 살 박힌 두 손은 숱하게 생채기가 나고 아침에 입고 나온 옷들은 매일 먼지로 얼룩져 버리지만 투정 한마디 없이 그저 말없이 뒤에서 지켜봐 주는 맘 좋은 아내가 있어 난 행복하다.

최근 들어서는 절에서 현판, 주련, 여래보살, 반야심경 등을 주문하기도 하고 기독교인들이 교리 말씀, 일반인들은 가훈을 새겨가기도 한다. 가끔은 관심 있는 젊은이들이 서각 작품과 목공예 과정을 지켜보며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게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과는 서각을 알고 배우고자 하는 일반인들에게 좀 더 우리 것을 알리고 원하는 이에게는 직접 서각을 지도하는 일이다.

지정선생은 지난 2009년 10월 초대전이기도한 전시회를 포항 용흥동 대성사에서, 제2회 화각전시회는 2011년 11월 포항문화 예술회관에서 불법과 경전, 옛 성인들의 글귀와 문인화 기독교의 교리, 유교경전인 논어와 맹자 등 다양한 작품 200여 점을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비록 상업성이나 인지도와는 거리가 있고 남들이 관심을 갖기에는 쉽지 않은 분야에서의 독특한 배역과 자부심을 느끼며 요즘 나는 손수 제작한 피 땀 어린 서각 작품과 화각 작품을 모아 또 다시 전시회라도 열고자 하는 생각에 오늘도 열심히 비지땀을 흘린다.

이준형 기자  iptv82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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