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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세의 일기로 운명을 달리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 ||
고인이 입원, 치료를 받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과 포스코 측은 이날 그가 지병인 폐질환 악화로 별세했다고 타계를 공식 확인했다.
유족 측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임시빈소를 마련한 뒤 장례절차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고인은 총리를 지냈기 때문에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총리는 1927년 경남 양산 출신으로 '포철 신화'를 이뤄낸 '철강왕'인 동시에 5.16 군사쿠데타 세력으로 분류되는 군부 정치인이라는 이중적 이미지로 대중에 각인돼 있다.
일본 와세다대(중퇴)와 남조선경비사관학교(육사 전신 6기)를 거친 뒤 1961년 쿠데타 이후에는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으로 발탁된다. 그러면서 '개발독재'와 '산업화'의 양면을 그리는 대한민국의 성장 드라이브를 주도하게 된다.
박 전 총리는 결정적으로 대한중석 사장을 지내던 중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1968년 포항제철 사장으로 지명돼 새로운 운명을 맞는다.
일본 철강업계의 선진기술 도움과 대일 청구권 자금에 기대어 포철의 일관제철소 사업을 이끌면서 한국 철강산업을 반석 위에 올려놓게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고인은 '철강왕'으로 한국 철강산업의 산증인으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그의 운명는 전두환 신군부가 등장하는 1980년대 이후에는 민정당(11대.81년)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진출하면서 다시 바뀐다.
13, 14, 15대 국회를 거쳐 1990년 민정당 대표최고위원으로 3당 합당에 의한 민자당 창당을 맞는다.
그러다가 김영삼정부 출범후 당시 김 전대통령과 갈등을 겪으며 92년 10월 민자당을 탈당하고 이듬해 포철 명예회장직을 박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까지 되고는 4년간의 일본 망명생활을 지내고 1997년 국회의원으로 컴백한다.
이어 고인은 자민련 총재로 영입된 뒤 김대중-김종필(DJP) 연합을 통해 탄생한 김대중정부 시절(2000년) 공동정부의 자민련 몫으로 총리까지 지냈으나 부동산 투기 문제가 불거지면서 단명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장옥자(80) 여사와 1남4녀가 있다.
정종민 기자 korea21c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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